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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털보 과학관장이 들려주는 세상물정의 과학 ㅣ 저도 어렵습니다만 1
이정모 지음 / 바틀비 / 2018년 1월
평점 :
이정모 선생과 내가 관계를 맺은 것은 10여년 전이다. 학생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해주고 싶어서 강사를 수소문하다 이정모 선생을 알게 됐다. 다들 그랬겠지만 나 역시 이정모 선생의 외모에 놀라자빠졌다. 이선생은 ‘나보다 더 심하잖아!’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몇 안되는 분이다. 하지만 그분의 강의를 듣고 나선 그보다 100배쯤 더 놀랐다. 전혀 관계없는 말로 시작된 강의가 글쓰기로 연결되는 과정은 경이로웠다. 이게 다가 아니다. 이정모 선생의 최대 매력은 그의 인간성이다. 잠깐만 같이 있어도 “아 이분 참 좋은 분이구나!”를 느끼게 만들어 주는 그의 인간성은 이정모 팬클럽이 만들어진 원천이다.
하지만 능력이 없었다면 그 팬클럽은 오래가지 못했을지 모른다. 2011년, 이정모 선생은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된다. 그가 관장으로 재직했던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서대문자연사박물관은 지리적 불리함을 이겨내고 과학에 관심있는 아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이 됐다. 또한 그곳은 수준높은 과학강연과 토크가 펼쳐지는 과학아카데미이기도 했다. 위치도 그렇고 강사료도 많은 게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이정모 선생이 불러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았기에 부름이 있을 때마다 기꺼이 강의를 했다. 강의가 끝날 때마다 근처 치킨집에 모여 수다를 떨던 장면은 내게 남아있는 ‘아름다운 추억 베스트’ 중 하나다. 사람들은 그 수다에 끼기 위해서 저 멀리 일산에서, 충청도에서, 강원도에서 달려와 줬다. 하리하라로 유명한 이은희 작가님과 불멸의 이순신을 쓴 김탁환 작가님을 뵌 것도 그 모임에서였다.
처음 만난 계기가 ‘글쓰기 강의’였으니, 이정모 선생은 당연히 글도 잘 쓴다. 과학에 관해 이해하기 쉽게 글을 쓰는 사람은 여럿 있지만, 우리네 삶과 관련해 과학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드물다. 과학과 삶을 연결시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인데, 이정모 선생은 이 분야에 있어서 단연 독보적이다. 이번에 나온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은 그 결정체로, 이 책을 읽으면 삶과 밀착된 과학 이야기를 원없이 즐길 수 있다. 예컨대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물을 흐린다, 는 말을 보자. 이정모 선생은 모 기업 대표가 에어컨이 고장난 것에 항의하는 직원을 미꾸라지에 비유한 일화를 얘기하며 다음과 같이 미꾸라지를 변명한다.
“...미꾸라지를 나쁜 비유에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다. 미꾸라지는 보양식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질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미꾸라지는 모기 애벌레인 장구벌레를 하루에 천 마리까지 먹어치운다. 실제로 서울과 경기도에서는 하수구에 미꾸라지를 풀어 모기 애벌레를 먹어치우게 하기도 한다. 미꾸라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도 싫다.”
이 책에 대해 추천사를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난 다음과 같은 추천사를 썼다.
[이정모 선생은 과학저술분야의 업계 라이벌이다. 물론 라이벌이라는 건 내 생각일뿐 작품의 질이나 판매량 모두에서 아직 나는 한참 못 미친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과학적 사건들을 재미있게 쓴 이번 책을 읽으면서 우리 둘의 격차를 다시금 절감한다. 이정모 선생님 언젠간 꼭 따라잡고 말겁니다. 10년만 기다리세요.]
아쉽게도 지면 제한으로 맨 마지막 구절만 실렸는데, 책으로 나와 다시금 읽어보니 10년은 내 만용의 소치였다. 10년이 아니라 20년이 지나도 난 이정모 선생같은 내공은 갖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이 글은 그러니까 따라잡지 못할 거라면 찬양하기라도 해야 한다는 평소 신조를 실천한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