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을 꿨다. 밤새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꿈을. 늘 그렇듯이 난 꿈에서도 매우 급한 상태였는데, 가는 곳마다 화장실이 만원이었고, 어쩌다 자리가 난 곳은 구조가 이상해-밖에서 다 보이는-갈 수가 없었다. 희한하게도 파비아나님과 내 여동생이 나와 약간의 훼방을 놨다. 결국 화장실을 찾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어제 일이 생각난다. 학장님이 보직자와 학년 담임들을 데리고 밥을 샀고, 거기서 소주를 곁들여 고기를 먹었다. 회식이 끝나고 학장님은 다른 차를 타고 가셨고, 네명이 남았다. 한명은 집이 분당, 나를 비롯해 다른 셋은 모두 서울이었다. 서울 분들은 “양재역까지만 태워다 달라”고 분당 분을 협박했고, 그 협박에 굴복해 “그럽시다.”라는 말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난 그 차를 탈 수가 없었다. 꿈에서처럼 매우 급한 상태였으니까. 식당 화장실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 할 수 없이 난 “기차 타고 가야 해요.”라고 말한 채 택시를 타고 기차역으로 날아갔다. “어, 얼마나 남았어요?”같은 멘트를 날리면서.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나같은 위-대장 반사 환자의 삶은 화장실과 무척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스페인에 같이 간 미녀가 “화장실 찾아다닌 것밖에 기억나는 게 없다.”고 할 정도인데, 그때 순전히 화장실에 갈 목적으로 별반 들어가고 싶지 않던 박물관의 입장권을 구입한 적도 있다. 매점에서 열 개씩 휴지를 사는 나에게 “뭔 휴지를 그리 많이 사냐?”고 묻는 사람도 있던데, 내 가방에 휴지가 넉넉하게 들어있는 것도, 모든 외투의 주머니에 휴지가 있는 것도 이제는 다 나은 알레르기성 비염 때문이 아닌, 화장실 때문이다.
과연 나는 하루 몇 번이나 일을 볼까. 평균을 내보면 대략 4.5회다.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보고, 30분 내지 한시간의 간격을 두고 2번째 일을 본다. 첫 번째야 저녁 식사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그렇다면 전날밤의 것은 뭐란 말인가?-두번째 것은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된 건지 의아하기만 하다. 출근을 한 뒤 점심을 먹기 전에 한번을 더 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오늘은 봤다-내 평균이 4.5회인 것은 대략 이틀에 한번씩 일을 보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난 뒤에 다시 한번, 밤에 집에 가서 또 한번. 점심 전의 한번을 제외하곤 모두 필수며, 시간도 비슷하다. 소설가 권지예는 표절에 걸린 어느 책에서 “내 안의 어디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정말 신기하다.”고 했지만 난 “내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이 숨어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고 개탄한다. 하루 세 번 이상 일을 보며 그 성분이 묽을 때를 설사라고 한다지만, 결코 묽지 않은 내 것들은 설사의 정의에서 벗어나 있다. 그렇다면 나는 하루 중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주 많은 건가. 그렇지도 않다. 내 사전에 실패란 없고, 그 대부분이 가자마자 성사되므로 다른 사람들이 한번 가는 시간 정도밖에 소모하지 않는다.
가끔은 이런 걸 자랑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심난할 때가 더 많다. 혹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되어 버스 대신 기차를 타야하고, 어딜 가든지 주변에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아 놔야 하는 고통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아, 지긋지긋한 위-대장 반사여.
* 뭘 드시려던 분들, 그리고 변비 환자분들에게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