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그만 읽고 병원에 가보시는 게-"

 

오늘 받은 충고(?)의 말이다.

왜 책을 그만 읽어야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분이 말씀하신 그대로 농담 반, 진담 반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더 읽지 못해서 분한 내 마음에 신나를 들이붓고 지포라이터를 켜는 소리였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 두 눈 부릎뜨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읽어치워야할 책 무덤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싶은 나에게

참 고마운 자극(?)을 주는 전언이었다.

 

무쟈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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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7-03-3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너무 심했다! 열심히 읽으세요.^^

문차일드 2007-03-31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요즘 책읽기가 소강상태였는데 저런 말을 들으니, 아주 의욕이 덤벼들고 있습니다... 병원 가야할 분, 제 주위에 가득한데요...^^;;
 
천상의 바이올린
진창현 지음, 이정환 옮김 / 에이지21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지금은 고인이 된 스튜디오 지브리의 유망한 감독이었던 콘도 요시후미의 애니메이션『귀를 기울이면』에서 나오는 소년소녀를 기억하는가? 독서광인 소녀 시즈쿠는 바이올린 메이커를 꿈꾸는 소년 세이지를 만나, 비로소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된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 가운데서도 가장 희망적이면서 건강한 청춘다움이 물씬 풍겼던 그 작품을 떠올린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명기 바이올린을 만들기 위해 크레모나로 유학을 떠났던 중학생 세이지는 『해협을 건너는 바이올린(한국어판 <천상의 바이올린>)』으로 유명한 진창현에 비하면 얼마나 빛나는 출발을 할 수 있었는지... 새삼 깨닫는다.


  진창현은 일제 강점기에 경남 이천의 비교적 유복한 지주의 가문에서 태어나 중등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카와라는 일본인 선생님께 감화 받으며 막연하지만 잊혀 지지 않는 바이올린과의 만남도 이룰 수 있었다. 종전을 맞기 전 일본으로 건너와 여느 재일한국인과 다름없는 차별과 냉대 속에서 자신의 소명인 바이올린 제작의 의지를 불태우며 한 번도 수월한 적 없는 파란 많은 인생을 벼르기 시작한다. 조선인이라는 그의 신분은 일본의 어느 바이올린 제작자의 제자로도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장벽이었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도 홀로 고독한 바이올린 제작에의 의지는 꺾인 적이 없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밀이 수세기에 이르도록 밝혀지지 않은 것은, 바이올린 제작과정을 제자나 아들에게도 물려주지 않는 장인들의 폐쇄적인 작업환경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바이올린 제작자들이 지금도 지켜나가고 있는 불문율이다. 진창현이 부딪힌 것은 이방인에 대한 냉대 뿐 아니라, 이런 가혹한 작업과정을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뚫어나가야 하는 막막한 현실이었다. 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봐도 그가 이룩한 거대한 위업 속에 누군가의 지도나 조력은 찾아볼 수가 없다. 아내와 서서히 그의 명성을 인정해주는 우호적인 몇몇의 지인들은 그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명기를 만들 수 있는 온건한 힘이 되어주기도 했지만.


  세계에서 5명밖에 없는 무감사 바이올린 메이커가 된 과정을 닮은 그의 자서전은,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거나 확대할 필요가 전혀 없다. 어떠한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로도 전할 수 없는 진정성이 생생히 담겨 있으니, 그것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덧씌워진 전설이 되어버린 일화들은 그 치열한 삶 앞에서는 아주 작은 역할을 할 뿐이다. 바이올린의 현처럼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빼고, 총 4현, 네 개의 부분으로 이루어진 각 장에 담긴 것은 성공이 아니라,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가 반복한 실패와 시행착오와 끈기의 소산이다. 화려한 명성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있게 해준 과거의 피와 땀으로 이룬 지난 시간이 담담하지만 웅변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일본에서 출간된 후, 드라마가 되고, 여러 다큐멘터리로 고국에서 소개되기도 하면서, 이제야 한국어 번역판으로 만나게 된 책은, 진창현의 인생역정을 담아내기에는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분명 이 책은 진창현이 후기에 밝힌 바대로 일본인 대필 작가(오카야마 도오루)가 구술이나 인터뷰를 통해 정리했을 것이다. 유독 이천에 대한 회고와 어머니를 비롯한 한국에 남은 일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할 때마다 느껴지는, 껄끄러운 일본어투의 번역은 책을 일독하는데 상당히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이 낳아주고, 일본이 길러주고, 미국이 은혜를 베풀었다’라는 그의 콩쿠르 수상소감처럼, 그를 강하고 유연한 음색을 지닌 명기를 빚는 장인으로 만든 것은,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서도,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일은 한 번도 게을리 하지 않은 소명의식의 구현일 것이다. 꿈꾸는 것을 게을리 하고, 내 소명을 미심쩍어하면서, 하루하루를 그저 그런 시간으로 퇴색시키고 있는, 너무 많이 가져서 오히려 정신이 궁핍한 시대를 사는 우리를 자성하게 만드는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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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지 않은 내 동생 한울림 그림책 컬렉션 1
하마다 케이코 지음, 김숙희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로렌 차일드의 ‘찰리와 롤라’ 시리즈는 남매가 주인공인 그림책 가운데서도 가장 큰 성공과 찬사를 얻은 작품일 것입니다. 토마토(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음식)는 절대 안 먹는, 피곤하지 않아 잠도 안자는, 학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수만 가지쯤은 되는 여동생 롤라에게, 오빠 찰리는 전략과 전술의 귀재 제갈량처럼 버럭 화 한 번 내지 않고, 사태를 해결합니다. 찰리와 롤라 시리즈에서 오히려 현실적인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얄밉지 않은 기상천외한 떼쟁이 동생 롤라이며, 슈퍼 컴퓨터 만큼이나 다양한 대안의 답안지를 척척 내놓을 수 있는 꼬마 현자 찰리오빠는 작품의 판타지를 더 확장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현실로 돌아와 볼까요?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갈 만큼 자라기 전까지 어느 가정에서나 소황제로 군림합니다. 사회성을 키워나가고 자신의 세계를 넓히기 위한 첫 걸음 전에, 아이들은 이미 가장 가까운 곳에서 형제들과 경쟁하며, 자존감을 공고히 하거나, 상처를 입습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전쟁인 형제, 남매, 자매간의 알력 다툼은 그 경중을 떠나 하나같이 심각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온갖 투닥거림 끝에 은근슬쩍 나누는 피보다 진한 화해와 인정을 겪지 못하는 외동아이들이 진심으로 안쓰러울 때가 종종 있는데, 『귀엽지 않는 내 동생』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하마다 케이코의『귀엽지 않는 내 동생』은 표지, 간지, 띠지, 액자식 구성, 반복되는 공간의 활용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는 치밀함으로 좌충우돌 남매의 일상적이면서도 동시에 절세절명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대부분 모든 장치들이 겸손하게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머리를 싸매가며 풀지 않아도 되는 그림책적인 관용이 물씬 풍기기 때문에 아이들을 내려다보지 않고도, ‘맞아 맞아’하는 공감을 나누며 작품 속으로 섞여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표지에 그려진 개구진 여자아이의 표정을 보세요. 앙다문 입매에서 고집을 관철시키는 막내다운 의지가 엿보입니다. 쫑쫑쫑 땋아진 양 갈래 머리가 유일한 여자다움으로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요? 띠지를 벗겨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엽지 않은 내 동생』이라는 제목의 유래를 알 수 있는 책 속의 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오빠는 동생이 좋아하는 『귀여운 내 동생』이 동생과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투덜거리고 있고, 동생은 나와 오빠의 이야기와 꼭 닮았다고 생각하고 있네요. 이 좁혀지지 않는 사고의 차이가 웃음과 기대를 약속하고 있지 않을까요? 본문으로 들어가니, 화들짝 놀랄 일이 생깁니다. 2학년인 고타의 여동생 1학년 마호는 오빠의 바가지머리를 꼭 닮은 떠꺼머리였습니다. 음... 마호는 자신을『귀여운 내 동생』에 나오는 주인공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공주님을 동경하는 또래의 아이들 마냥.

  고타는 누가 봐도 붕어빵인 동생 마호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입니다. 학교 갈 때 고타의 셔츠를 움켜쥐고 있는 마호를 보니, 오빠와 동생의 마음의 온도차가 짐작됩니다. 고타의 불행은 바로 옆 반인 마호, 체육시간에도 마주치는 마호, 집에서도 한 방을 써야하는 마호, 생일날 나보다 먼저 선물을 풀어보는 마호, 내 세상 전부에 속속 스며있는 마호지수의 과잉에 있습니다. 그런데 고타는 모르는 것일까요?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요? 마호는 세상에서 고타를 가장 좋아합니다. 고타는 마호의 자랑거리이면서, 좋아하는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은 선택받은 행운아라는 것을.

  고타가 마호에게 해방이 된 날은 독감에 걸린 날입니다. 오빠에게 가지 못해 빼꼼 열린 문지방에서 애타는 눈빛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마호가, 고타 다음으로 독감에 걸려 앓아 눕는 장면은 예정된 결과겠지요. 마호가 없는 등굣길, 쉬는 시간, 체육시간, 숙제시간... 분명히 고타는 행복해야하는데, 마호의 부재에 신경이 쓰여 견딜 수가 없습니다. 고타와 마호 사이의 화해의 매개체(물론 마호의 입장에서는 고타와 사이가 나쁜 적이 없습니다만)는 마호가 가장 좋아하는『귀여운 내 동생』입니다. 동생에게 자진해서 책을 읽어주면서, 말도 안되는 내용이라고 코웃음 치면서, 고타는 마호가 얼마나 귀여운 동생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감을 떨치고 일어난 마호는 몇 배는 더 수선스러워 진 것 같지만, 고타는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에 자포자기 해버립니다. 늘 내가 받을 관심을 코앞에서 낚아 채가는 형과 언니와 누나를, 동생을 둔 사람이라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어 다행이라고. 귀엽거나, 귀엽지 않거나는 상관없습니다. 귀찮고, 미워서 없어지기를 염원하기는 해도, 정말로 없어져버리는 염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더 걱정이니까요. 태어나고, 자라면서 부모님은 내 세상의 전부 같은 울타리였지만, 내 언니와 오빠는, 내가 다다르고 싶었던 닿을 듯 닿지 않아 더 약이 올랐던 역할모델이었습니다. 귀엽지 않은 동생이었을 나지만, 귀여움을 듬뿍 받고 자랐다는 기억이 더 큰 지금의 깨달음이, 내 존재를 온건하게 만드는 가장 큰 버팀목이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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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 후의 이야기
린다 버돌 지음, 박미영 옮김 / 루비박스 / 2006년 7월
평점 :
절판


  그 해 최악의 영화에 시상하는 라즈베리 상 같은 시상식이 출판계에 있다면 주저 없이 전관왕의 영예를 주고 싶은 책이다. 살면서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험을 여러 번 겪게 되지만, 이 경우,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단단히 틀어진 악연 탓에 이렇게 불평을 쏟아내야 하는 것조차 불편스러울 따름이다. 내 생애 최악의 속편... 당당히 0순위에 랭크된 『오만과 편견 그 후의 이야기』, 리뷰를 쓰는 유일한 이유는 어서 이 울분에서 해방되어 레테의 강물 한 모금으로 모두 망각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서양문학계에도 엄연한 동인물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속편이든 전편이든, 자신이 상상한 그대로를 출간할 때의 사회적 해악을 조금만 고려해준다면 좋으련만. 영미권에서 가장 사랑받는 소설 속의 인물인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가! 700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추문과 성적인 향연은, 제인 오스틴을 리젠시 소설의 대모로 추앙하는 한 축에서 나왔을지 모르지만, 이 속편을 로맨스 소설의 범주에 넣는다 해도 졸작이 평작으로 탈하지는 않는다.

  다아시는 사티로스가 울고 갈 정도의 리비도의 화신이며, 엘리자베스는 제인의 남편 빙리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읽으면서 야릇한 상상에 흐뭇해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읽지 못했다는 찜찜한 기억으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 자학하면서 붙들고 있었던 본인의 5일간의 고행(도저히 한 번에 읽을 수가 없어 미적대다가 5일간이나 바쳐야했다는 것조차 용서가 안 된다!)도 안쓰럽기는 하나, 오스틴 월드가 이토록 섹스어필로 뒤덮이는 망연자실한 변주에 따져 묻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현기증이 난다.

  정말로 저자는 제인 오스틴을 경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만과 편견』의 본질을 철저히 농락하고 있을 뿐이다. 스스로 즐기고, 소수의 지지자들로 만족하지 못하고, 전 세계각지의 도서관의 영미문학코너에서 오스틴의 계승자처럼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담해져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의식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오만과 편견』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쩌면 이것이 이 책의 유일한 미덕일지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연어와 여행하는 방법(개정판『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 따르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격으로 선풍을 일으킨 『스칼렛』의 저자 ‘알렉산드라 리플리’는 출판사가 내세운 유령작가일거라고 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 내 생애 최악의 속편은 『스칼렛』이었으나, 강력한 라이벌의 출현으로 한 단계 순위가 내려가게 되었다. 익명의 리플리 여사 오랫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오만과 편견』의 훼손이 아닌 오마주로서의 속편격인 작품을 영화와 드라마가 아닌 문학에서 찾아보고 싶다면 우리는 이미 양질의 작품들과 만나지 않았는가. 헬렌 필딩의 『브리짓 존스』시리즈, 커렌 조이 파울러의『제인 오스틴 북클럽』. 온건하고, 재기 넘치고, 끝도 없는 밀고 당김에 진이 빠지다가도, 평범한 해피엔딩에 가슴 졸이지 않아도 되는 잔잔한 살롱식 애정극.

  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5일간의 고행 끝에 완독한 그 책에서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이름을 전부 삭제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기억의 퇴행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실천해야한다. 그나저나 나는 타협할 줄 모르는 원작지상주의자인가? 아니다. 그저 졸작 앞에서 굳이 너그러울 이유를 찾지 못하는 오만과 편견이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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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4-26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님의 분노가 생생하게 전해져 옵니다^^

문차일드 2007-04-26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노를 자제했어야했을까요? 이 리뷰 때문에 더러 읽게 되실 분들이 계실까 심히 염려됩니다.^^::

마빈박사 2007-09-23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책을 보지 않은 사람인데요..님의 글을 읽고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고민되네요..제인 오스틴을 열렬히 사모(?)하는 사람중의 한 사람으로서..이 책을 읽고 어떤 맘을 품을지 걱정됩니다..그래도 읽어 보렵니다..읽고 나서 오스틴의 책과 어떻게 다른지 함 판단해 봐야 겠네요..~~
 

 

 
내가 과연 수집가였다면 이 전집을 샀을까?
25권으로 출간된 초판,
낱권으로 판매되었던 반양장 레드판,
2007년 수많은 도끼 매니아들을 통탄하게 한 보급판에 이어...
말도 많고, 탈고 많고, 때로는 출간된다는 것조차 의심스러웠던 긴 기다림 끝에
수집가용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영구보존판이 출간되었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이 3판의 수집가용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양장본을
구매한 대부분의 독자층은
새롭게 도스또예프스끼를 읽는 입문자보다
정말 수집의 목적으로,
이 전집의 가치를 익히 몸으로 체득한 독자층이 아니었을까?
 
내가 진정한 수집가라면 절대 사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후회의 몫은
충동구매(라곤 했지만 고민의 늪은 광대했다)한 본인보다는
열린책들의 과실이지 않을까?
 


열린책들의 보유작가군은 국내최강이다.

번역자층 또한 비할 바가 없다.

가장 멋드러진 양장본을 만들어내는 신뢰도 높은 출판사라고 생각하는 증거는

자신의 서가에서 [열린책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떠올리면 될 듯싶다.

보급판 페이퍼백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 심히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것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니 미미한 불평일 뿐이라고 자조한다.

그러나 동시에 절판된 양장본의 복간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는 절망한다.

 

이번에 출간된 도스또예프스끼 양장본은...

관심이 있는 소수의 독자층에게, 또는 그 주위에

불유쾌한 스캔들로 남을 수도 있지 않을까?

 

 


210질의 양장전집은 고유의 넘버링이 되어 있다.

그러나 흐릿하고 성의없게 찍혀있어 출간의 묘가 현저히 퇴색되었다.

최강의 홍보전략은 과대광고였단 말인가?

영구보존판이라고 하기엔,

마분지재질의 표지에 문제가 많다.

일반적인 아트지에 비해 원가가 4배는 비싸다고 했던가?

읽으려고 손에 드는 순간(대부분 400~8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의)

손에 항균처리라도 되어 있지 않는한

일독한 후의 구김과 더러움에 마음이 쓰라려올 것이다.

군데군데 접혀있고, 찢겨진 페이지는 어떤가?

여러 번 출간일정이 지연되어 독자의 원성을 샀지만,

이런 상태로 출간할 수 있는 뻔뻔함은 간과하기 어렵다.

차라리 나에게만 이런 책이 왔다면 개인적인 클레임으로 해결하면 될 일이지만,

문제는 210질이 매진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속속 들려오는 파본상태에 대한 경악의 목소리들.

 

열린책들의 담당자분과 여러 차례 통화를 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고서

더욱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출판사도 당혹스러울만큼 전집의 상태는 좋지 못하다고 인정하면서

연일 회의가 열린다고 한다.

210질, 그리고 전집당 18권의 도서를

일일히 확인하여 배송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그 분의 말에

현기증이 났다.

이런 상태의 도서를 만들어낸 것의 최종책임은 열린책들이 지겠지만,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믿고있는 눈치였다.

 

고가의 전집이며 한정판이다.

210명의 구매자들은 특권층도 아니며 재력가도 아니다.

등가의 적당한 권리를 보장받을 권리가 있는

열혈 독자층일 뿐이다.

뭔가 특권이나 으쓱거림을 받으려는 게 아니라,

어렵사리 결정하고 지불한 만큼에 상응하는 등가의 교환물을 받을

상식적인 권리가 보장받으면 될 일이다.

 

이미 결정되고, 출간된 도서의 리뉴얼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출판사의 의도와 독자의 기대가 만들어낸

가장 성공적인 출판물의 결과를 볼 수도 있는 황금같은 기회를

분주한 사후처리로 묵인해야하는 답답함이 꺼려질 뿐이다.

파본인 책은 교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대를 저버린 실망스런 인상까지 보상받을 수는 없다.

 

 오래오래 이 전집을 보면서

불쾌하게 달라붙은 기억을 지우기 위해 싸우게 되겠지.

수집가도 아니고 애서가도 못 되는 일개의 독자는

이런 결과를 씁쓸하게 감내해야만 하는가...

 

 도스또예프스끼라는 거대한 명성의 파고가

날 겸허하게 만든다.

3판을 거치면서 최종적으로 낙점된 스폐셜한 기획이

연일 소동으로 얼룩지는 것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열린책들이여...

책에 고유의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일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 아니라는 작지만 확실한 진리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가?

 

 신뢰를 완전히 접기에는 그간의 이미지와 만족도가 너무 높다.

실망보다는 찬사를 보낼 수 있는 출판물들을 자신작으로 내놓는

그런 출판사로 거듭나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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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7-03-26 0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군요. 이미 가지고 있는 빨간책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전 수집가도 뭐도 아니기에) 제 책꽂이에도 열린책들 책이 많아요. 이 출판사의 하드웨어가 맘에 들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데( 전 페이퍼백도 신선하고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거든요) , 이번 한정판은 실망스러워보이는군요.

문차일드 2007-03-26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평가해도 성공적인 출판물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차라리 1년을 연기했었더라도 깔끔하게 마무리지었어야했다고 봅니다... 일일히 전부 확인할 수는 없다는 출판사 분의 말씀에 망연자실해버렸습니다...

에휴, 저는 레드판 8권만 모으면 전집의 완성인데... ㅠ ㅠ 그래서 이번에 한정판을 사고, 그 책들은 언니에게 주었답니다. <향수>까지 줘버렸습니다...^^;;

비연 2007-03-26 2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쉽네요..정말.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문차일드 2007-03-26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말 속상한건... 출판사가 저런 상태의 책들을 보내고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는다는 거에요. 항의하면 바꿔주면 되지...이런 식의 대응을 보니, 제 열의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지더라구요... 몇 권이나 반품하고 교환해야하는지 답이 안나오네요...

stella.K 2007-03-2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열린책들만 보면 짜증나요. 예전엔 괜찮게 나왔던 것 같은데. 독자의 욕구를 그렇게도 모르나?
근데 어쨌든 문차일드님 여기서 뵈니 반갑네요.^^

문차일드 2007-03-27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alla09님, 여기서 뵈니 더 반갑습니다.^^

정말 열린책들... 독자의 의식에 거스르는 일 없이, 기대만큼 알찬 출판사로 거듭났으면 합니다... 이번 사태(???)는 넌센스의 극치입니다...ㅡ_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