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를 달아준다. 정치적 평등이란 무엇보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이다. 일정 수준의 접근성을 갖춘 매개 권력과, 새로운매개 권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는 정치적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 P119

민주주의에는 상반된 성격을 가진 두 장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는 지정된 시각에 모여서 모두에게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지정된 장소다. 즉 입법을 통해 정치적인 의지를 표현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반대파도 주장을 펼칠 기회를 가진 후에, 다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는 곳이 되겠다. 둘째는사회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의견이 형성되고 정치적인 판단이 내려질 장소다. 그 누구라도 언제든지 의견을 낼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 P123

민주주의의 두 장소는 언제나 연결되어 있다. 존 스튜어트 밀은영국 의회와 사회 전체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의회는 국가의 불만 위원회이자 의견 집합소다. 국민의 일반적인 의견뿐 아니라 모든 집단, 그리고 국민에 속하는 개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자신의의견을 내고 토론을 요구할 수 있는 곳이다. 영국에 사는 모든 이가 자신의마음을 대변해줄, 혹은 더 잘 말해줄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친구나 당원에게만이 아니라 반대편 앞에서 나의 의사를 말하고, 반대 의견의 도전을받는 곳이며, 의견이 반박당한 사람은 그래도 말을 할 기회를 얻은 것에 만족하는 곳이다. 나의 의견이 기각되더라도 단순히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월한 주장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의해 밀려나는 장소이며 나라의 모든 정당과 의견이 세력을 모으는 곳이자, 모두가 지지자의 수나 권력에 의한 편견에서 벗어나게 되는 곳이다. - P124

몽테뉴가 처음 쓴 표현이자 18세기의 정치적 맥락에서 많이 사용된 용어 "여론opinion publique" 은 정부를 감독한다는 의미였다. 철학자제러미 벤담은 "논증과 토론의 습관이 배어든 "대중의 감시"를 높이평가했다. 대중은 통치하지 않지만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 P125

다시 말해 언론의 자유와 결사의 자유는 상호의존적이었으며, 토크빌이 관찰한 미국에서 언론과 결사는 모두 당파성이라는 목적을 띠고 있었다. 현대인의 눈에는 ‘대놓고 당파적인 언론‘이라는 개념이 부적절해 보이지만, 그 시대 언론과 정당의 결합은 정당과 언론이 수행하던 중요한 기능을 잘 보여준다. 정당은 에드먼드 버크의 정의대로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 원칙에 따라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단합한 사람들의 모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론과마찬가지로 사회의 대표자를 자처할 뿐 아니라, 사회를 향해 정치 갈등을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 P127

핵심은 매개 기구가 갈등을 드러내고 구조화하는 방식을 선택할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동기가 반드시 건전한 민주주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정당은 선거에서 이기고 싶어 하고, 언론 소유주는 (대부분) 돈을 벌고 싶어 한다. - P128

내적 다원주의는 외적 다원주의에 비해 겉으로 덜 드러난다. 개별 매개 기구 안에도 시각의 다양성이 존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의미다. 즉 정당은 내부적으로도 경선이나 집중 토론과 같은 적절한민주 절차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내부적으로 민주주의가 결여된정당은 사회 전체의 민주주의에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인식에따라, 여러 나라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론 기관의 경우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일은 거의 없다. - P132

내적 다원주의와 당파성은 어떤 면에서 양립불가한 것 아닌가? 정당이 무슨 토론 동아리도 아니고, ‘개방성‘을 지키려다가 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침투해 당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미국 정당들이 완전국민경선제 open primary에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이다. 결과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않을사람들이 완전히 다른 목적을 가지고 경선에 참여하면 정당의 ‘브랜드‘가 심각하게 훼손된다는 것이다. 상대편 정당 또한 기존 지지자들이 소수 정당의 경선에 참여해 표를 던지다가 그쪽에 정이 들어버리는 사태를 우려한다.) - P133

당 내부의 민주주의는 개방적일 수 있지만 끝이 열려 있어서는안 된다. 반드시 최종적이고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하며, 당원들에게는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더라도 충실한 반대파가 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영국 보수당의 유럽연합 반대파가 처참한 실패를 보여준 지점이다). - P138

1842년 미국은 의회 구성에서 최다 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제도를 선택했다. 즉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고 패자는모두 잃는 시스템이다. 미국이 이 같은 소선거구제와 대통령 직선제를 택함에 따라 양당제는 사실상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었다(다만 이선택에는 딱히 헌법적 근거가 없어서, 이론적으로 의회는 내일 당장이라도 비례대표제를 채택할 수 있다). - P142

오늘날에도 미국의 진보적인 정치학자와 법학자들은 페니 프레스의 승리를 민주화 과정과동일시하며 높이 평가한다. 예일대학교 법대 교수인 로버트 포스트는 "소비자의 수요에 대한 신문의 반응성은 결국 정치적인 문제이며, 신문이 더 넓은 범위의 대중에게 반응할수록 신문이 만들어내는 공론장은 더욱 민주적이 된다"고 말했다. 물론 현실은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당시의 신문은 부끄러움 없이 거짓 기사를 실었고, 사생활 보호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경쟁자의 콘텐츠를 훔치는 일도빈번했다. - P146

2차 세계대전 후 다양한 원로 위원회가 신문은 정보와 의견을 처리할 때 ‘사회적 책임 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객관성‘에 대한 촉구와 함께, 언론에 좁은 의미의 기술적 기준이 아니라 대중의 기준에 맞는 자기규제가 필요하다는 요구였다. 그 결과 미국의 주요 매체들은 어떤 노선에 대한 지지나 옹호는커녕, 해석이 아닌 정보에만집중하게 되었다(<뉴욕 타임스>도 1970년이 되어서야 사설란을 만들었다)."  - P147

제4계급으로서의 자기인식은 공영방송국(미국의 경우에는 소수의 주요 지상파 방송국)의 공식 강령에 의해 더욱 강화되었다. 이들 방송국은 모두 1949년에 도입되어 수십 년간 보수주의자들의 신경을 긁어온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을 지켰다. 공정성 원칙은 1987년에 이르러 TV를 "그림이 나오는 토스터 같은 또 하나의 가전 제품" 정도로치부한 레이건주의 규제 철폐론자에 의해 폐지되었다. - P148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은 특정한 자기인식을 중심으로 모인사람들을 결집시키는 것이며, 자기인식이 매 선거마다 재구성되지는않는다. 오히려 정당은 지지자들을 투표소로 유도함으로써 특정한 자기인식을 강화하고자 한다. - P159

권력이 집중된다는 것은 곧 책임지지 않는 개인들이 선거에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뜻이고, 동시에 정부가 플랫폼의 수익을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정치성향도 바꿀 수 있는 개인들에게 영향력을행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트럼프와 저커버그 같은 인물은각각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지만, 그런 인물들이 서로를 이용하게 되면 위협은 훨씬 더 커진다. - P161

‘디지털 정당‘ 또는 ‘플랫폼 정당‘이라는 새로운 기구가 부상했다. 소셜미디어는 팬덤으로 환원되지 않는 정치참여의 가능성을 새로 제시했고, 여러 정당이 대세를 거슬러대규모 신규 당원을 확보했다. - P163

버니 샌더스의 자문단 역시 "돈 받는 스태프로 혁명을 이룰 수는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공동체 조성에 대한 페이스북의 감상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선언과 마찬가지로, 수사와 현실은 좀 달랐다.
마치 전통적인 매개 권력을 건너면 직접적인 참여를 지속적인 현실로만들어낸 것 같았지만, 오성운동이나 버니 샌더스 캠프처럼 구름이나 무리 같은 형태를 가진 단체도 결국은 여전히 매체에 의존하고 있었다. 플랫폼 자체가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플랫폼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았다. 페이스북과 마찬가지로, 혁명은 그냥 급여를 받는 직원들과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소수의 내부자들로 꾸려졌다. - P167

기술결정주의 신봉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기술이 개인들을 연결해주는 동시에, 행동을 예측하고 예측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체제, 나아가 돈이 된다는 이유로 양극화와 분노를 부추기는 감시 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소셜미디어 선택지가 극소수인 지금의 상황 역시 주어진 조건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보와 의견의 출처, 그리고 정당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할 수 있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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