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참으로 이상한 버릇이 있다. 뭔가를 잘못 안 경우, 남들이 그게 아니라고 아무리 말해줘도 소용이 없다. 착각한 대로 일을 벌여놓고 남한테 "왜 말 안해줬냐"라고 따지는 것, 새해에 제발 좀 고쳤으면 하는 나쁜 버릇이다.
언젠가 친구 돌잔치를 '까르네 스테이션'에서 한다고 했다. "이화동에 있는 거야"란 친구의 말에 내가 물었다. "그럼 동대문에 있는 이대병원 근처겠네?" 친구가 그걸 바로잡았다. "그게 아니라, 대학로에서 좀 내려가면 있는 이화동!"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난 돌잔치 당일날 동대문 근처에서 헤매다, 씩씩거리면서 전화를 했다. "야! 동대문 병원 근처에 무슨 까르네 스테이션이 있냐?"
이뿐만이 아니다. 날짜를 잘못 알면, 그걸로 끝이다. 약속장소에 혼자 가서 "이것들이 왜 안오냐"며 씩씩대다가 허탕을 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실수는 오늘 내가 저지른 것에 비해 아무것도 아니다. 지난 월요일, 어머니는 할머니와 더불어 해외여행을 떠났다.
나: 엄마, 언제와? 내가 나갈께요
엄마: 금요일날 4시에 온다.
나: 4박5일이면 토요일 아니어요?
엄마; 금요일이란다.
하지만 내 머리속에 입력된 잘못된 정보는 수정되지 않아, 난 시종일관 토요일날 어머니가 오신다고 알고 있었다. 어제밤 여동생이 "엄마 내일 오시는 거 아니야?"라고 했을 때도 난 "한번 따져봐라. 4박5일이쟎니"라고 핀잔을 줬다. 여동생은 지지 않고 "월화수목금, 금요일 맞네?"라고 우겼지만, "미국이 우리보다 하루 늦잖냐"라는 내 반박에 기가 꺾였다.
오늘 난 하루종일 교정원고와 씨름했고, 편집해 놓은 게 맘에 안들어 화가 날 때면 TV를 보거나 프리챌에서 포커를 치며 분을 삭였다. 교정을 3분의 2쯤 봤을 무렵, 난 TV로 농구를 보고 있었다. 전화가 온 건 그때였다. 032로 시작하는 번호다.
나: 여보세요?
엄마: x아, 지금 어디 있니?
나: 엄마 왔어?
어머니는 버스를 타고 오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지만, 난 그때부터 죽고싶은 심정이었다. 더운 지방에 가시는데다 내가 공항에 마중을 나오니 옷을 얇게 입었을테고, 짐도 나이드신 두분이 들기에는 좀 많을텐데. 버스 안에서 어머니는 다른 이의 휴대폰을 빌려 전화를 했다. 버스 내리는 곳에 좀 나와 있으라고. 날씨가 춥다며 삼계탕집 안에서 기다리던 어머님을 만났을 때, 정말이지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머님은 물론 "버스가 너무 빨리 잘 가더라"라며 날 위로했지만, 집에 와서 난 벽에다 머리를 찧으며 자학을 해야 했다. 차라리 화라도 냈으면 덜 미안했을텐데...
"떠나는 날도 토요일로 잘못 알고 있기에 아니라고 했는데..."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결심했다. 새해에는...바르게 살자고. 그런 것도 다 내가 고집이 센 탓이니, 성질을 죽이고 살아야겠다고. 할머니, 어머니,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