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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왕따 중학생이 둘 있다. 왕따인 것도 모자라 학교 짱한테 맨날 맞고 돈을 빼앗긴다. 그들의 안식처는 학교 밖에 있는 벌판, 거기엔 소파와 더불어 탁구대가 놓여 있다. 박민규의 소설 <핑퐁>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처럼 세속적인 사람은 이런 상상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둘이서 탁구를 치다가 탁구선수가 되는 거 아닐까? 왜, 포레스트 검프도 그러잖아?”
정말 그렇게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그건 박민규가 아니다. 그가 전에 쓴 소설이 다 그렇듯이 <핑퐁>은 아주 그로테스크한 세계를 질주하며, 그에 걸맞은 결말로 끝이 난다. 다 읽고 나니 자동적으로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뭘 말하려는 거야? 내가 이해한 게 맞는 거야?’
박민규에게 묻는다면 그는 필경 이렇게 대답할 거다.
“니 맘대로 생각하세요.”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내가 너무 정답 위주의 삶에 길들여졌다는 반성이 든다. 재미있게 읽고 나름의 의미를 찾으면 되는 거지, 작가의 의도를 왜 파악해야 한담? 순간을 즐기고 내식대로 해석하자, 이게 박민규의 팬다운 자세일 거다.
이 책에는 추억의 이름이 하나 등장한다. 세크라텡이라는 프랑스 탁구 선수. 내가 중학생 쯤 되었을 때 세크라텡은 베르느라는 선수와 함께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당시로선 획기적인 묘기탁구를 선보이며 관중들을 즐겁게 해줬는데, 아쉽게도 난 TV 중계를 못보고 뉴스에서 하이라이트만 봤다. 그땐 내가 탁구를 좀 치던 시절이었는데 “야, 저런 탁구도 있구나.” 싶어서 탁구 칠 때 흉내도 내보고 그랬다. 세크라텡은 세계 10위권 정도의 선수였지만, 당시 세계에서 가장 탁구를 잘 치던 발트너나 장자량보다 더 깊이 뇌리에 박혀 있다. 세크라텡은 그러니까 내가 박민규와 같은 세대라는 걸 증명해 주는 아이콘, 하지만 내가 정답 위주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반면 박민규는 한없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듯하다. 우리 둘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