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 - 젊은 작가 6인의 독신 테마소설
김현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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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책을 읽을까 책꽂이를 뒤적이다, <독신>이란 책이 눈에 띄었다. 여성작가 여섯명의 단편소설을 모은 건데, 전부다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언제 이런 책을 주문했을까 싶어서 앞페이지를 펴니 '증정분'이란 글씨가 눈에 띈다. 책 뒷면에 써있는 '문학동네 창립 10주년 사은증정도서'라는 문구를 보고서야, 다른 책을 살 때 보너스로 얻은 책이라는 걸 알았다. 서비스로 얻은 책이라는 걸 알자 갑자기 읽기가 싫어졌지만, 요즘 '독신'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라 첫 페이지를 폈고, 사흘을 낑낑대다 겨우 다 읽었다.

신세대 작가들이 쓴 글답게 '쿨하다'는 느낌을 받았을 뿐, 감동적이거나 무릎을 치게 만들거나 하는 대목은 없었던 것 같다. 예컨대 이런 대목을 보자. [요즘 춘향이에게는 변사또가 없다. 요즘 변사또는 여자들에게 너무 인기가 좋기 때문이다...춘향이가 몽룡을 기다리다 포기하는 것인, 몽룡이 춘향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몽룡에게 어사 마패가 없어서다 (106쪽)]
그런대로 멋지게 들리는 말이긴 해도, 솔직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다. 강제력을 동원해서라도 한번 하고자 하는 변사또가 왜 인기가 있단 말인가?

그래도 공감이 가는 대목이 없지는 않다. 나이가 제법 든 여성이 맞선을 보러 갔다. H라는 남자인데, 무슨 직장인지 몰라도 오후 네시면 퇴근한단다. 그럼 심심하지 않냐는 여자의 물음에 H는 '가끔 적적할 때는 있어도 심심하지는 않다'고 대답한다. 심심한 건 '정말로 아무 할 일이 없는 상태'라나. 그럼 뭘 하느냐고 묻자 남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 밥 잘 해먹습니다. 반찬도 간단한 것은 제가 만들고...'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여자에게 남자가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렇지만 결혼을 하게 되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 남자, 결혼하는 걸 무슨 밥순이를 들이는 것으로 아는 걸까? 언젠가 이혼이 급증하는 이유에 대한 토론프로를 본 적이 있다. 패널들은 이구동성으로 '시대가 변화했는데 남성들의 의식은 그대로인 것'이 이혼이 늘어나는 이유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독신으로 사는 여성이 늘어나는 것도 사실 그것 때문이 아니겠는가. 헤어지면서 여성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물론 밥 좋아해요. 특히 맛있는 거 먹는 걸 정말 좋아해요. 그래요, 누군가 해주는 사람만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행복하게 잘 먹어보이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하지만요, 그걸...제가 하면서 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216쪽)'
가슴이 시원해지는 멋진 말이다.

좌우지간 독신은 만사가 편하다 (특히 명절 때). 주위의 곱지않은 시선만 아니라면 혼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편한 일인가. 하지만 거기에는 갖춰야 할 조건이 있다. 먹고 살 수 있는 경제력과,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 그리고 몰두할 수 있는 취미, 이 정도는 있어야지 않을까 싶다. 몇개를 더 추가한다면, 혼자서 밥을 차려먹을 수 있는 기본적인 요리 솜씨가 있어야 하며, 매혹적인 이성을 만났을 때도 흔들리지 않을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할 것이다. 남은 여생을 혼자서 살고자 하는 나는 이 중 과연 몇가지나 갖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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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 공간의 환상 다빈치 art 5
안토니 가우디 지음, 이종석 옮김 / 다빈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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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에 관한 책이다. 건축에 관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책을 읽을까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원래 취미라는 게 자기 하는 일과 다른 분야를 파고드는 것 아닌가.

책의 초반부를 읽을 때만 해도, 가우디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사진에 나온, 그가 지은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 없는 것들, 물론 돈도 엄청나게 들었다. '값싸고 실용적인' 것만을 좋은 건축으로 치는 나에게 가우디의 건물들은 매우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그의 장인정신에 동화되어, 기차에 치어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안타깝기까지 했다. 그의 건물들이 있는 스페인에 꼭 한번 가고 싶어진 것도 이 책이 남겨준 숙제다.

가우디는 완벽주의자였다. 그런 사람이니 그렇게 훌륭한 건물들을 지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 아래사람들은 죽어난다. 그도 그 사실을 인정한다. [나는 함께 일하던 사람들을 매우 피곤하게 했다(49쪽)] 그가 지은 건축물들이 지금도 튼튼하게 서 있는 건, 그 완벽주의 때문이리라. 성수대교나 삼풍이 무너진 걸 보면 우리나라에는 완벽주의자가 너무 없는 것 같은데, 다른 분야는 몰라도 건축만은 완벽주의자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가우디도 늘 평탄한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 가우디는 '많은 시험과 과제물 제출에서 한번에 합격하는 일이 드물었다. 그가 제출한 도면들은 여러 교수들에게 논란의 대상이었다(104쪽)' 학교 교육이 한 천재의 창의성을 말살시키는 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닌가보다. '가우디는..8년만에 전 학과를 마칠 수 있었지만, 졸업시험 성적은 최하위였다...가우디의 독창성과 대담함은 심사위원회를 불쾌하게 했고 그의 설계안은 가장 낮은 점수로 통과했다' 그 교수들이 나중에라도 후회를 했는지 모르겠다. 가우디의 건축물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등 온갖 찬사를 받고 있는 지금은 그런 교육풍토가 조금은 바뀌었을까? 우리나라의 가우디들은 지금도 학교에서 죽어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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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슬라보이 지젝 엮음, 김소연 옮김 / 새물결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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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는 라캉,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치고 만만한 책이 있던가. 이 책을 가지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세미나를 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책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세미나를 중단했고, 남은 부분은 혼자 읽어야 했다. 세미나를 할 때는 내가 맡은 부분은 두번, 세번씩 읽고, 정리를 해서 발표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니 어렵게만 보이던 이 책도 제법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남은 부분-80페이지 정도?-을 혼자 읽어 나가려니, 책에다 줄만 뻑뻑 긋게 되고 머리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다. 이런 어려운 책은 역시나 여럿이서 같이 읽어야 한다. 세미나라는 게 사람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고, 자신이 이해못한 부분을 남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제목에서도 나왔듯이 이 책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을 읽다보니 안되겠다 싶어 그의 영화들을 몇편 봤는데, 그의 영화 세계는 정말이지 경탄스러웠다. 요즘이야 영화 한편당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고, 컴퓨터 그래픽이 있어 별의별 장면이 다 가능하지만, 히치콕은 돈 몇푼 안들이고-그당시로서는 많았을 수도 있지만-순전히 뛰어난 아이디어만 가지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지금 보면 시시한 영화도 있지만, '사이코'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등의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선사하고, '다이얼 M을 돌려라'는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감독이니 그에 관한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도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어떤 이의 작품세계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그의 사후에 이루어지는 게 좋다. 예컨대 내가 곽경택 감독을 주제로 '이 장면은 이러이러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했는데, 곽경택이 전화를 해서 '그거 아닌데?'라고 해봐라. 내가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뭐든지 그 사람의 사후에 하는 게 가장 안전한 것, 지젝이 히치콕의 작품에 대해 그 어떤 설을 풀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어려운 책을 읽고나니 머리가 영 무겁고 멀미가 나려 하지만, 다 읽은 기쁨 또한 지대하다. 머리에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영화의 전범 격인 히치콕의 영화들을 분석한 책을 읽으니 앞으로 영화를 볼 때 '권상우가 멋있어요!'라는 차원이 아닌, 한단계 성숙한 눈으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게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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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
이정우 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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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가 나온 뒤, 이를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책들이 여러 권 나왔다. 일전에 읽었던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도 그 중의 하나다. 그렇다면 작년 말에 출간된 이 책, <철학으로 매트릭스 읽기>는 이전에 나온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머리말을 보면 이 책이 세상에 나와야 할 필연성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국내 소장 철학자들에 의해 씌어졌다...인문학 텍스트의 경우에는 원래부터 우리 식의 사고에 의해서 우리말로 씌어져야 할 필요성이 너무나도 크다]

일견 동의하면서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들이 말하는 철학이란 것도 다 서양에서 건너온 사상이 아닌가? 장자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저자도 있긴 하지만, 저자 대부분은 비트겐슈타인이나 샤르트르 같은 외국 철학자들을 언급하고 있던데 '우리말로 씌어져야 할 필요성'이 무슨 말이람?

이 책의 두번째 필요성은 다음과 같다. [기존의 책들에 수록된 글들은 모두 매트릭스 1편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매트릭스> 전체를 총괄하는 내용을 담기에 부족한 면도 없지 않다]

그 말대로 이 책은 <매트릭스>2편까지의 내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책들이 1편에만 국한되어 독자들이 '갈증을 느꼈'다면, 몇달만 기다렸다가 3편이 나온 뒤 이 책을 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그래도 저자들 중 한명은 '매트릭스가 3편에서 ..이런 쪽으로 결론이 날 것인가. 아마도 이러이러하게 끝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라는 말을 하기도 해, 3편을 두번이나 본 나를 허탈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 책이 나온 것은 2003년 11월 5일, 내 기억이 맞다면 이날은 3편이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날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3편이 개봉된 뒤 1-3편을 차분히 분석하기보다는, 3편의 개봉과 동시에 책을 냄으로써 판매에 도움을 주는 길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럴 거면 '전체를 총괄하기에 부족하다'며 이전 책들을 비판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계속 딴지만 걸었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나라 철학자들이 써서 그런지 지젝 등이 쓴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보다는 훨씬 잘 읽혔고, 공감하는 대목도 꽤 있었다. 난 매트릭스 자체를 파괴해야 할 악으로 설정한 영화의 구도에 별 생각없이 동조했지만, 저자의 다음 말도 일리가 있다. [매트릭스가 허구라는 사실과 통제라는 사실만으로는 그것을 파괴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도출되지 않는다. 허구라 하더라도 그것이 완벽하게 현실을 대체할 수 있다면 매트릭스는 인간의 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한 대안일 수도 있다...프로그램에 의한 통제가 곧 행복과 선택의 말살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매트릭스의 존재 가능성을 확률로 계산한 대목에서 현기증이 나는 등 미흡한 부분도 없진 않지만, 머리말에서 밝힌대로 '이 기획이 이번 한권의 책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충분히 분석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중문화 작품에 대해서...이런 시도를 계속할' 예정이라고 하니, 기대를 가져봄직하다. 철학이란 게 저 높은 어딘가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삶 어디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것이며, 그런 것들을 찾아내 알기쉽게 풀어주는 게 철학자의 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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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이트 시즌
스티븐 킹 지음, 이창식.공경희 옮김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199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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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세 때 <캐리>를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스티븐 킹, 전에 <내 영혼의 아틀란티스>를 읽었으니 나로서는 이 책이 그의 두번째 책이다. 자자한 명성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킹은 내가 그리 좋아하는 작가는 아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가 배송료를 면제받기 위해서거나 한권만 시키기 미안해서였던 것 같다. 올해처럼 책 한권만 시켜도 배송료가 무료였다면 아마 안골랐지 않았을까? 난 왜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걸까? 어릴 적에 스티븐 킹이 쓴 책으로 맞은 기억이 있던가?

이 책에는 '라마즈 호흡'과 '파멸의 시나리오'가 담겨 있는데, 난 '라마즈 호흡'을 먼저 읽었다. 의사가 가르쳐준 칙칙폭폭 호흡을 머리가 잘린 상태에서도 계속 수행함으로써 아이를 구한 산모 얘기인데, 이걸 읽고 나서 난 다른 한편을 읽을까 말까를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파멸의 시나리오'는 초반의 지루한 부분을 빼면 제법 재미있어, 다행이었다. 그 소년이 왜 그렇게 살인마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는 안가지만, 나치에 복무한 사람들을 끝까지 찾아다니면서 역사의 심판을 내리는 이스라엘 애들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기득권 세력을 점하고, 반성은커녕 민족지 운운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강변하는 우리의 현실은 정말이지 가슴 아프다.

스티븐 킹을 싫어하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본 결과 이런 결론을 얻었다. 책은 이러이러해야 한다고 믿는 내 가치관이 그를 싫어하는 이유인 듯 싶다. 내가 '해리 포터' 시리즈를 안읽는 이유도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은 스티븐 킹이나 조앤 롤랭의 책들은 책으로 읽기보다는 영화로 보는 게 더 적합하다는 것인데, 사실 난 영화로 만들어진 '해리 포터' 시리즈 두편을 아주 재미있게 봤고, 스티븐 킹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쇼생크 탈출' 역시 감명깊게 봤다. 영화에서 구현된 스펙터클을 책이 전하는 건 한계가 있는 바, 이번에 내가 재미없게 읽은 '라마즈 호흡'이나 그래도 괜찮았던 '파멸의 시나리오'도 영화로 봤다면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분들의 서평을 보니, 다들 재미있게 읽었단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 되어야 한다는 내 가치관이 킬링타임용 책들을 폄하하고, 그런 책들이 주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런지, 반성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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