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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김 / 사회평론 / 2016년 2월
평점 :
만들어진 결혼의 관념
<결혼은 미친짓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그 책을 원작으로 영화까지 만들어지기도 했다. 아주 오래 예전부터 인간들은 '결혼'이 무엇인지, 왜 해야 하는지, 많은 고민을 해왔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자 저술가이며,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한 버트런드 러셀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를 이 책으로 내놓았다.
버트런드 러셀은 사상가, 철학자, 수학자로서 강의와 집필에 몰두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해 나갔다. 러셀은 전쟁 중에 징병에 대한 반대 문건을 쓴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지만 납부를 거부해 대학의 강의권을 박탈 당하기도 했다. 2년 후에는 전쟁에 반대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6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니, 그가 얼마나 실천적 지식인으로서 열심히 사회 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결혼과 도덕>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그 당시 금기시되던 도발적인 성 담론인, 결혼과 외도, 성매매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으로 인해 러셀은 1940년 뉴욕시립대학교의 임용이 취소되기도 했다. 이 책은 1929년에 출간되었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 현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결혼관에 대한 현재 우리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어서 러셀의 필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우리는 삼포, 오포, 칠포 세대라고 부른다. 스스로 자조 섞인 웃음을 지으며 던지는 농담은 우리의 가슴에 씁쓸한 무언가를 남긴다. 이러한 '포기' 세대의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은 연애와 결혼, 출산의 포기라고 할 수 있다. 더 이상 누군가와 결혼해서 하나의 가정을 이룰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자녀를 낳아도 제대로 키울 수 없고 또 다른 흙수저 계급을 양산할 뿐인 현 상황에서 어느 누가 결혼해서 자녀를 낳겠는가?
버트런드 러셀은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사회문화적인 결혼과 성 문제를 분석하고 있었다. 원시 부족 사회에서는 모계 사회가 중심을 이루는데, 그때는 생물학적인 아버지보다는 외삼촌에 대한 의지가 더 높았다고 한다. 아버지와도 관계를 맺지만 외삼촌에 의해 가족과 부족의 문화가 전달되는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이후에 종교적인 문제로서 순결과 일부일처제가 받아 들여지면서 오늘날의 결혼과 가정 생활의 책임감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일부일처제 사회에서는 아버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다.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누군인지 알아야 했기 때문에 처녀의 순결이 중요했고, 결혼 이후에도 여자의 외도가 심각하게 받아들여 졌다. 1929년에 버트런드 러셀은 이 책을 출판하면서 우리의 결혼 문화가 예전의 모계사회 때로 다시 돌아가는 양상이 보인다고 분석하였다. 러셀의 분석이 현재 우리의 사회 문화를 반영하고 있는 측면이 있어서 그의 예측력에 혀를 내둘렀다.
현재 우리 사회는 법적으로 '결혼'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혼자 즐기다가 죽고 싶다는 사고방식을 조금씩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러셀은 바로 그런 측면에서 아이가 생기지 않은 경우라면 누구나 결혼을 무효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 법 조항에서 살펴보면, 상대방에게 사기와 같은 큰 잘못이 없다면 결혼 무효는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이 얼마나 획기적인 생각인가? 상대방의 외도를 처벌할 수 있는 간통죄가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 겨우 폐지 되었다. 성 자체는 개인의 자유라는 측면을 더 높게 인정한 결과일 것이다.
성 문화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개인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결혼 제도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왜 우리는 그 힘든 결혼을 하기 위해서 아직도 난리인 것일까? 사회문화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한 인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녀를 낳아야 한다는 종족 보존 때문에? 다른 무엇보다도 100세 시대라고 하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40년 넘게 한 사람과만 결혼 관계를 유지하여 가깝게 지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도 하다.
'결혼'은 대체 무엇일까? 러셀은 '행복한 결혼'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행복한 결혼의 정수는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육체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깊이 있는 친밀감을 유지하는 데 있다. 이런 요건들이 충족될 때 남녀 간의 진지한 사랑은 인간의 모든 체험 가운데서 가장 풍요로운 것이 된다. 이런 사랑은 모든 위대하고 귀중한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의 도덕을 필요로 하며, 더 큰 것을 위해서 작은 것을 희생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희생은 자발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희생은 다른 목적을 위해서 사랑의 토대 자체를 파괴하게 될 것이다.
바로 '인생의 동반자'일 것이다. 세상에서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결혼도 '교육과 상담'이 필수적으로 행해져야 하는 '배워야 하는 대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만남은 우주의 신비다. 그 신비스러운 행위의 소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