티모시 가턴 애시는 "투명한 편파성 transparent partiality 개념을 만들었다. 투명한 편파성의 예시로는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꼽을 수 있다. 오웰은 독자들에게 스페인 내전에 대한 자신의 보도가 특정한 당파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시각‘이라는 가식은 전혀 없었다. 가턴 애시의 지적대로, 우리가 오웰을 신뢰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을 ‘공정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라고 주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 P178

강력한 사적 행위자가 매개 기구를 이용해 권력을 강화하려 하는 게 사실이라면, 마땅한 해결책은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는 공적인접근법일 것이다. 일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정당과 방송국을 일종의공공시설로 보고 그에 따라 재정 지원책과 규제책을 마련한다." 정당과 믿을 수 있는 뉴스 출처가 민주주의에 꼭 필요한 인프라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식한 결과다. 이들이 생산하는 건 결국 ‘공공재‘이고, 공공재의 본질은 아무도 소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대부분의 국가에서 국방이나 도로가 갖는 의미를 생각해보자). - P179

오늘날 많은 시민이 도달한 결론은 정치인이 자본에 종속되면 절차는 부패하고, 그러면 나의 정치 참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들이 정치 참여에 소극적으로 변하면 자원을 많이 가진 부유층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게 된다. - P184

투명하게 당파적인 매체와 정당이 이처럼 결합하면 우려도 나올것이다. 정치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언론의 역할 아니던가? 민주주의 정치에서 편파성없는 틀을 제공해야 할 언론을 정치화하는 것이정말 우리가 원하는 일인가? 현실적인 우려지만, 과거 정당과 언론이종종 한데 어우러졌고 그것이 언제나 비도덕적인 결합은 아니었음을간과하는 시각이다. - P187

여기서 우리는 민주주의 인프라의 개선이 결국 한 가지에 달려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영국철학자 오노라 오닐의 말대로, 민주주의 인프라가 개선되기 위해서는 매개 기구가 접근성과자율성을 가져야 할 뿐 아니라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매개 기구가 시민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시민의 판단을 받아야 한다. 저 매개 기구의 재정적 기반은 무엇인가(언론사의 경우, 사주가 누구인가? 어떤 의제를 갖고 있는가? (베를루스코니의 TV 정당처럼) 부도덕한 이해관계를 가진 개인의 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았나? - P189

개방성과 접근성을 활용해 악한 행위자가 민주주의를 훼손하려하거나, 부정직한 태도로 민주주의 게임에 임하려 한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이와 같은 의문에 대해서는, 그런 반민주적인 인물이 권력을잡더라도 법원이 사법 심사를 통해 의회의 입법을 견제한다면 악법은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답변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반민주적인 인물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형법의 처벌대상이 될 수도 있다. - P195

전투적 민주주의란 정치 제도를 훼손하려는 정당이나 개인들에게서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개념이다. 단순히 폭력 등 이미 형법이 규제하는형태의 행위를 자행하는 사람을 진압하는 문제가 아니다. 전투적 민주주의 사회는 특별한 정치적 금지 규정을 둔다. - P196

독일에서는 의도를 더 명확하게 드러내는 표현인 "싸울 의지가 있는민주주의"라 부르고, 이스라엘에서는 "민주주의 방어 패러다임"이라고 칭한다. 이런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고대 아테네는도편추방제를 통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강력한 개인을 공동체에서쫓아냈다. - P197

전투적 민주주의는 전후 독일에서 가장 두드러진 발전을 보였다(전투적 민주주의를 헌법에 반영하자는 아이디어는 아마도 바덴의 프랑스 점령군 내부에서 나왔을 것이다). 전투적 민주주의는 반전체주의의 핵심이자 본질로 여겨졌다. 민주주의와 상대주의를 결합한 한스켈젠의 개념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고, 대신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가치, 특히 인간 존엄성을 민주주의와 동일시하면서 그 가치들을 수호하겠다는 입장이었다. - P198

시민 불복종의 고전적인 정의는 1970년대 초 미국의 철학자 존롤스가 정립했다. 시민 불복종은 공공연한 법 위반을 의미했다. 당연히 모든 법 위반이 시민불복종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양심에 따른비폭력적인 행위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법이 기본권의 침해와 같은심각한 불의를 낳고 있으므로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동료 시민들에게 실득하려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 P210

시민불복종을 공손함이나 품위의 결여 따위로 혼동하는 것은 위험하다. 제대로 실행한 시민불복종은 "법 앞에 가장 높은 존경을 표하는 것"이라던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말을 존 롤스도 그대로 따랐다. 다시 말해 법을 어기더라도 법 아래 깔려 있는 정의의 원칙에 호소해야 하며, 차후 동료 시민과의 협력 가능성을 아예 차단해버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마틴 루서 킹은 법을 "애정 어린 마음으로 어겨야 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 P211

그렇다면 시민 불복종을 실천에 옮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얻을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우선 체면이라는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통제된 범법 행위, 일반적인 규칙을 무시하는 행위는 무정부 상태와 다르다. 헝가리에서 야당 정치인들이 의사 진행을 막기 위해 연단으로 올라가는 통로를 막아버렸을 때, 이들의 행동은 쿠데타시도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이미 정부에 유리하게절차를 무시하고 규칙을 왜곡하는 의회가 더 이상 정당한 법을 통과시키는 입법 기관이 아님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특정한 사안에 대해반대 의사를 표현한 것이라기보다, 민주주의 절차상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행위는 전투적 민주주의의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213

독일을 포함한 여러 나라의 헌법은 이와 같은 행위를 명시적으로 독려하고 있다. 이들 헌법에는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하에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로돌아갔을 때 마지막 시도로서 저항할 권리가 포함되어 있다. - P214

민주적 절차의 수호자들은 자신이 어떤 조건하에서 실질적인 정책 문제에 대한 패배를 수용할 수 있는지, 나아가 민주적 절차에 대한지적이 다른 시민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 것을 인정할 수 있을지를 자문해봐야 한다. 내가 선호하는 입법안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사실은불복종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정치 과정의 구조적인 왜곡과 시민들의 적절한 참여 부족으로 인해, 패자가 정치적인 결과에 동의할수도 없고 이번 결정을 내린 집단적인 과정에 자신이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했다는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필요하다. - P215

달리 표현하자면 불복종은 이 책의 1장에서 정의한 "타협할 수 없는경계", 즉 민주주의 사회 내 모든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수호하는행위일 때 가장 정당한 것이 된다. 이런 경우라면 진짜로 시민답지 못한 쪽은 소란을 일으키는 쪽이 아니라, 재킷에 넥타이까지 갖추고 점잖은 말투를 쓰더라도 시민 개념의 근간을 공격하는 쪽이 된다. - P217

자유가 보장된 사회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갈등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가 관건이다. 패자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정치체제의 존속이라는 명분하에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희생하는 게임인지가 관건이다. 나의 정적이 옳을 수도 있다는 마음가짐이 존재하는사회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상대가 지금 있는 자리에 언젠가 내가갈 수도 있다고 상상 가능한 사회에서는 이것이 한층 더 용이해진다. - P221

매개 기구는 접근성이 높아야 하고 정확하며 자율적이며, 평가가능해야 하고, 따라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당파성이 없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정당의 경우에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언론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목표는 진실을 찾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갈등에서 각자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팩트가 언제나 깨지기 쉬운 것이라 해도 그 과정은 팩트에 의해 가능해지고 또 팩트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소셜미디어가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고 한탄하나, 이 새로운 매개체가 시민들에게 전례 없는 접근성을 제공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223

현시점에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이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다. 민주주의의 수호자들이 위기 대응 매뉴얼을 펴내느라 분주히 움직이는 동안, 민주주의를 뒤집어 엎으려는 자들도 포퓰리즘- 권위주의 통치 기술을 완벽하게 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경험했다시피 이런 상황에서 법원이 반드시 우리를 구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종국에는 결집한 시민만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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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어떤 사람이 높은 나무에 올라가 입으로 나뭇가지를 문 채손으로 가지를 잡거나 발로 가지를 밟지 않았다고 하자. 그때 나무밑에서 어떤 사람이 달마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을 물었다. 대꾸하지 않으면 묻는 이의 뜻에 어긋나고 대꾸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럴때 어찌해야좋을까?"

선문염송(禪門) 600. 여인(如人) - P22

남전선사에게 육긍대부가 물었다.
"옛사람이 병 속에 거위 한마리를 길렀는데, 거위가 점점 자라병에서 나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금 병을 깨뜨릴 수도 없고, 거위를 죽일 수도 없으니, 어찌해야 거위를 꺼내겠습니까?"

-「선문염송」 「238. 양아」 - P24

태어남은 어디로부터 왔으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태어남은 한조각 뜬구름 일어남이요.
죽음은 한조각 뜬구름 사라짐이라뜬구름 자체는 본래 실체가 없으니,
생사거래(生死去來)가 또한 이와 같도다.
홀로 한 물건이 항상 드러나 있으니,
담담하여 생사(生死)를 따르지 아니하도다. - P27

달마대사에게 혜가가 물었다.
"저의 마음이 편안치 않으니, 스님께서 편안하게 해주소서."
"마음을 가져오너라. 편안케 해 주리라."
"마음을 찾아도 끝내 얻을수 없습니다(心了不可得)."
"그대의 마음을 벌써 편안하게 해 주었느니라."

•「선문염송』 「100, 법인(法印)」 - P28

도신스님이 삼조승찬선사에게 말하였다.
"화상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해탈법문을 들려주소서."
"누가 묶었냐?"
"아무도 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찌 다시 해탈을 구하는가?"
이에 도신이 말끝에 크게 깨달았다.

- 「선문염송』 「108. 해탈(解說)」 - P30

신령스런 광채가 홀로 빛나니 근(根)과 진)을 멀리 여의었고본체가 드러나 참되고 항상하니 문자에 구애되지 않는다.
마음의 성품은 물들지 않아 본래부터 원만히 이루어져 있으니다만 허망한 연(緣)을 여의기만하면 여여(如如)한부처로다. - P33

"도는 닦을 것이 없으니, 다만 물들지만 말라. 무엇을 물듦이라 하는가? 생사(生死心)으로 작위와 지향이 있게 되면 모두가 물이다. 그 도를 당장 알려고하는가?
평상심(平常心)이 도(道)다. 무엇을 평상심이라 하는가? 조작이 없고, 시비가 없고, 취사가 없고, 단상(斷常)이 없으며, 범부와 성인이없는 것이다." - P35

시방 사람들이 함께 모여들어낱낱이 무위(無爲)를 배우나니이곳은 부처를 뽑는 곳(選佛場)이라.
마음이 공(空)해져야 급제해 돌아가리.

-•「선문염송』 「312. 시방(十方)」 - P37

내게 한권의 경전이 있으니(我有一卷經)
종이나 먹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네(不因紙墨成).
펼쳐보면 한글자도 없건만(展開無一字)
항상 큰 광명을 놓는다네(常放大光明).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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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다!


학창시절, 불교학생회 주최로 전시회가 열렸는데, 그때 커다란 그림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어떤 나그네가 우물 중간에서 넝쿨을 붙들고 대롱대롱 매달려있는데, 우물 밖에는 불길 속에 코끼리가 있었고, 마른 우물 밑에는뱀이 몇 마리 보였다. 또한 넝쿨 위쪽을흰 쥐와 검은 쥐가 갉아먹고있었는데, 그 와중에 나그네는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고 있었다. 이 그림이 궁금해 묻자 안내자가 설명했다.
"이 그림은 『불설비유경(佛說譬喩經)』의 ‘안수정등(岸樹井藤)‘입니다. 그림 속의 나그네는 중생(衆生)을 의미하고, 불길은 타오르는욕망을 상징하고 있죠. 코끼리는 무상(無常)함을, 독사는 삼을, 흰 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을 뜻하며, 넝쿨은 생명줄을, 다섯 방울의 꿀은 오욕락(五樂)을 뜻합니다. 이 그림은 결국 위태로운 중생들이 오욕락의 달콤함에 빠져 진실을 도외시하고 있음을 비유합니다."
이 말을 듣고 궁금해진 필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나그네는 어찌해야 하는 걸까요?"
"글쎄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른바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다. 그 와중에 나그네는 벌집에 - P5

서 떨어지는 다섯 방울의 꿀을 받아먹으며 자신의 상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 나그네는 어떻게 해야 이 위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대가 이 나그네와 같은 처지라면 과연 어찌해야 할까?
용성 큰스님이 제자들에게 안수정등을 설하며 각자의 생각을묻자 제자들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어젯밤 꿈속의 일일 뿐입니다."
"부처는 다시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누가 언제 우물에 들었던가?"
훗날 제자 중 한 사람이 전강선사를 만나 스승의 질문을 전해주었다. 그러자 전강선사는 엿 한 가닥을 엿판에 내리친 다음 한 조각을 입에 털어 넣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달다!"
우하하하! 달다! 이것야말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멋진 답변이 아닐 수 없다. 앞의 어떤 답변보다도 간단명료하면서 정확하다.
왜 그런가? 애당초 안수정등의 상황은 모두 설정(定)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아닌 허구인 것이다. 이른바 ‘가상현실‘이다.
전강선사의 답변은 그 순간 안수정등이라는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유일한 진짜 현실인 ‘바로지금 여기‘로 툭 튀어나온 것이다.
또한 우물 속 나그네가 추구하는 달콤함과 여기서의 ‘달다!‘는같지 않다. 나그네에게는 달콤함을 추구하는 ‘나‘가 존재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달다!‘에는 ‘나‘가 없다. 다만 맛을 느낄 뿐, 맛을 느끼는자는 없다. 견문각지(見聞覺知)가 있을 뿐, 견문각지하는 자는 없다.
과거는 이미 흘러 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현재는 잠 - P6

시도 머무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거·현재·미래는 모두 가상현실이다. 유일한 진실은 ‘바로 지금 여기서 이것뿐‘이다. 현상이 있을 뿐 실체는 없다. 행위가 있을 뿐 행위자는 없다. 한마디로 아바타(avatara)인 것이다.
‘몸도 아바타, 마음도 아바타, 이 세상은 가상현실!‘이라는 소식을 ‘지금 여기‘에서부터 활용하는 것이 현명하다. 각고의 수행을 통하여 언젠가 이를 깨달은 후에는 써나갈 필요가 없다. 이미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열매를 일단 따먹어 보고, 주위에도 권장하는 것이오히려 깨달은 이가 바라는 바다. 그 비결은 바로 몸과 마음을 아바타라바라보는 것이다.
"아바타가 욕심내고 있구나. 아바타가 화가나는구나. 아바타가근심 걱정하고 있구나."
이렇게 관찰할 때 탐(貪)·진(鎭)·치()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아바타의 몫이 된다. 나는 다만 ‘바라볼 뿐!
"아바타가 걸어간다. 아바타가 머무른다. 아바타가 앉아 있다.
아바타가 누워 있다. 밥 먹을 때는 밥을 먹을 뿐! 잠잘 때는 잠잘 뿐!"
이를 꾸준히 연습해서 온몸에 사무치면 비로소 말할 수 있으리라.
"나왔다!"


행불사문월호 합장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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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달아준다. 정치적 평등이란 무엇보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다. 일정 수준의 접근성을 갖춘 매개 권력과, 새로운매개 권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P119

민주주의에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는 지정된 시각에 모여서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지정된 장소다. 즉 입법을 통해 정치적인 의지를 표현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반대파도 주장을 펼칠 기회를 가진 후에, 다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는 곳이 되겠다. 둘째는사회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의견이 형성되고 정치적인 판단이 내려질 장소다.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의견을 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 P123

민주주의의 두 장소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영국 의회와 사회 전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회는 국가의 불만 위원회이자 의견 집합소다. 국민의 일반적인 의견뿐 아니라 모든 집단, 그리고 국민에 속하는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의의견을 내고 토론을 요구할 수 있는 곳이다. 영국에 사는 모든 이가 자신의마음을 대변해줄, 혹은 더 잘 말해줄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친구나 당원에게만이 아니라 반대편 앞에서 나의 의사를 말하고, 반대 의견의 도전을받는 곳이며, 의견이 반박당한 사람은 그래도 말을 할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는 곳이다. 나의 의견이 기각되더라도 단순히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월한 주장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해 밀려나는 장소이며 나라의 모든 정당과 의견이 세력을 모으는 곳이자, 모두가 지지자의 수나 권력에 의한 편견에서 벗어나게 되는 곳이다. - P124

몽테뉴가 처음 쓴 표현이자 18세기의 정치적 맥락에서 많이 사용된 용어 "여론opinion publique" 은 정부를 감독한다는 의미였다. 철학자제러미 벤담은 "논증과 토론의 습관이 배어든 "대중의 감시"를 높이평가했다. 대중은 통치하지 않지만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 P125

다시 말해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상호의존적이었으며, 토크빌이 관찰한 미국에서 언론과 결사는 모두 당파성이라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현대인의 눈에는 ‘대놓고 당파적인 언론‘이라는 개념이 부적절해 보이지만, 그 시대 언론과 정당의 결합은 정당과 언론이 수행하던 중요한 기능을 잘 보여준다. 정당은 에드먼드 버크의 정의대로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 원칙에 따라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단합한 사람들의 모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과마찬가지로 사회의 대표자를 자처할 뿐 아니라, 사회를 향해 정치 갈등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P127

핵심은 매개 기구가 갈등을 드러내고 구조화하는 방식을 선택할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동기가 반드시 건전한 민주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고 싶어 하고, 언론 소유주는 (대부분) 돈을 벌고 싶어 한다. - P128

내적 다원주의는 외적 다원주의에 비해 겉으로 덜 드러난다. 개별 매개 기구 안에도 시각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의미다. 즉 정당은 내부적으로도 경선이나 집중 토론과 같은 적절한민주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내부적으로 민주주의가 결여된정당은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에따라, 여러 나라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론 기관의 경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일은 거의 없다. - P132

내적 다원주의와 당파성은 어떤 면에서 양립불가한 것 아닌가? 정당이 무슨 토론 동아리도 아니고, ‘개방성‘을 지키려다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침투해 당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 정당들이 완전국민경선제 open primary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결과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않을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경선에 참여하면 정당의 ‘브랜드‘가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상대편 정당 또한 기존 지지자들이 소수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표를 던지다가 그쪽에 정이 들어버리는 사태를 우려한다.) - P133

당 내부의 민주주의는 개방적일 수 있지만 끝이 열려 있어서는안 된다. 반드시 최종적이고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며, 당원들에게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충실한 반대파가 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영국 보수당의 유럽연합 반대파가 처참한 실패를 보여준 지점이다). - P138

1842년 미국은 의회 구성에서 최다 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제도를 선택했다. 즉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모두 잃는 시스템이다. 미국이 이 같은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직선제를 택함에 따라 양당제는 사실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다만 이선택에는 딱히 헌법적 근거가 없어서, 이론적으로 의회는 내일 당장이라도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수 있다). - P142

오늘날에도 미국의 진보적인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은 페니 프레스의 승리를 민주화 과정과동일시하며 높이 평가한다. 예일대학교 법대 교수인 로버트 포스트는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신문의 반응성은 결국 정치적인 문제이며, 신문이 더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 반응할수록 신문이 만들어내는 공론장은 더욱 민주적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당시의 신문은 부끄러움 없이 거짓 기사를 실었고, 사생활 보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경쟁자의 콘텐츠를 훔치는 일도빈번했다. - P146

2차 세계대전 후 다양한 원로 위원회가 신문은 정보와 의견을 처리할 때 ‘사회적 책임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객관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언론에 좁은 의미의 기술적 기준이 아니라 대중의 기준에 맞는 자기규제가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그 결과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어떤 노선에 대한 지지나 옹호는커녕, 해석이 아닌 정보에만집중하게 되었다(<뉴욕 타임스>도 1970년이 되어서야 사설란을 만들었다)."  - P147

제4계급으로서의 자기인식은 공영방송국(미국의 경우에는 소수의 주요 지상파 방송국)의 공식 강령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이들 방송국은 모두 1949년에 도입되어 수십 년간 보수주의자들의 신경을 긁어온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지켰다. 공정성 원칙은 1987년에 이르러 TV를 "그림이 나오는 토스터 같은 또 하나의 가전 제품" 정도로치부한 레이건주의 규제 철폐론자에 의해 폐지되었다. - P148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특정한 자기인식을 중심으로 모인사람들을 결집시키는 것이며, 자기인식이 매 선거마다 재구성되지는않는다. 오히려 정당은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유도함으로써 특정한 자기인식을 강화하고자 한다. - P159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책임지지 않는 개인들이 선거에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정부가 플랫폼의 수익을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치성향도 바꿀 수 있는 개인들에게 영향력을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저커버그 같은 인물은각각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만, 그런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게 되면 위협은 훨씬 더 커진다. - P161

‘디지털 정당‘ 또는 ‘플랫폼 정당‘이라는 새로운 기구가 부상했다. 소셜미디어는 팬덤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참여의 가능성을 새로 제시했고, 여러 정당이 대세를 거슬러대규모 신규 당원을 확보했다. - P163

버니 샌더스의 자문단 역시 "돈 받는 스태프로 혁명을 이룰 수는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공동체 조성에 대한 페이스북의 감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선언과 마찬가지로, 수사와 현실은 좀 달랐다.
마치 전통적인 매개 권력을 건너면 직접적인 참여를 지속적인 현실로만들어낸 것 같았지만, 오성운동이나 버니 샌더스 캠프처럼 구름이나 무리 같은 형태를 가진 단체도 결국은 여전히 매체에 의존하고 있었다. 플랫폼 자체가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랫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그냥 급여를 받는 직원들과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소수의 내부자들로 꾸려졌다. - P167

기술결정주의 신봉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이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동시에, 행동을 예측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체제, 나아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양극화와 분노를 부추기는 감시 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소셜미디어 선택지가 극소수인 지금의 상황 역시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보와 의견의 출처, 그리고 정당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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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빨간색을 어떤 것의 빨간색으로 인식하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빨간색 자체로 인식하는 일이 없다. 이처럼 전오식과 동시에 일어나면서도 전오식의 대상이 아난 대상을 인식하는 의식을 오구부동연의식五不同이라고 한다. - P77

의식의 대상인 경은 곧 물질적 색과구분되는 관념적 존재로서의 명이다. 그것은 감각 내용들을 그 어떤 것에 속하는 것으로서 종합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는 감각 대상이 아니라의식 대상이며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사유 대상 즉 관념일 뿐이다 - P78

그러므로 법경은 그것을인식하는 의식을 떠나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의 분별을통해 시설된 것일 뿐이다. [성유식론]에서는 의식 대상인 법경의 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법은..…..… 가로서 건립된 것이지 실유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 P78

전오식의 대상인 ‘감각 대상‘과 제6의식의 대상인 ‘사유 대상‘, 즉 색과명은 정확히 어떻게 구분되는가?
감각에 주어지는 사물의 속성은 감각의 순간에 개별적으로 포착되는표상이다. 그처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표상을 그 각각의 자체 상이라는의미에서 자상自相(svalaksana)이라고 한다. 직접적 인식인 현량의 대상이곧 자상이다. 반면 자상들을 비교 분석하고 추상화하여 개념으로 얻게 되는 표상은 더 이상 자상이 아니다. - P79

부동연의식에서의 의식 대상인 실체란 바로 이처럼 개념적으로 구성된 사유의 산물이다. 현량에서 자상으로 주어지지 않고 의식 내에서 일반화하여 떠올리는 추상적 표상은 모두 개념적 가상물이다. 감각 대상의 자상이 아니라 개념적 산물인 공상인 것이다. 이러한 추상화, 일반화, 개념화를 유식에서는 분별 (vikalpa)이라고 한다. - P80

그러므로 유식은 우리가 실재라고 생각하는 사물 자체, 의식의 차원에서 분별된 사물 자체라는 것이 사실은 바로 의식 자신의 분별에 의해 설정된 것, 정확히 말해 언어적 개념에 의해 시설된 것이라고 말한다. - P80

석가의 기본 가르침인 사법인 중의 제행무상 철저하을게 찰나생멸로서 이해한 경량부에 따르면, 찰나생멸적인 현상의 변화를넘어서서 그들 변화를 관통하여 동일한 것으로 남아 있다고 생각되는 사물의 동일성(santana)이란,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동일성이 아니라 단지 우리의 의식 안에서 우리의 언어에 따라 설정되는 개념적 동일성일 뿐이다. 빨간색 장미 꽃잎이 빨간색으로 피어 있다가 시들어 검게 되었을 때 이전의 빨간 꽃잎과 이후의 시든 검은 꽃잎은 서로 다른 꽃잎이다. 그 둘 사이에자기동일성은 없다. - P82

존재론적으로 그렇게 서로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어제의 장미와 오늘의 장미를 동일한 하나의 장미로 보고, 한 촛불이다 타오르도록 그 불꽃을 동일한 하나의 불꽃이라 여긴다. 하지만 그것은실제로 자기동일적 무엇인가가 변화하는 현상 배후에 실체로서 존재하기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찰나생하는 현상의 배후에 상정되는 사물의자기동일성이란 단지 우리의 언어 구조에 따른 개념적 동일성일 뿐이다. - P83

명구문신은 보편적인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단지 사유 분별에 따라 가假로서 시설된 것일 뿐이다. 즉 말소리의 분위차별에 의해 가로 건립된것이다. 따라서 명구문신에 따라 분별되는 일체의 현상 역시 모두 개로서 시설된 것이다. 그렇기에 유식삼십송唯識三十頌』의 첫 게송은 다음과같이 시작된다.

가로서 아我와 법을 설한다. - P84

가가 반드시 진사에 의거하여 건립된다는 것은 바른 논리가 아니다. 진사는 상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개념적 인식(假智)과 개념적 표현(假詮)의 대상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假智와 가전은 자상을 얻지 못하며, 오직제법의 공상에 따라서만 일어날 뿐이다. - P88

가지假와 가전을 떠나자상을 시설할 수 있는 별도의 방편이 있어가의 소의로 삼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P89

가지假와 가전假은 반드시 소리에 의거해서 일어나는데, 소리는 자상에 미치지 못하며 자상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개념적 표현(能)이나그 개념으로 표현된 것(所)이 모두 자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가설假說진사에 의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P89

가는 실재하는 실과 대립적으로 사용된 개념이 아니라, 단지 우리에 의해 잘못 집착된 실과 대립적으로 사용된 개념일 뿐이다. 즉 개 너머에 실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유식에 있어서는 개체이든보편이든 색이든 명이든 모두 그것을 인식하는 식 너머에 그 자체로서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실유가 아니다. 실유적 존재가 아니기에 가라고 한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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