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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더그래피카 -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의 그래픽 평전
마크 호지킨슨 지음, 김솔이 옮김, 김기범 감수 / 소우주 / 2017년 6월
평점 :
얼마 전 이런 기사가 떴다.
‘테니스 황제 조코비치,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 아웃.’
여기엔 테니스 기사로는 이례적으로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그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
“테니스 황제는 페더러 뿐이야. 조코비치가 어떻게 황제일 수 있어?”
그런 댓글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로저 페더러는 아내를 만나기 전 가장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이었고,
아내와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을 때, 슬그머니 1위 자리를 탈환했던 사람이니까.
페더러 때문에 일찍부터 스포츠중계 채널인 스타TV를 달았고,
페더러의 경기 때마다 밤을 꼴딱 새가며 TV를 봤다.
페더러가 우승을 하며 좋아할 때 나도 같이 기뻐했고,
페더러가 패배의 아픔에 눈물을 흘릴 때 나도 같이 울었다.
경기 내내 무릎을 꿇고 TV를 보는 날 아내는 이렇게 타박했다.
“야, 페더러가 이겨서 버는 상금 중 단 1달러라도 너한테 준 적이 있냐?
좀 적당히 하고 잠 좀 자자.”
아내에게 말했다.
나이로 봐서 페더러의 전성기가 지났으니, 이번 대회가 페더러의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며,
화려한 은퇴를 위해 이번 대회에서 우승해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난 그 말을 그 다음해에도, 그 다음다음해에도, 그 다음다음다음 해에도 했는데,
2017년 페더러는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우승을 하면서 오히려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지만 우리는 딱 한번 만난 적이 있다.
페더러가 우리나라에 와서 시범경기를 했을 때,
경기장에 앉아 있던 내 옆으로 페더러가 지나갔다.
그쪽으로 나타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기에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못한 게 못내 후회된다.
미리 알았다면 유창한 영어로 이렇게 말해줬을 거다.
“Federer, I love you very much."
황제 페더러의 삶을 담은 <페더그래피카>가 나왔다.
아직 현역인 선수의 전기가 나오는 건 이례적이지만,
페더러의 커리어를 보면 충분히 그럴 만도 하다.
메이저대회에서 역대 최다인 19회를 우승한 것도 그렇지만,
역경을 만날 때마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섬으로써 팬들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그가 치는 원핸드 백핸드는 그를 테니스선수가 아닌, 아티스트로 여겨지게 만들고,
코트에서 절대 흥분하지 않는 모습은 인간이 아닌 신 같다.
다른 테니스스타와 달리 모델이 아닌,
어찌보면 평범한 여인과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것도 멋진 일이다.
딸을 목욕시키다 무릎을 다쳐 한동안 코트를 떠나있을만큼 가정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황제,
그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팬을 거느린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페더그래피카>를 보니 테니스스타였던 매츠 빌랜더는 이렇게 말했단다.
“문제는 관중이 언제나 로저 편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그를 이겨 버리면 분위기를 망쳐 버리는 거죠. 선수 입장에서는 정말 기분 나쁜 겁니다.” (228쪽)
그의 라이벌인 조코비치는 또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하면 관중을 제 편으로 만들 수 있을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죠. 하지만 관중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 (같은 쪽)
페더러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까 싶었는데,
이 책을 보니 새로운 정보가 너무 많다.
예컨대 비외른 보리가 세운 5회 연속 윔블던 우승에 도전하던 샘프라스를 페더러가 이김으로써 기록달성을 좌절시켰을 때,
보리가 페더러의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걸어 “자신의 기록을 보호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는 사실 (141쪽) 등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비화다 (난 보리가 그런 것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지 몰랐다 ㅋㅋ)
페더러를 둘러싼 비화들과 더불어,
그의 예술가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수많은 사진도 이 책의 소장가치를 높여준다.
그래서 말씀드린다.
전국의 페더러빠들이여, 이책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