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라캉에 대해 알고 싶었지만 감히 히치콕에게 물어보지 못한 모든 것
슬라보이 지젝 엮음, 김소연 옮김 / 새물결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이름만 들어도 머리가 아파오는 라캉, 그의 이름이 들어간 책치고 만만한 책이 있던가. 이 책을 가지고 영화에 관심이 많은 분들과 세미나를 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상 책을 다 마치지 못한 채 세미나를 중단했고, 남은 부분은 혼자 읽어야 했다. 세미나를 할 때는 내가 맡은 부분은 두번, 세번씩 읽고, 정리를 해서 발표를 했는데, 그런 식으로 하니 어렵게만 보이던 이 책도 제법 이해가 됐다. 하지만 남은 부분-80페이지 정도?-을 혼자 읽어 나가려니, 책에다 줄만 뻑뻑 긋게 되고 머리에 들어오는 건 별로 없다. 이런 어려운 책은 역시나 여럿이서 같이 읽어야 한다. 세미나라는 게 사람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켜 공부를 열심히 하게 되고, 자신이 이해못한 부분을 남들로부터 배울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제목에서도 나왔듯이 이 책은 히치콕의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책을 읽다보니 안되겠다 싶어 그의 영화들을 몇편 봤는데, 그의 영화 세계는 정말이지 경탄스러웠다. 요즘이야 영화 한편당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이고, 컴퓨터 그래픽이 있어 별의별 장면이 다 가능하지만, 히치콕은 돈 몇푼 안들이고-그당시로서는 많았을 수도 있지만-순전히 뛰어난 아이디어만 가지고 주옥같은 작품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지금 보면 시시한 영화도 있지만, '사이코'나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이창' 등의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 재미를 선사하고, '다이얼 M을 돌려라'는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그렇게 뛰어난 감독이니 그에 관한 영화들을 철학적으로 분석한 책도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모든 게 다 그렇지만, 어떤 이의 작품세계에 관해 연구하는 것은그의 사후에 이루어지는 게 좋다. 예컨대 내가 곽경택 감독을 주제로 '이 장면은 이러이러한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라고 했는데, 곽경택이 전화를 해서 '그거 아닌데?'라고 해봐라. 내가 얼마나 무안하겠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뭐든지 그 사람의 사후에 하는 게 가장 안전한 것, 지젝이 히치콕의 작품에 대해 그 어떤 설을 풀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어려운 책을 읽고나니 머리가 영 무겁고 멀미가 나려 하지만, 다 읽은 기쁨 또한 지대하다. 머리에 얼마나 남아있는지는 모르지만, 현대 영화의 전범 격인 히치콕의 영화들을 분석한 책을 읽으니 앞으로 영화를 볼 때 '권상우가 멋있어요!'라는 차원이 아닌, 한단계 성숙한 눈으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게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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