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런 결심을 했다.
난 방송에 소질이 전혀 없다, 그냥 기생충연구 하고 가끔 들어오는 외부강의를 하면서 살자.
하지만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한참 뒤에야 알았다.
우리나라 강의의 대부분은 무료다.
그리고 강의의 주최자는 한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강의에 오게 하려고 애쓴다.
이왕 돈을 들여 강사를 불렀으니 성황리에 하는 게 더 나으니까.
강의의 성패는 주최측에서 얼마나 홍보를 했느냐보다
어떤 강사를 불렀는가, 에 훨씬 더 좌우된다.
예컨대 강의의 신 급인 김창옥. 김미경 같은 분들을 부르거나
유홍준 선생님처럼 유명한 분을 부르면 강의장은 미어터진다.
하지만 강의의 질과 무관하게 "저 사람은 누구지?"라는 강사가 오면 사람이 모이지 않는다.
지난 2년간, 내 강의의 주최측은 늘 내게 미안해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더 홍보를 잘해서 많은 분들이 오게 했어야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내가 더 미안했다.
다시 방송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순전 그 때문이었다.
올해는 그래도 일주에 한번 정도는 TV에 얼굴을 비췄다.
물론 시청률이 낮은 프로에 주로 나오다보니 "요즘 왜 TV 안나오냐?"고 묻는 이도 제법 있지만,
그래도 알아보는 이가 훨씬 많아지긴 했다.
아까 낮에 아내와 목살을 먹으러 갔는데 주로 고기만 써시던 사장님이 직접 나와서 인사를 했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TV에 그렇게 많이 나오시고..."
물론 이건 이주노를 제외하면 유명한 연예인이 살지 않는, 천안이란 곳에 사는 덕분이기도 하지만,
내 인지도가 높아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걸 절감한 사건이 있었다.
수요일 구미에 가서 담당자와 차를 한잔 마시는데 전화가 걸려온다.
담당자: 뭐? 사람이 하나도 안왔다고? 아이참, 어떡하냐.
상대방: &&&&&
담당자: 뭐? 강의실을 작은 곳으로 옮기자고? 이제 와서 어떻게 그래?
상대방: &&&&&
담당자: 할 수 없지 뭐. 직원들 다 올려보내야지. 알았어.
이 대화가 오가는 동안 내 심정이 어땠을지는 상상에 맡긴다.
전화가 끊어진 뒤 담당자는 내게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하는 다른 강좌들이 있었는데 그게 지난주에 다 종강을 했습니다.
원래 자기 강의 끝난 분들이 이거 (야은아카데미) 들으러 오고 그랬는데,
종강 여파로 사람이 없네요."
막상 강의장에 올라가보니 생각보단 훨씬 많이 오셨다.
강의장이 600명을 수용하는 넓은 곳이라 상대적으로 한산해 보인다는 것인데,
그래도 내 주제에 그 정도의 인원도 감사해야 할 일 아닌가.
그나마 TV에 나가고 있으니 그 정도라도 왔을 터,
당분간은 잘리지 말고 방송에서 잘 버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