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살던 별 문학동네 청소년 36
김선정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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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럴 거야? 이렇게 슬프고 어두운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한 거 맞지? 난 몰라. 읽으면서 울어도. 눈이 퉁퉁 부은 채 잠들어도. 난 몰라. 그래도 읽어보면 좋겠어. 내 진심이야. 세상에 다시는 없을 것 같은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이기도 하거든. 김선정의 『멧돼지가 살던 별』이라는 책이야.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어 있지만 알잖아, 책이란 나이의 경계를 간단히 무너뜨리게 한다는 걸.

있잖아. 그거 알아? 일하러 가지 않는 주말에 눈이 일찍 떠진다는 거. 오늘은 토요일인데.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어. 아, 오늘은 쉬는 날인데. 다시 잠들 수도 있었지만 내 머리맡에는 『멧돼지가 살던 별』이 놓여 있었어. 표지가 예쁜 책이라 선물 받고서 당장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 하지만 어른이인 나는 일도 해야 하고 자잘한 정리 정돈도 해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기도 해야 하니까. 일단 표지를 쓰다듬고 놓아두었어. 나는 책을 소중히 여겨.

내게 처음 온 책은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읽으려는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해. 멧돼지가 위에 있고 그 아래 지구로 추측되는 별에 사람과 기차, 집이 알록달록 예쁘게 그려져 있는 『멧돼지가 살던 별』을 토요일 오전에 읽기 시작했어. 순식간에 시간이 지나버렸어. 지하철역에 잘못 내려온 멧돼지를 유림이가 만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돼. 유림이는 음, 그러니까 슬픈 아이야. 엄마는 없고 엄격한 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이 아버지 정말 나빠. 너도 읽어보면 알게 될 거야. 어른만 아니라면…. 뒤에 말은 생략할게.

유림이가 지하철역에서 멧돼지 산바를 만난 날은 아버지한테 맞아서 입안이 헐고 피가 딱지처럼 붙어 있어 마스크를 쓰고 있었어. 전철은 들어오는데 산바는 꿈쩍도 안 했어. 유림이가 산바를 보고 이렇게 말해. "그러다 죽어." 산바는 그 말을 알아듣고 씨익 웃으며 진짜야 씨익 웃었다니까 웃으며 다시 산으로 올라가. 그렇게 둘의 고요하고도 이상한 만남은 시작되지. 유림이는 말이야. 열다섯인데 초등학생처럼 보여.

맞아. 못 먹어서 키가 작아서 그래. 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가지 말라고 해서 집에서 명심보감을 쓰면서 지내. 명심보감 다섯 장을 써야 하는데 못 쓰면 맞아. 밥을 먹다 반찬을 흘리면 맞아. 쩝쩝대고 먹는다고 맞아. 설거지를 안 해놨다고 맞아. 빨래를 못 갠다고 맞아. 유림이는 매일 맞아. 친아버지한테 말이야. 여섯 살부터 계속 그랬어. 아무도 그런 유림이를 구해주지 않았어. 누군가 유림이에게 관심을 가질만하면 아버지 홍기수가 나서서 화를 내고 도망치듯 유림이를 데리고 숨어버려.

그런 유림이 앞에 멧돼지 산바가 나타나. 잘못 맞아서 이가 부러져 치과에 가는 길에 우연히 '겨울 서원'을 알게 되지. 그곳에서 주호와 화신을 만나. 유림이는 생각하지. 아무도 자신을 도와줄 수 없다고. 체념하면서 살아갔어. 『멧돼지가 살던 별』은 말해. 너의 삶을 네가 포기하게 두지 말라고. 세상은 아름다운 연대로 가득하다고 말이야. 유림이를 도와주고 세상 밖으로 끌어내주는 건 산에 사는 멧돼지였고 피도 섞이지 않은 완벽한 타인인 주호와 화신이었어.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은 없어. 아름답고 행복한 결말만을 간직한 동화 속 세상은 없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지구별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을 기억해. 동화 속 세상보다 지구라는 작은 별이 더 소중해질 날이 올 거야. 책을 읽다 보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었어. 그 이유는 책을 읽으며 지냈기 때문이야. 『멧돼지가 살던 별』에는 울지 않는 그래서 꼬옥 안아주고 싶은 사람들이 등장해. 너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너는 후회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랄게. 상처가 있다면 혼자 아파하지 마. 산바, 주호, 화신 그리고 유림이가 너의 곁으로 찾아올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줘.

사랑해. 너와 내가 살아갈 지구별의 모든 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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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윤이나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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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가 필요했다. 더불어 희망도. 받고 미래까지. 쓰고 보니 터무니없다는 생각도 든다. 용기, 희망, 미래라니. 물성이 없는 이 말들은 자칫 사기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 현실에서 이런 말을 주절거리는 이를 만난다면 피하고 볼 일이다. 책은 다르지 않지 않나. 책 표지에 용기, 미래, 태도, 고취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책이라면 말이다. 윤이나의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내리막에 익숙한 밀레니얼을 위한 용기 고취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는다.

뭐든지 규정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밀레니얼 세대'는 다름 아닌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와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들일 터. 그리고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를 쓴 윤이나까지. 밀레니얼들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2000년 즈음에 성인이 된 사람들. 용기를 가지기도 전에 IMF가 와서 용기를 가져가 버리고 희망을 찾기도 전에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일어나 희망을 빼앗긴 세대.

한없이 가난해질 수도 한없이 부자가 될 수도 있는.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 윤이나는 1983년 생으로 선배 밀레니얼에 속한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사교육 없이도 들어갈 수 있던 아슬아슬한 선배 밀레니얼이다. 졸업 후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정규직 일자리는 얻지 못했고 말이 좋은 프리랜서 생활을 했다. 각종 매체에 글을 쓰고 서른이 되던 해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떠났다.

결혼은 생각하지 않고 당연히 출산은 미래 계획에 없다. 현재 나 자신이 즐거운 삶으로 미래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밀레니얼 세대란 이렇고 저렇고 하는 특징적인 성격을 체계적인 분석과 수치로 정의하, 지 않는다. 그저 그들이 가진 현실적인 어려움이 어디에서 기인했고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윤이나만의 담백한 시선으로 풀어 놓는다. 결혼, 출산, 취업에 관한 산뜻하고도 눈치 보지 않는 관점이 좋았다.

평등보다는 공정으로 밀레니얼이 겪는 문제를 이겨내자고 말한다. 우리의 문제를 미래를 볼모로 잡고 우리를 위협하는 기성세대에게 맡겨 놓는 게 아닌 '우리가 미래가 되어 가자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여러 부분에 책갈피로 표시해 놓았다.

그러니까 '남들 다 하는 결혼을 안 하면 대체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은 애초에 잘못됐다. 결혼을 안 하면 무엇을 하느냐면, 살던 대로 산다.

지금도 여전히 주변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다. 서른 중반이 되어 내가 인생이라는 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사실은 삶은 대개 불안하다는 것이다. 남편도, 결혼이라는 계약도 내가 가진 불안을 해소해주지 못할 것이다. 내 불안은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인 복지 안전망과 경제적 안정으로 해소할 수 있다.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은 미래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그 미래를 쓰는 과정에 있다는 것뿐이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빛을 향해 걸어갈 때에만 이 어둠을 벗어난 빛 속의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일 테다.
(윤이나,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中에서)

이사를 다니면서 커튼은 포기하고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삶. 영화 <소공녀>의 이야기를 빌어 우리가 어떤 선택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 아닌 능동적인 선택으로 삶의 방향을 조정해 나갈 수 있다는 부분에서 격하게 공감했다. 커튼을 달지 안 달지를 오랫동안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튼 대신 얇은 이불을 압정으로 꽂아 놓고 10년을 살다가 책과 함께 그 방을 나왔다. 우리는 다른 공간에서 비슷한 밀레니얼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한정된 자원으로 생기는 선택의 문제.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다른 세대 보다 더 많은 선택의 문제가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자. 선택으로 포기되는 기회비용이 많아 미래 따윈 개나 줘 버려 라면서 울 수도 있겠지만 실체 없는 미래 따위에 기대지 말자. 각자 살도록 하되 문제가 생기면 서로와 우리를 찾으면서 미래가 되어 보는 것이다. 위로 올라가기 보다 앞으로 걸어나가자고 말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미래란 여기 있는 '나'라고 알려준다.

알죠? 파랑새가 어디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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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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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살다 이런 맞춤법 책은 처음 봤다. 내 본디 공부가 부족하고 머리가 나빠 문장을 제대로 쓰지 못해 여러 책들을 참고해 보긴 했다. 그래도 문장력은 안 늘더라. 가끔 맞춤법을 틀려서 비관에 빠지기도 한다. 백성을 어여삐 여긴 세종대왕님의 탁월한 능력과 재능에 힘입어 한자를 쓰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길 정도이지만 한글, 어려울 때가 있긴 하다. 아, 절대 투정 부리는 거 아닙니다요, 세종대왕님. 그래도 조금 헛갈릴 때가 있어용.

이주윤의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은 연애서인가, 문법서인가. 재기 발랄한 글솜씨를 가진 이주윤은 맞춤법 책을 쉽고도 병맛 요소를 가미하여 만들어 냈다. 새벽 두시 남들 다 자는 시간에 자니?라고 문자를 보내오는 오빠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이제 막 썸을 타기 시작해 밥이라도 먹자고 톡을 날리는 언니들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다.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단계에서 문자로 주고받는 그 단계에서 이미지를 깎아 먹지 않으려면 지켜야 할 건, 바로 무엇이냐.

맞습니다. 맞춤법. 틀린 글자로 연락이 오면 왠지 이 사람에게 호감이 들지 않는다. 안과 않을 구별 못하고 되와 돼, 굳이와 구지를 못 쓰는 그와 그녀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세종대왕님이 엉엉 울고 계실 것만 같다. 연애에 성공하고 싶은 비결을 이주윤은 한글 맞춤법부터 제대로 쓰자고 말한다. 자니 하고 뜬금없이 문자를 보내놓고 내일 밥 먹지 안을래라고 쓰면 밥은커녕 얼굴도 보기 싫을 테니 말이다.

이 책 정보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결제와 결재를 언제 쓰느냐. 설거지, 베개, 찌개를 틀리지 않고 쓰려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읽어보시라. 읽다가 뒤로 자빠져도 난 모르는 일. 딱딱하고 어렵지 않다. 각각의 맞춤법 표기에 맞는 예문이 웃기고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해준다. 어려우면 어렵다고 말하고 모르면 몰라도 된다고 하니.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선 보고 연애에 실패하고 전남친에게 맞춤법을 가르치다가 폭발한 경험이 쌓여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이 탄생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정신이여 눈물 난다. 저자 자신도 잘못 알고 있었던 맞춤법을 부끄럽지만 알려주고 직접 그린 그림은 이해가 잘 되게 도와준다. 글만큼이나 그림도 웃기다. 가르치다 와 가리키다를 구분하기 위해 교사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교사 친구는 현장 경험이 담긴 골 때리는 구별법을 들려준다. 유유상종.

맘 먹고 읽으면 한 시간이면 읽는다. 한 시간 투자해서 마음에 드는 이를 사로잡을 수 있다면 밑져야 본전이니, 우리 다 같이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읽어보자. 낄낄대면서 웃을 수 있고 공부도 되고 사랑하는 그이에게 환심도 살 수 있다. 이거야말로 일석삼조.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고. 어부지리도 되나, 막 갖다 부치면 하나는 맞겠지. 일거양득도 추가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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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주윤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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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비혼 남녀 여러분들 이번 설은 무사히 보내셨습니까? 혹시 잔소리에 지쳐 조용히 전을 부치다 집을 나오시지는 않으셨는지요.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커플을 쳐다보며 한숨을 푹푹 쉬지는 않으셨는지요. 아니면 너 님은 말하세요, 나는 안 들을 테니라는 포즈로 소파에서 떨어지지 않으셨는지요. 결혼은 언제 할 거냐. 얼마 버냐. 선 자리 있는데 어때 생각 있니. 이런 말을 들으며 산적과 동태전과 육전을 입속으로 욱여넣으셨나요. 그래도 맛있지요? 원래 명절 음식은 살이 안 찐답니다. 살은 내가 찌는 거지요.

대체 휴일이 있었지만 대체 연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지. 출근 날이 되어 버스를 기다리며 잔뜩 부분 뱃살을 만지작거리며 우울해했나요. 조카들 용돈 주느라 얇아진 지갑을 쓰다듬으며 속상해했나요. 자 자 그러지 말고 이 책 한 번 읽어봅시다. 전직 간호사에 일러스트레이터에 소설가 지망생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누워 있는 걸 좋아하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하는 이주윤의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입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라는 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 이걸 읽어라 저걸 읽어라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재밌다고 해도 상대는 난 재미없는 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추천하기가 상당히 조심스럽지요.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노래 가사대로 각자 살고 각자 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책 꼭 읽어보세요. 그러니까 당신. 명절 때 들은 잔소리로 스트레스 지수가 팍팍 올라간 당신. 결혼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당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추천합니다.

처음 알게 된 작가 이주윤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녀의 말발과 드립력에 감탄하고 맙니다. 참으로 즐겁고 세상을 무한대로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제가 현실에서 사람 만나는 걸 즐겨 하진 않는데 책을 읽으며 사람들이 어떤 생각으로 살아가는지 알아가는 걸 낙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주윤 작가는 저와 비슷한 점이 많기도 하고 제가 가지고 있지 않은 유머력이 있어 이후에 나올 책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비혼 주의자로서 살아가는 일상의 단면이 즐겁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주윤 작가의 아버지, 어머니는 선 자리를 알아봐 놓고 결혼을 종용합니다. 어머니는 매일 전화를 걸어와 안부를 묻습니다. 부모님은 평택에 살고 그녀는 서울에 삽니다. 명절 날 전 부치러 가는 에피소드는 가히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웃기고 슬프고. 웃기고 슬프고를 번갈아 하면서 현실 웃음을 짓게 만듭니다. 선 보는 자리에 서강준 닮은 이가 나타나 설레었다가 이내 멸치남이 등장합니다. 평소 그녀의 성격대로 화끈하게 대했겠지요. 멸치남은 그런 그녀에게 "자기주장이 굉장히 강하시네요."라고 합니다. 주윤은 '알아, 안다고. 아니까 닥쳐!"라고 속으로 말합니다.

글로 읽지만 말로 들립니다. 입말이라고 하지요. 명절을 보내고 다음날이 출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집어 든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읽으며 배를 두드리며 웃었습니다. 평소 느끼던 삶의 부조리를 쉽고 재미있게 표현해주니 웃지 않을 수가 있나요. 노처녀라고 합디다, 세상은. 주윤 작가의 아버지 말에 의하면 여자는 서른이 넘으면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네요. 하. 한숨. 하하하. 이것은 웃음. 노처녀라고 하면 어떻고 쭈그렁방탱이라고 하면 어떻습니까.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그러다 늦잠 자는 주윤. 광화문에 있는 교보 문고에 가는 걸 좋아하고 형부가 하는 카페에 앉아 글을 쓰는 주윤. 혼자 지내니 시간을 온전히 자기에게 쓸 수 있어서 즐거워하는 주윤.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살아갑니다. 다양한 사람들만큼이나 삶의 다양성도 존재해야 합니다. 그걸 무시하며 자신들이 정해 놓은 기준 안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세상의 규칙을 주윤은 가볍게 무시해 버립니다.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는 결혼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이런 삶도 있으니 너도 괜찮고 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책입니다. 광화문에 집을 살 수는 없으나 카페는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불의와 무책임 앞에서는 유머 삼단 콤보를 날리며 스스로를 웃게 만들 수 있으니 주윤의 삶은 행복해 보여요. 자신만의 기준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용기가 생깁니다. 명절 잔소리를 이겨낸 그대들에게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를 바칩니다. 부디 받아주시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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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징조와 연인들
우다영 지음 / 민음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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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지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며 사는 남자가 있다. 과거의 불행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현재의 행복을 의심하며. 그런 남자를 바라보는 여자가 있다. 둘은 연애의 길로 들어서지만 결말은 뭐 그렇게 된다. 짐작대로. 이별의 수순을 밟는다. 이 세계의 밤은 아무리 밀어내도 곧 다시 밀려드는 안개처럼 그들을 에워싸고 있다. 우다영의 소설집 『밤의 징조와 연인들』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에서는 이런 만남과 계산된 헤어짐이 빈번하다.

상처받은 과거를 꺼내 놓고 자신의 슬픔을 알아달라고 한다. 계획된 미래를 꿈꾸지만 현재는 흔들리기만 한다. 과거 함께 했던 연인의 부고를 들으면서도 그와 함께한 시간이 정말이었는지를 되묻는다. 한 여자를 기다리면서 그녀에게 닥쳤던 꿈이 상실되는 순간을 떠올린다. 우다영의 소설적 세계는 폴 오스터가 그려내는 우연의 변주가 배경처럼 펼쳐진다.

핍진성. 필연. 소설에서는 인과 관계가 확실해야 하며 꾸며낸 세계일수록 완벽하게 서사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우다영은 그걸 비웃는다. 알지 않은가. 우리가 만나서 사는 현실에서 우연은 빈번하고 자주 등장한다는 것을. 당장 카페에 앉아 있다가도 낯모르는 이와 대화를 시작하면 그와 나는 비슷한 과거를 공유했고 취향을 가졌으며 기억을 더듬어가면 누군가를 공통적으로 알고 있다.

개에 물린 적이 있는가. 「조커」에서 '나'는 소개받은 여자를 기다리면서 우연히 한 여자와 합석한다.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아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얼굴 없는 딸들」에서 여자아이들의 과거는 이상할 정도로 비참하게 기록된다. 아이들에게 도덕적인 판단은 중요하지 않다. 감정이 태도가 되는대로 살아간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면서 건너온 세계의 문은 닫힌다. 문밖에 두고 온 세계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우다영의 인물들은.

묻지 마 테러에 희생된 딸아이의 지갑을 보며 사실은 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현실을 자각하는 아버지. 뒤늦은 깨달음은 후회와 가정을 반복하게 만든다. 도덕성을 벗어던진 여자아이들은 자란다. 「얼굴 없는 딸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된 이야기를 그린 것 같은 「셋」은 비밀은 결국 깨어진다는 기이한 여운을 남긴다. 『밤의 징조와 연인들』의 인물들은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해 낸다. 그렇게 하면 불행한 현재가 괜찮아질 것이라고 믿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현재는 현재다. 과거에 사로잡힐 일도 아니고 다가오지도 않을 미래를 걱정할 것도 없이 살아가야 한다. 우다영의 연인들이 연애에 실패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은 현재를 버거워한다. 아름다운 미래를 원하면서 왜 현재를 두려움으로 방치해 놓을까. 닫힌 문을 바라보며 답을 할 수 없는 의문에 사로잡혀 다음 세계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문을 열어주고 싶은 마음으로 『밤의 징조와 연인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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