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전설은 창비아동문고 268
한윤섭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전설

 

 

모두 눈을 감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누구나 어린 시절에 듣던 동네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동네에 있는 커다란 나무나 건물, 학교와 관련된 이야기. 아니면 동네에 있던 어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조심스럽게 전해졌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얼마나 무섭고 재미있는 이야기인지가 중요했다. 그때는 아이들 사이에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제법 재미있고 흥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아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 때와 많이 다른 것 같다. 예전에는 책이나 TV를 통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언니나 누나, 오빠나 형을 통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내가 들었던 이야기를 몇 년이 지나서 어린 동생이나 아는 아이에게 전해주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아이가 내가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무서워 하거나 재미있어 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들었을 때보다 한 두가지 이야기를 부풀리며 첨삭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예전과 비교해서 요즘 아이들은 선배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듣는 건 거의 없는 것 같다. 인터넷을 통해 더 많은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에 누군가와 대면해서 이야기를 전해 들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래도 학원 등 아이들이 많이 모인 공간을 통해서 자기들끼리의 정보를 공유하겠지만 예전처럼의 비중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누군가가 이야기를 전해 주는 '구연 이야기'의 맛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짧은 이야기나 플래쉬가 많이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책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사람인 '전기수'의 인기가 하늘을 찔렀던 것처럼 '귀로 듣는 이야기'만의 재미가 사라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동화책은 이러한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었다. 어느 날 준영의 가족은 복숭아 과수원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운 시골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쁜 도시 생활에 익숙한 준영은 시골로 가는 게 불만이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준영이는 마을 아이들과 집에 돌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준영이는 아직 그 아이들과 친하지 않아 혼자 행동하려고 했다. 그때 마을 아이들은 준영이를 붙잡고 '우리 동네의 전설'을 이야기 해준다. 왜 학교가 끝나고 마을 아이들이 집에 함께 돌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키가 작은 아이가 득산리 마을과 학교 사이에 있는 길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가운데 길에는 방앗간이 있었다. 이 방앗간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둘이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사기 바둑에 쌀을 판 돈을 모두 잃고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동네 뒷산에서 농약을 먹고 자살한 방앗간 아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아들에게는 부인과 어린 딸이 있었는데 그들은 집을 나가 버렸다. 그때 할머니는 병을 얻었는데, 어린아이들의 싱싱한 간이 필요해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였다.

 

방앗간을 지나면 작은 아기 무덤이 있었다. 옛날에 아기를 못 낳던 새댁이 겨우 아기를 가지게 되었다. 시아버지는 매일 동네 잔치를 벌일 정도로 좋아했다. 열 달이 지난 어느 날, 새댁은 혼자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이는 죽어 있었다. 새댁은 아기를 뱀산에 묻고 정신이 이상해져서 동네를 떠났다. 그래도 아기가 죽은 날에는 영혼이 되어 아기 무덤에 찾아 온다고 한다. 지금도 가끔 아기 울음 소리가 들린다고 하면서.

 

다른 길에는 밤밭을 지나 상엿집이 있었다. 그 상엿집에는 돼지 할아버지라는 염꾼이 살고 있었다. 돼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세 명이나 있던 자식들이 모두 어린아이였을 때 죽어서 돼지처럼 아이를 많이 낳아 튼튼하게 잘 키우라는 의미로 그렇게 부른다는 것이다.

 

이렇게 준영이는 동네 아이들에게 무서운 전설을 듣다가 그들과 친해지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위험한 곳에 가지 말고 모두 함께 다니면서 위험을 피하게 하려는 어른들의 지혜가 담긴 것이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자기들끼리 놀더라도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 어른들의 마음과 함께 아이들 스스로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들이 섞인 전설들이었다.

 

나도 어렸을 때 학교에 있는 화장실이 오랫동안 폐쇄되어 있었다. 화장실의 잠긴 문만을 보고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홍콩할매가 화장실에 나타났다는 상상력을 발휘하며 무서워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다양한 이야기들이나 전설들이 이제는 인터넷에 무수하게 있고 더 먼 지역까지 넓게 퍼지게 되었다. 동네의 다양한 전설들이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남으며 쌓이고 있는데, 이러한 '흔적'이 나중에는 어떤 '화석'으로 발견될 것인지 기대가 된다.

 

이 책은 처음 부분에 나오는 '우리 동네의 전설 이야기'가 핵심이었다. 그 이야기들을 구연으로 말해주면 아이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될 것인지 궁금해졌다. 막상 이 책을 읽은 아이들은 무섭고 자극적인 면이 다소 약하다고 하는데, 옛날 세대의 어른들에게 더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책으로 어른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특히, 연극으로 연출해도 좋을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혼과 도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들어진 결혼의 관념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 책을 원작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래 예전부터 인간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해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저술가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를 이 책으로 내놓았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로서 강의와 집필에 몰두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러셀은 전쟁 중에 징병에 대한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지만 납부를 거부해 대학의 강의권을 박탈 당하기도 했다.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니, 그가 얼마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열심히 사회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결혼과 도덕>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그 당시 금기시되던 도발적인 성 담론인, 결혼과 외도, 성매매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러셀은 1940년 뉴욕시립대학교의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결혼관에 대한 현재 우리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어서 러셀의 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삼포, 오포, 칠포 세대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던지는 농담은 우리의 가슴에 씁쓸한 무언가를 남긴다. 이러한 '포기' 세대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연애와 결혼, 출산의 포기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와 결혼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룰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녀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고 또 다른 흙수저 계급을 양산할 뿐인 현 상황에서 어느 누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겠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회문화적인 결혼과 성 문제를 분석하고 있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모계 사회가 중심을 이루는데, 그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보다는 외삼촌에 대한 의지가 더 높았다고 한다. 아버지와도 관계를 맺지만 외삼촌에 의해 가족과 부족의 문화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종교적인 문제로서 순결과 일부일처제가 받아 들여지면서 오늘날의 결혼과 가정 생활의 책임감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군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처녀의 순결이 중요했고, 결혼 이후에도 여자의 외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졌다. 1929년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책을 출판하면서 우리의 결혼 문화가 예전의 모계사회 때로 다시 돌아가는 양상이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러셀의 분석이 현재 우리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서 그의 예측력에 혀를 내둘렀다.

 

현재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즐기다가 죽고 싶다는 사고방식을 조금씩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러셀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경우라면 누구나 결혼을 무효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법 조항에서 살펴보면, 상대방에게 사기와 같은 큰 잘못이 없다면 결혼 무효는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인가? 상대방의 외도를 처벌할 수 있는 간통죄가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겨우 폐지 되었다. 성 자체는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을 더 높게 인정한 결과일 것이다.

 

성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결혼 제도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왜 우리는 그 힘든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직도 난리인 것일까? 사회문화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종족 보존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100세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40년 넘게 한 사람과만 결혼 관계를 유지하여 가깝게 지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도 하다.

 

'결혼'은 대체 무엇일까? 러셀은 '행복한 결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의 정수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인생의 동반자'일 것이다.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혼도 '교육과 상담'이 필수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배워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의 신비다. 그 신비스러운 행위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멀고도 가까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멀고도 가까운 - 읽기, 쓰기, 고독, 연대에 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김현우 옮김 / 반비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지점

 

 

'엄마'라는 단어를 들을 때 우리는 어떤 기분을 느낄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엄마의 도움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조금 자라고 나서 사고하는 능력이 생길 때면 엄마라는 존재를 밀어내기에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엄마는 나의 삶을 재미없고 지루하게 만든다. 나에게 밥 먹어라, 씻어라, 일찍 자라, 공부해라,,, 라는 잔소리를 늘어 놓으면서 말이다. 내가 자랄수록 엄마는 늙고 병들어 간다. 하지만 내가 자라는 사이에는 엄마의 시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내가 나의 시간을 누리기 시작할 때쯤에 엄마의 시간이 폭발물처럼 터지고 만다. 엄마의 몸 이곳저곳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그때서야 나는 엄마의 존재를 마주하게 된다. 엄마가 어린 나를 돌봐준 것처럼, 이제는 나도 엄마를 돌볼 차례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거꾸로 된 상황이 내게는 너무나 어색하기만 하다. 엄마는 언제나 '위대한' 엄마이기 때문이다. 결국 깨닫게 된다. 엄마도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책처럼 자신의 엄마를 객관적으로 서술한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자신의 어린 시절의 아픔과 엄마오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와 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아주 옛날에 할머니가 편찮으셨던 기억이 자꾸 괴롭게 떠올랐다. 엄마와 할머니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늚음과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왜 인간은 늙으면서 죽어야 하는 걸까? 늙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 전 하나의 뉴스를 접했다. 안락사를 허용한 유럽의 한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요양원에서 간호사로서 늙은 사람들을 돌보아 왔던 한 여자가 늙고 병들기 전에 안락사를 신청했다는 것이다. 자녀가 모두 자라서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가게 된 후에 남편의 동의를 얻어 모든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어갔다고 한다. 그 여자는 늙고 병든 사람들을 계속 보아 왔기 때문에 자신은 남에게 도움이나 간호를 받기가 절대로 싫었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 여자의 선택을 응원해 준 남편과 자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자신들도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한다. 노후 대책이 점점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늙고 병들어 고생하는 것보다는 깔끔하게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의 목숨이 아니라 부모님의 인생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인식이 되었다. 유교 사상 때문인지 뭔지는 몰라도 부모님이 고통스러워 하는 것보다 안락사를 시키는 것이 불효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알츠하이머 질병, 즉 치매가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도 있었듯이 자신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모두 '나의 기억'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런 기억이 점차 사라진다니? 그러면서 아주 사소한 것도 잊어 버리면서 결국 '한 사람'으로서 구실을 못하게 된다니,,, 주변 사람들을 그렇게 고생시킬 것이라면 먼저 죽는 것이 모두를 위해 좋은 게 아닐까? 그것이 고통스러운 인생을 사는 것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필자인 리베카 솔닛은 엄마와 살면서 계속 마찰을 겪어 왔다. 서로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알츠하이머에 걸리며 너무나 연약해 지셨다. 엄마를 간호하게 되면서 감정적으로 쌓여 있던 좋지 않았던 감정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엄마의 사건을 겪으며 필자는 자신의 인생에 화해를 건네며 도전 의식을 불태웠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랜드캐년에서 리프팅을 탈 수 있는 제안에 '네!'라고 답한 순간이었다. 나도 그 순간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았는데,,, 내게는 아직 오지 않은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 책은 필자인 리베카 솔닛의 에세이적 글쓰기다.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엄마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루고 있고, 곁가지로 자신의 읽기, 쓰기, 고독함 등의 인생에 대한 개인적인 사유가 적혀 있었다. 그러한 사유들에서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급하게 읽는 독서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갖고 천천히 읽는 '느린 독서'를 추천하는 책이었다.

 

끝없는 이야기의 실타래를 따라 이야기의 세계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우리'가 '이 곳'에 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두의 우연한 현실 사계절 1318 문고 54
이현 지음 / 사계절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일상의 현실 속에서

 

 

우주 속에서 우리의 존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우주의 신비를 거의 풀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우주 이론 등이 등장하였다. 평행우주나 초끈이론과 같은,,, 그 이론들을 하나 하나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이론들의 바탕 생각이 예술 작품에 반영 되었다.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큰 흥행을 기록한 <인터스텔라> 등이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우주이론에 관한 그 어려운 영화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흥행을 기로간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이었을까?

 

이 책은 여러 이야기가 담긴 소설집이다. 그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평행우주 이론이 담긴 <영두의 우연한 현실>일 것이다. 현대 물리학이 고도의 과학자료와 가설에 근거해 성립한 다중우주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포함하여 여러 개의 우주가 동시에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시작한다. 이러한 평행우주, 즉 다중우주는 '나'의 다양한 삶이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 말은 곧 무수히 많은 양자적 다중우주에는 '나'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다른 역사와 다른 운명, 그리고 다른 결정 속에서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공상만화에나 나올 법한 황당무계한 가설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현실성 있는 현대 우주론의 하나라고 한다. 이러한 현대 우주이론이 문학 속에서 담긴 예들이 꽤 되는 것 같다.

 

전에 읽은 <프랙처드, 삶의 균열>도 이러한 다중우주 이론이 반영된 문학 작품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사고! 그 사고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 사고가 없었다면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불행한 상황 속에 있다면 우리는 다른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그러한 인간의 소망이 반영된 책으로,,, 현실과 환상이 시간의 틈새로 혼재되어 간다. 대체 진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옛날 장자는 자신이 꿈을 꿔서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장자가 된 꿈을 꾼 것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자와 나비는 결국 생명의 근원으로 살펴보면 결국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그렇게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쨌든 다중우주 이론은 결국 어느 시공간에 존재하는 '나'도 결국 '나'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시공간에 존재하는 '나'의 기억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나'이지만 서로 다른 '나'가 된다.

 

<영두의 우연한 현실> 속 영두도 아파서 자고 일어났는데, 자신의 현실과 다른 '자신'의 삶이 겹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우연히 알게 된 '편의점의 뒷문'은 그 시공간을 드나들 수 있는 통로였다. 하지만 그 뒷문이 어느 시공간으로 연결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하면서도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의 통로였다. 만약 내가 그런 통로를 알게 된다면 그 통로를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바로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의 삶을 버려두고 또 다른 선택으로 인해 다른 삶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작품 외에 <빨간 신호등>은 한 청소년 남자 아이의 시선으로 성폭력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특히, 자신은 사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상대방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남자 아이의 환상에 기대어 그려내고 있었다. 성폭력 문제는 대부분 여성의 입장에서만 다루게 되는데, 남자 아이의 시선에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청소년 남자 아이들이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야동만 볼 게 아니라 이 단편집을 보면서 여성, 상대방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외에도 연애라면 이론에만 뛰어난 한 여고생의 소심한 연애를 담은 <어떤 실연>,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아버지가 가족에게 남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그가 남긴 것>, 외계생명체의 출현으로 지리멸렬한 일상을 탈출하게 되는<로스웰주의보> 등이 실려 있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청소년소설에서 다양한 소재를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 소설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열일곱 살의 털 사계절 1318 문고 50
김해원 지음 / 사계절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들에게 민감한 털문제_누구를 위한 털인가?

 

 

'털'은 청소년들이 아닌 그 누구라고 해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털! 그것은 누구를 위한 털인가? 많은 사람들이 털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기도 했다. 대체 털이 무엇이기에 그랬을까 궁금하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열일곱 살의 털'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듣고 사람들은 많은 상상력을 발휘한 모양이었다. 이성에 관심을 갖는 민감한 청소년 시기의 '털'이라고 해서 그런지 사람들은 자기만의 털을 상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막상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내용에 조금은 실망하기도 했다는 감상을 듣기도 했다.

 

어쨌든 이 책은 90년대에 학교를 다닌 사람들에게 그리운 추억을 선사할 만한 책이었다. 요즘의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올만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정말 옛날보다는 학생들의 인권이 많이 높아진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10~20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는 '두발 규제'란 것이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를 짧게 깎아야 했고 여자들은 귀밑으로 가까운 단발머리를 유지해야 했다. 머리를 기를 거라면 학교의 허락이 필요했고 반드시 머리를 묶고 다녀야 했다. 그런데 요즘 학생들은 어떤 모습인가? 학생들의 인권을 존중해 주는 차원에서 머리 길이에 대한 규제가 사라지고, 최근에는 머리를 염색하거나 파마하는 것도 조금씩 허용해 주는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

 

어른들은 학생들의 머리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한다. 머리에 신경을 쓰지 않아야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지금 들으면 정말 어이없는 말이지만 그때는 선생님 말씀에 따라야 하는 것이 학생들의 본분이었다. 머리를 어떻게 하든 공부할 아이들은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고, 다른 길을 찾은 아이들은 그것에 몰입해서 열심히 할 것이다. 그때가 지난 지금에 돌이켜 보면 그것은 모두 어른들의 욕심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인 일호는 개화기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발소 손자이다. 일호가 다니는 오성고에는 바리깡을 들고 학생들의 두발을 단속하러 다니는 학생부장 선생님이 있다. 일호는 처음에는 머리를 아주 모범적으로 자른 학생이었지만, 우연히 학생의 머리를 불로 태우려는 체육 선생님을 보고 폭발하고 만다. 그때부터 일호는 두발 규제 폐지를 위한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학생들 몇 명을 모아 시위를 벌이게 되는데, 하루도 넘기지 못하고 바로 발각되고 만다. 그리고 정학을 맞게 되는데, 집을 나가 20년 만에 들어온 아버지와 조금씩 가까워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일호는 학교 앞에서 1인 피켓 시위까지 하게 되는데, 결국,,,

 

우리나라에서 100년 된 가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오래된 전통보다는 새로움을 더 추구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인 한옥이나 음식, 생활 방식 등이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에게 '역사'는 잊어버리고 지워버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겠지만 많이 씁쓸하고 아쉽다,,,

 

옛날 개화기 시대에는 '단발령'이 내렸다. 하지만 우리의 조상들은 부모님들에게 받은 신체를 훼손할 수 없다며 그 명령에 자신의 목숨을 내걸며 저항했다. 개화기 시대에는 그런 머리털을 자르려고 했던 이발소에서 몇 백년이 지난 지금에는 머리털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손자를 보면서 뭔가 인생의 아이러니가 느껴졌다.

 

우리에게 '털'은 그냥 털이 아니다.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위해 반드시 지켜내야 하는 '마지막 자존심'이다. 나는 나 자신의 존재를 위해 반드시 지켜내어야 할 '그 무언가'가 있을까? '그 무언가'를 위해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고민해 보아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