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니 <예담이는 열두살에 1000만원을 모았어요>라는 책이 화제가 되고 있단다. 그 책을 집어든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절약정신을 길러주고 경제공부를 시켜주기 위해" 산다고 했다. 얼핏 보기에 외모도 수준급인 예담이는 공부까지 잘해, 이번에 모 외고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다고 한다. 열두살에 천만원, 그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관심이 갈만한 소재며, 출판사 측에서 장사가 되겠다고 생각했기에 책으로 만들어졌으리라. 하지만 난 그 책이 영 못마땅하다.

 

첫째, 책이란 무엇일까?

우리 사회는 돈을 숭배한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최고의 덕담이 될 정도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숭배하는 건 나쁜 게 아니다. 하지만 책마저 그런 추세에 편승하는 요즘의 세태는 영 못마땅한 일이다. 군대에서 가르쳐주는 '적과 조우시 대치법'을 책이라 부를 수 없듯이, "이렇게 하면 십억을 번다"는, 돈버는 기술에 대해 설명해 놓은 걸 '책'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 언젠가 친구가 읽는 처세 관련 책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인이 썼고 국내에서도 꽤 많이 팔린 그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회사에서 누가 실력자인지 파악하고,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해라"  이게...책일까? 책에 대해 내가 너무도 지고지순한 가치를 부여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그건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귀여니가 쓴 소설들은 책이라 부를 수 있지만, <부자아빠...>처럼 "나 이렇게 돈벌었어. 대단하지?"라고 환호하는 게 어찌 책일 수 있을까? 책이라면 사고의 지평을 넓혀 주거나, 현존하는 가치관에 대한 회의가 담겨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가 이상한 걸까?

 

둘째, 무엇을 위한 절약인가?

이 책에 관한 서평들은 대체로 호의적이다.

-이 책을 통해...효율적인 방법으로 많은 아이들이 돈을 관리하는 방법과, 돈을 효율적으로 쓸수있는 방법을 알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보다 친근하고 재미있게 경제를 접하고 저축의 중요성과 깨우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것입니다

 

역시 동의할 수 없는 말이다. 내수의 침체로 인해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처럼, 절약만이 능사는 아니다. 투자를 능가하는 저축은 그 자체로 악이다. 오디오를 사기 위해 절약을 한다면 모를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절약을 하는 것일까? 아이들에게 가르쳐 줘야 할 것은 절약이 아닌, 건전한 소비를 하는 능력이 아닐까. 분수에 안맞는 과도한 소비보다야 절약이 낫겠지만, 과도한 절약 역시 또하나의 극단에 불과하다. 내가 오디오를 사야 오디오 가게 직원이 봉급을 받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게 제대로 된 경제교육이 아니겠는가.

 

세째, 꼭 책으로 내야만 했을까?

예담이는 용돈만으로 천만원을 모은 건 아니란다. 뉴스에 나온 걸 보니 청소를 하면 2천원, 구두를 닦으면 1천원 이런 식으로 돈을 모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 천만원이 부모님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 책을 보고 상처를 받는 사람은 없을까? 예담이가 6년만에 천만원을 번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6년간 부모로부터 받은 돈을 모두 합쳐봤자 500만원도 안되는 애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예담이는 보통 사람은 아니다. 그런 정신의 소유자라면 뭐가 되도 크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이번 책은 내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는 게 내 생각이다. 글을 웬만큼 쓰게 된 뒤, 자신의 손으로 쓰는 게 이거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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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주 2004-01-23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책이 아닌 TV에서 이 아이를 인터뷰 한 것을 보았는데, 저도 기분이 좋지 않더군요. 직장인이 일해서 모으기도 사실 천만원은 큰돈인데 이 아이가 돈을 모을 수 있었던 건 역시 부모에게서 나온 거니까요.

관심이 화제를 낳기도 하지만 화제가 관심을 낳기도 하지요. 그리고 관심어린 화제 속에는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 들어 있지요. 돈, 돈, 돈.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쩔 수 없는 당연한 논리라고 해도, 아이까지 내세우며 돈의 논리를 가르친다는 건 터무니없는 일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