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 때 꼭 필요한 것은 TV 프로가 나와있는 신문이다. 내가 빨간펜으로 표시를 해 놓은 것은 두편인데, 그중 하나가 <클래식>이다. 혹자는 내가 코메디 영화밖에 안본다고 생각을 하는 모양인데, 사실 난 <연애소설>같은 멜러도 무지하게 좋아한다. <클래식>은 아름다운 화면과 그에 걸맞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풀어놓은 영화로, 그런대로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은 전반부에만 해당되는 얘기고, 후반부는 평행하게 달리던 스토리 두개를 하나로 만나게 하느라 무리를 한 흔적이 역력해, 보고 나서 기분만 나빠졌다. 윗대에서 못이룬 사랑을 아래에서 이룬다? 에이, 영화가 허구라고 해도 그렇지, 너무 작위적이잖아? <클래식>을 보고 느낀 점을 잠깐 써본다.
1. 미모와 음모
손예진과 그녀의 친구-안이쁘니까 안미녀라고 하자-는 조인성을 좋아한다. 손예진이 보기에 조인성은 안미녀에게 호감을 가진 듯하고, 안미녀 역시 손예진에게 끝없이 그 점을 주지시킨다. 가장 흔히 쓰는 수법이 둘이 만나는데 데리고 나와 들러리를 세운 뒤, 둘만의 다정한 모습을 연출시키는 것. 하지만 그건 과히 좋은 방법이 아니다. 자기보다 훨씬 더 이쁜 친구를 자꾸 데리고 나온다면, 확실한 사이도 흔들리지 않겠는가? 더구나 안미녀는 조인성과 확실한 사이도 아닌 바, 그런 전략은 패착이었다.
그래도 안미녀는 온갖 모략과 술수를 써가면서 조인성은 자기 사람이라는 걸 알리고자 한다. 손예진 앞에서 조인성의 팔짱을 끼고, 손예진한테 쓴 편지를 자기한테 쓴 거라고 가로채질 않나, 조인성이 손예진에게 관심을 보이자 "넌 집에 가!"라고 한다. 지가 불러놓고. 그쯤되면 친구가 아니라 웬수가 아닌가. 표정이나 하는 짓이 <천국의 계단>에 나오는 유리같아, 한대 쥐어박고 싶어질만큼 얄밉다.
하지만 안미녀가 그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하다. 자기보다 훨씬 미녀와 싸우는데 음모와 술수를 써야지 어쩌겠는가. 혹자는 페어플레이 운운하는데, 미모가 차이나는 두 여자가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건 전혀 공정한 게임이 아니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려면 토끼가 방심해서 잠들기를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주위 사람들은 안미녀를 욕한다. 치사하게 수법을 쓴다고. 세상에, 손예진과 싸우는데 어떻게 공정한 승부가 되겠는가? 손예진은 큰 두 눈으로 지그시 바라보거나, 눈물만 조금 그렁그렁하면 다 넘어오지만, 안미녀는 옷을 반쯤 벗어도 미동도 안하는데? 그런 불공정한 경기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욕을 먹으니, 안미녀는 억울할 수밖에 없다.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영화 속에서 최종 승리는 손예진의 것이다. 친구 애인이니까 하고 포기하려는 손예진에게 조인성은 성큼성큼 다가오고, 그녀 앞에서 사랑을 고백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둘은 반딧불이 뛰노는 강가에서 키스를 하는데, 안미녀의 행방은 보여주지도 않는다. 뭐, 어느 골방에 틀어박혀 꺼이꺼이 울고 있겠지. 운동선수들 말대로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을까? 아니다. 왜 내게 손예진의 얼굴을 주지 않았냐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겠지. 여자는 아니지만 나 역시 하위 10% 안에 드는 외모의 소유자인지라,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영화 속에서나마 안미녀가 이기는 걸 보고 싶다! 그런데... 왜 난 영화를 보는 도중 계속 손예진 편을 들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