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 작가특보
곽재식 지음 / 북스피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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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든 살아간다. 지치지 않고 버티면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살아 있구나라는 마음을 기억한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화를 내지 말고 기분이 가라 않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이루지 못한 꿈 하나쯤은 가슴속에 고이 품고 산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살아가야 한다. 요즘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는 것의 의미이다. 아프지 않아서 내 몸 하나 누일 방 한 칸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

주문처럼 삶의 이유를 나열해 본다. 걱정은 사소한 것으로 넘기고 불안은 마치 느껴본 적 없는 것처럼 무시한다. 혼자만의 시간 갖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 된다. 책을 읽으면 할 수 있다. 친구가 없어도 쓸쓸하지 않다.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로 아침을 맞이하고 일 끝나고 빨리 가서 읽다만 책을 읽어야지로 심야의 허전함을 달랜다. 당신의 삶이 의미 없음으로 느껴질 때 곽재식의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곽재식은 이야기를 쓸 줄 아는 작가이다. 곧바로 흥미로운 이야기로 진입한다. 결말은 다소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은 곽재식이 오랫동안 소설을 쓰면서 생각하고 겪었던 작가 생활의 내밀한 부분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곽재식은 소위 말하는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고 소설을 쓰는 작가다.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고 취미로 소설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인터넷 웹진 <거울>을 발견하고 그곳에 꾸준히 소설을 올렸다. 얼마 되지 않는 댓글이 달렸다. 꾸준함에 반해 필진으로 합류했고 지금까지 소설을 쓰고 있다. 그가 쓴 소설 중 한 편인 「토끼의 아리아」가 드라마 극본으로 쓰이면서 아주 조금 이름을 알렸다.

책에는 그가 작가로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솔직하게 실려 있다. 인터넷에서 알게 된 사람이 돈을 모아 단편집을 만들어 주었던 사연부터 단편 소설 한 편당 얼마씩 받는지까지 어디서도 알 수 없는 출판계의 사정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그의 표현대로 별로 유명하지 않은 자신이 꾸준히 소설을 쓰고 책을 낸 비결도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인생을 바꿀만한 대역전극이란 오늘 밤부터 글을 써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돈 안 드는 취미 생활로서 완벽하다. 돈이 없어서 책을 사보지 못한다면 도서관에 가면 되고 종이와 펜은 어디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혼자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망하는 건 나의 정신 상태뿐이다. 글을 너무 못 쓰고 못 쓴 글이라도 뭐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나의 정신을 망하게 하지만 쓰다 보면 글은 는다. 진짜. 나의 기준에서 곽재식은 이미 유명 작가인데 그는 한사코 자신이 별 볼일 없는 작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등단을 하지 않아도 상을 받지 않아도 그는 꾸준함으로 '곽재식 속도'를 유지하며 소설을 쓰고 괴물을 연구하고 기이한 사건을 수집한다.

체제 밖에서 자신만의 감각과 속도를 가지며 글을 쓰는 곽재식을 응원한다.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적이고도 인간적인 곽재식. 그가 쓰는 소설은 더 인간적이다. 행복한 결말을 쓰려고 노력하는 소설가라니 이 얼마나 낭만적이고 판타스틱 한가. 살기 싫어서 사는 것에 굳이 의미와 이유를 부여하며 지내고 있었다, 사실은. 책이 있어서. 재미있는 소설을 쓰는 곽재식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실은.

'1곽재식 속도'로 글을 쓰는 삶이란 근사한 것이다. 작가를 꿈꾸는 이라면 『삶에 지칠 때 작가가 버티는 법』을 읽으며 무한한 긍정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 대작을 쓰려고 하지 말 것. 작가가 되는 것에만 집착하지 말 것. 소설만 써서는 먹고 살 수 없으니 어떻게 돈을 벌지도 생각해야 할 것.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침을 따라가다 보면 당신도 나도 작가가 되어 글 쓰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안 된다고 해도 손해 볼 건 없다. 작가가 아니어도 자신만의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취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너는 어떤 취미가 있니 물어 오면 응, 나는 글을 쓰는 게 취미야. 뜨악하게 쳐다보곤 돌아선다. 다시 혼자가 된다. 그래도 계속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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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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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이 살았던 마지막 집 뒤쪽으로는 기차가 지나갔다. 드라마를 보고 있을 때 정말 중요한 대사가 나올 때 기차는 지나갔다. 잠깐 배우의 입모양을 보고만 있어야 했다. 기차가 지나가는 순간은 세계가 일시 정지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옥상에 올라가면 기차를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기차는 드문드문 불빛을 안고 종착역인 이곳으로 달려왔다. 철제 대문을 밀면 왼쪽으로는 주인이 사는 커다란 기와집이 있고 오른쪽은 다른 세입자가 사는 집이 있었다. 중앙으로 걸어가면 작고 단단한 양옥집이 우리 집이었다. 아직 연탄을 넣어서 쓰는 그 집에서 우리는 일 년도 채 못 살았다.

엄마가 떠나고 연탄을 갈지 못해 냉방이 된 새벽에 눈을 뜨고 한참을 누워 있었다. 부엌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 도마에 칼질을 하는 소리들이 그리웠다. 그런 소리들이 들리고 나면 엄마가 일어나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방바닥의 온기와 소리가 없는 아침은 서러웠다. 늦게까지 골목에서 놀고 있어도 저녁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외침이 없는 겨울을 지나 봄이 왔다. 나중에야 들었는데 그 집의 보증금이 600만 원이었단다. 엄마가 집을 나가고 아빠는 주인집에 가서 월세로 돌리겠다면서 그 돈을 빼서 전부 써 버렸단다. 잠깐 화해를 했던 건가 엄마가 돌아오기도 했는데 다시 떠나버렸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라는 망각의 힘을 빌려 추억이 된다고도 하는데 내겐 그 집에 살았던 기억은 결코 추억이 되지 못했다. 그리움조차도. 어느 날 학교에 갔는데 똑같은 옷만 입고 온다며 놀리고 엄마 없는 애라고 애들이 놀아주지 않던 기억을 무엇이라고 부르면 좋을까. 수학여행비가 없다고 하자 아빠는 자신의 친구 집에 가보라고 했다. 밤이 되도록 기다렸는데 결국은 받지 못했다. 유년을 지배했던 기억의 배경에는 허름한 옷을 입은 가난이라는 아이와 함께였다. 동생이 간식을 받았다고 빵을 주었는데 좀 더 달라고 하자 자신도 배가 고프다고 했던 찰나의 기억.

한지혜의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를 읽으며 기찻길과 연탄, 보증금 600만 원, 동생의 울먹거림, 엄마가 떠올랐다. 시간이라는 힘에 밀려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또다시 가을이고 나는 지나간 것들을 환기해 보는 것으로 책장을 넘긴다. 집이 아닌 방에서 방으로 이동한 아이는 책을 읽으며 문학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소설가 한지혜는 자신의 유년을 꺼내 보이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섯 식구가 살던 곳은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곳이었다. 이사를 가자고 해서 가보면 그곳은 대문이 없는 비탈 위에 간신히 세워진 방이었다. 그 방에서 아이는 책을 읽는다.

아이어도 안다. 아이니까 더 잘 민감하게 느낀다. 자신의 집이 다른 집과는 다르다는 것을.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없으며 무언갈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이제는 멈춰야 한다는 걸. 「숨어 있기 좋은 책」으로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시작한다. 현실과 동화는 다를 것이라고 믿었던 아이는 책으로써 자신만의 환상을 부풀린다. 책 많이 읽는 아이라는 뿌듯함을 가난한 부모는 대견해했다. 없는 형편에도 아빠는 책을 한 권씩 사 오고 동네 아주머니들 있는대서 보란 듯이 월부 책 장사한테 책을 주문해주는 엄마. 그들이 있어서 아이는 낭만을 꿈꾼다. 동화의 세계는 이곳과 다른 것을 꿈꾸게 했다. 『못나도 울 엄마』를 읽기 전까지는 그랬다.

눈을 뜨면 날마다 새로운 날이지만 실상 삶의 관성은 어제를 포함한 기억 속에 있다. 살아봤던 시간의 습관으로 살아보지 않은 시간을 더듬어 가는 것, 현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과거인 그런 게 삶이라는 생각도 든다.
(한지혜, 『참 괜찮은 눈이 온다』中에서)

꿈을 꾸고 싶어서 책을 읽었지만 그 안에서 마주한 건 허구 역시 현실에 기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날카로운 진실이었다. 아이는 이제 다른 의미로 책을 읽고 세상의 비의를 알아간다. 자신이 상상한 다락방이 아닌 곳으로의 이사. 대문이 없는 집에 사는 것이 부끄러워 선생님이 데려다준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 신춘문예에 당선이 돼 놓고도 상금을 혼자 쓰고 싶어서 가족을 시상식에 초대하지 않은 놀랍고도 솔직한 일화. 기혼 여성 소설가로서 '아이는 어쩌고?'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 구하기. 아빠가 쓰러지고 이 년 동안 병간호를 하며 경험해야 했던 절망의 시간.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는 꺼내 보이고 싶지 않던 순간을 기꺼이 내 보이며 삶이 주는 고통에 당신이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응원이 담겨 있다. 글이라는 게 참 좋은 게 부끄럽고 한심했던 과거의 이야기도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쓰는 순간을 거치면 그럼에도 빛나는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날이라고 생각하며 어제를 지운 듯이 살아갔다. 세련되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허세를 부리며 내가 아닌 척 꾸며 보았지만 과거는 악착같이 나를 따라왔다. 한지혜는 자신이 살았던 골목의 기억을 들려주는 것으로 과거를 부정하며 살아간 나의 시간을 되돌려 놓았다.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주어진 현재를 사랑하고 과거를 긍정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너를 이해한다는 충고가 아닌 네가 살아온 과거는 절대 부끄럽고 나약한 것이 아니었음을 알아주는 포옹을 선물 받았다. 이리 와, 힘껏 껴안아 주는 것으로 생이 가져다준 불안과 미움, 어리석음을 외면하지 않고 바로 볼 수 있었다. 한지혜는 엄마가 미웠다고 썼다. '너무 미워해서 후회할 염치도 없을 만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고. 그다음 문장은 이것이다. '그랬더니 남는 게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나와 동생을 두고 한 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엄마. 다시 돌아왔지만 끝내 누군가를 용서할 수 없어 다시 떠난 엄마. 이제는 돌아올 수도 없이 떠난 엄마. 『참 괜찮은 눈이 온다』에서 내가 그토록 쓰고 싶었던 문장인 엄마가 미웠다를 읽으며 오늘은 '엄마 그때 화내고 성질내서 미안해요'를 연필로 꾹꾹 눌러 써본다. 미움의 다른 이름은 미안해라는 것을 겨우 깨닫는다. 눈이 드문 남쪽 나라에 사는 나는 습관처럼 찾아온 아침을 맞이한다. 창가에 비스듬히 꽂힌 햇빛 한 줌은 괜찮아, 괜찮아라고 속삭이는 것 같아서 웃어 본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는 삶과 불화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중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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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살이의 기술 - 일잘과 일못을 가르는 한 끗 차이
로스 맥커먼 지음, 김현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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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격이나 성향은 한 번 형성되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일찍 터득했다. 자기 계발서를 읽지 않은 이유이다. 자기 계발서를 읽는다고 해서 자기를 계발하거나 없던 자기가 생기거나 늦잠 자는 습관을 바꿀 수 있다면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만 널리고 널렸겠지. 물건을 버리지 못해서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을 읽고 집안에 있던 쓰레기를(그야말로 쓰레기였다. 쓰레기. 나는 쓰레기를 몇십 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며 살았던 것이다) 버리고 정리를 한 적은 있다. 정말 중요한 인생의 순간이었다.

성공을 향한 지름길을 알려주거나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책은 알아서 패스. 그러나 사람 일은 모른다. 책이란 읽다 보면 다른 종류의 책을 연결해주는 중매자 같은 것이어서 자기 계발서라고 불리는 책을 읽기도 한다. 읽고 있는 책에서 그 책이 좋았다는 부분을 잊지 않고 그럼 나도 읽어볼까 하고 읽어보는 것. 로스 맥커먼의 『직장살이의 기술』은 이다혜의 『출근길의 주문』이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간략하게 소개해 놓은 책의 내용이 흥미로웠다.

원래 이렇게 무슨 무슨 기술이라고 붙은 책은 읽어보면 그다지 배워서 써먹을만한 기술은 없게 마련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비유가 적당하려나. 그래도 당신이 일을 하면서 자존감이 한없이 낮아졌을 때 첫 입사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어찌어찌해서 면접에 합격해서 일을 하게 되어 첫 출근을 했을 때 옆에 있는 동료가 왕재수라는 사실을 터득했을 때 『직장살이의 기술』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로스 맥커먼은 항공사 잡지계의 에스콰이어라고 불리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기내 잡지사의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책상에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붙었다. 그는 전화를 걸었고 자신을 허스트 매거진의 채용 담당자라고 소개하는 사람과 연결되었다. 그가 평소에 선망하던 에스콰이어 잡지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면접을 보러 뉴욕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로스는 날아간다. 단숨에. 재킷 없이 면접을 치른 경험으로 시작한 그의 회사 생활이 『직장살이의 기술』에 재미있게 담겨 있다. 실제 그가 한 바보 같은 일들이 있고 그 일에 대한 깨달음으로 형성된 조언이 재미있게 쓰였다.

여기까지 읽었는데도 이 책이 별로라고 생각이 된다면 『직장살이의 기술』의 목차만이라도 읽어보시라. '직장에서 옷 잘 입는 법, 회사에서 웃는 법, 신입 때 실수에 대처하는 법, 왕재수와 일하는 법' 같은 온갖 법들이 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메이저 잡지에서 일하며 겪었던 실수담이 섞이면서 이 책은 틈틈이 웃게 만든다. 그는 스스로를 아웃사이더라고 지칭한다. 유명한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이 많지도 않은 그가 직장에서 유능해지기까지의 과정과 나름의 방법이 있다. 자신을 아웃사이더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읽으면 무수한 공감의 하트를 누를 수 있게 만드는 책이다. 자고로 아웃사이더는 아웃사이더끼리 통하는 법이다.

직장에서만 통용되는 기술은 아니다. 동네 꼬마와 마주칠 때도 그 애가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며 가던 길을 가지 않고 멈춰 서서 웃고 있을 때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직장살이의 기술』의 어느 한 부분을 가져와 적용 할 수도 있다. 가장 웃겼던 부분은 로스 맥커먼이 만든 테스트 문항이었다. 그가 던지는 질문에 답을 하고 점수를 구하며 내가 진정 이상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결론은 우린 모두 이상한 사람인데 월급 주는 그곳에서는 대체로 이상함을 잘 감추고 있다가 진짜로 왕재수를 어쩌다 운도 없이 만날 때 숨겨뒀던 이상함을 드러내 보이면 된다는 것이다. 기술이라고 이래라저래라 알려주고 있지만 바보 같은 웃음을 잃지만 않으면 직장살이를 계속할 수 있다. 그게 행운이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지만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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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주문 -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
이다혜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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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버스를 타는 일이 이제는 익숙해졌다. 알람이 울리면 신나는 음악을 찾아 틀어 놓는다. 신나지는 않지만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 신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씻고 옷을 챙겨 입고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매일의 바람, 햇살, 구름의 크기를 보는 일보다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다 차갑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오면 아, 이제는 가을이구나 기분이 어두워진다. 밝아지는 순간은 은행 앱을 열어 월급 님이 들어오신 것을 확인했을 때. 오예.

이다혜의 책은 처음 읽는다. 그 책이 『출근길의 주문』이어서 좋았다. 읽는 내내 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오로지 나와 나를 둘러싼 나의 환경에 대한. 자질구레한 상념들. 하늘은 높고 바람은 차가워진 주말 오후 내내 『출근길의 주문』을 읽었다. 주말이 있어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족한 나의 지식의 곳간에 새로운 이야기를 채울 수 있었다.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어도 사고의 영역은 넓어지지 않았다. 현상에 대한 나의 해석 보다 남이 만들어 놓은 관점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살고 있다.

『출근길의 주문』은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을 다룬다. 실제 저자가 경험한 이야기를 토대로 쓰인 책이라 현실적이고도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읽을 수 있었다. '일터의 여성들에게'라는 부제가 붙었다고 해서 이 책이 여성들에게만 필요한 책은 아니다.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는 이분법은 낡았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직장과 가정에서 겪을 수 있는 '여성'이라는 성별의 한계를 주로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담고 있다.

좋은 책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유도하는 것이다. 『출근길의 주문』을 읽으면서 그동안 내가 무심코 했던 행동을 반성했다.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또 그럴 수 있지만 그래도 나를 반성해 보는 것. 『출근길의 주문』의 장점이다.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관계에 대하여」라는 글을 많은 사람이 읽으면 좋겠다. 읽고 나서 뻔히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말하더라도.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친구는 많다. 기쁘고 행복한 일에 대해 진정으로 축하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내용에 인정했다.

'타인의 불행을 수집하는 사람이 되지 말 것'이라고 이다혜는 말한다. 일하다가 혹은 사교 모임에서 남의 험담을 주로 하다가 돌아오면 굉장히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고 그 하루는 망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말과 글에 주의해야 함을 피력하고 직접 체험한 일을 근거로 직장에서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할 사항을 알려준다. 가족에게는 절대 자신의 수입을 알리지 말고 직장에 다니는 동안 가장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고 큰언니처럼 알려준다 (가장 중요한 일은 책의 마지막에 나와 있다. 알고 싶으신 분들은 『출근길의 주문』을 꼭 읽어 보시라).

누구나 처음은 어렵다. 첫 학교, 첫 직장, 첫 결혼. 하물며 사는 것도 처음인데 삶은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어려움에 빠질 때마다 도망가고 숨을 것인가. 『출근길의 주문』은 삶이 걸어오는 싸움에 지고 구렁텅이로 빠졌을 때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세상에 지지 않는 법'을 가르쳐 준다. 현실의 사람이 해주는 잔소리와 충고는 기분이 나쁜데 책 속에서 다정히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조언해주는 그 말은 용기가 된다. 큰 회사와 작은 회사의 장단점, 스몰 토크를 할 때 주의할 점, 프리랜서로서 버티는 법, 일에 대한 자신의 신념 정비하기, 술자리를 갈 것인가 말 것인가. 『출근길의 주문』 안에는 이 모든 의문에 대한 자상한 위로가 있다.

내가 하는 출근길의 주문. 일 끝나면 집으로 가서 책 읽으며 라이언 인형과 놀아야지. 귀염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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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모독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06
페터 한트케 지음, 윤용호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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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연극을 보러 가도 공연장의 분위기를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내 앞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집중하지 못하고 자주 땅바닥을 보곤 했다. 혹시 눈이라도 마주칠까 봐. 어색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배우가 나온 연극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는 좀 튀는 걸 좋아해서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제 막 연기를 끝낸 배우에게 내가 뭐라고.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의 시작은 흥미롭다. 기존 희곡의 서술의 방식에서 벗어난다. 배우를 위한 규칙들로 시작된다. 연극을 준비하는 배우들은 한트케가 지시하는 규칙을 이행해야 한다. 사물의 소리를 듣고 현상을 목도하는 일. 발성을 가다듬고 호흡법을 연습하고 얼굴 표정을 짓는 일이 아닌 소리를 들으며 의식의 밑바닥에 있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봐야 한다. 네 명의 배우는 대사를 따로 나누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극을 이끌어 간다.

여러분으로 시작해서 너희들로 끝나는 기괴한 연극. 배우의 음성이 아닌 활자로 된 언어로 『관객모독』을 보면서 무대를 상상했다. 그 안에는 숨을 자유롭게 쉬고 어색하게 눈치를 보는 일도 없을 것이다. 잘 차려입고 오랜만에 문화적 허영심을 충족하러 온 관객을 향해서 독설을 날린다. 기존에 봐 왔던 연극이 아니어서 관객들은 당황할 것이다.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여 그들의 의식을 허세를 낱낱이 까발린다. 『관객모독』은 줄거리가 따로 없는 희곡이다.

연기를 하지 않는 연기를 하며 대사가 아닌 대사를 한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배우의 움직임과 대사의 상징을 찾는 일은 의미 없는 일이다. 시간의 흐름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지금 무대의 시간이 흘러 다음이 있다고 믿는 관객에게 이곳의 시간은 흘러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아무것도 흉내 내지 않는 연극을 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허구의 세계 안에서 환상은 실종된다.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은 환상이 되어 사라진다. 시간은 정지하고 언어는 소멸한다. 『관객모독』은 언어로써 시간의 부재를 증명하려 한다. 실컷 모욕과 모독을 보여주고 안녕히 돌아가시라는 끝인사를 하는 연극. 당신은 201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페터 한트케가 궁금해서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의미 없는 일.

『관객모독』은 의미 없음의 의미를 찾아간다. 당신이 찾고자 하는 의미는 이 세계에 어디를 둘러봐도 없으며 결국 의미 없음으로 귀결되는 결과를 받아들고 쓸쓸히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연극에서 퇴장할 일만 남았다. 한밤중 들려오는 개와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막힌 수챗구멍을 들여다보는 일.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 구멍에 나를 끼워 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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