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21을 보기 시작한 뒤 제 영화 취향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전에는 <투사부일체>같은 걸 보러 다녔다면, 요즘 보는 건 정말 매니아가 아니면 안보는 그런 것들입니다. 그래서 좋냐고요? 네, 좋습니다. 남들이 다 본 대작을 보고 같이 즐거워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매니아스러운 영화를 보고 혼자 좋아하는 것도 꽤 쏠쏠한 재미를 던져 주더군요.
<키핑멈> 역시 그런 영화입니다. 스토리로 보면 재미있기 짝이 없고, ‘미스터 빈’으로 알려진 로완 아킨슨이 나오는 이 영화를 매니아스럽다고 한 것은 이게 <필름포럼>이라는 수상한 이름의 극장에서만 상영을 하는 까닭입니다. ‘봐야겠다’는 생각은 <필름포럼> 옆에 붙은 ‘구 허리우드’라는 설명을 보는 순간 50% 정도로 반감되었습니다. 결국 전 어물거리다가 그 영화를 놓쳐 버렸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상영 마지막날 이후에도 그 영화가 상영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놓칠 수 없다 싶어 <필름포럼>을 찾아갔습니다. 낙원상가는 여전하더군요. <용형호제2>를 거기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극장을 찾아가는 길옆에는 돼지머리를 놓고 장사하는 집들이 성업 중입디다. 돼지고기는 미친 듯 좋아하지만 돼지머리는 못 쳐다보는지라 고개를 푹 숙이고 길을 걸었습니다. 코가 안 좋아 냄새를 못 맡지만, 역한 냄새는 신통하게도 제 코 안으로 몰려들더군요.
화물 엘리베이터처럼 생긴, 예전과 똑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향했습니다. 아저씨들이 많이 있더군요. ‘단체로 키핑멈 보러왔나?’ 했지만, 그건 아니었습니다. 아저씨들은 모두 ‘콜라텍’이라고 쓰인 곳으로 몰려갔고, 나와 미녀만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나중에 불이 켜지고 나서야 그 영화를 본 사람이 네명밖에 안된다는 걸 알았는데요, 그렇게 영업을 해서 장사가 될지 의문이 들더군요. 시설은 그대로인 채 이름만 바꾸기보다는, 이름을 바꾸면서 시설도 좀 개보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맨 왼쪽 사람이 바로 딸입니다.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영화는 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딸로 나온 여자의 미모가 워낙 출중해 시종 넋을 잃고 봤습니다. <사랑과 영혼><더티 댄싱>에서 그토록 멋지게 나온 패트릭 스웨이지가 중년의 아저씨로 나오는 걸 보면서 세월을 느끼기도 했지요. 하지만 끝은 좋지 않았습니다. 만족스럽게 극장을 나와서는 다시금 돼지 냄새를 맡아야 했으니까요. 그것만 아니었다면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비에도 불구하고 그날 하루는 해피엔딩이었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