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쯤 전, 강의 땜시 4호선 미아역에 내린 적이 있다.
시간이 40분 가량이 남아있는지라 커피나 한잔 할까 했는데
길 건너편에 '알라딘 중고서점'이란 글귀가 보이는 게 아닌가.
이 상호를 전에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여유가 있을 때 본 건 처음이었다.
당장 길을 건너 2층에 위치한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갔다.
헌책방에 간 적은 있지만 중고서점은 처음이었는데,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환경이 좋았다.
아주 깨끗한 환경에서 몇 명의 사람들이 책을 고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책들의 상태가 믿기지 않을만큼 좋았다.
난 나중에 다시 찾아보고픈 대목이 있으면 책을 접거나 빨간색 줄을 치는데
거기 있는 책들은 혹시 사자마자 다시 내판 게 아닐까, 싶을만큼 깨끗했다.
원래는 두세권 정도만 살 생각이었지만
'중고'라는 단어가 내게 용기를 준 탓인지 마음에 드는 책이 우르르 눈에 띄었고
하나둘 고르다보니 어느새 두 손에 들 수 없을만큼 책이 많아졌다.
이걸 어떻게 들고가지, 라는 고민을 했지만
계산도중 혹시나 해서 물어보니 "5만원을 넘기면 무료로 보내준다"는 게 아닌가?
내가 산 책의 총 가격은 7만7천원이었고,
그 책들은 그로부터 이틀 후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다.
![](http://image.aladin.co.kr/product/434/24/cover150/8954608647_3.jpg)
제일 먼저 집어든 책은 1Q84였다.
이 책이 시중에 나와 한창 베스트셀러가 됐을 무렵,
난 이 책을 일부러 외면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반감보다는
베스트셀러를 쫓아읽는 것에 대한 쓸데없는 거부감이 날 휘감았던 탓인데,
읽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다들 하루키, 하루키 하는구나!"
날마다 읽을 책이 쏟아지는 현실을 감안했을 때
그날 중고서점에 가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확률이 높았으니
이건 '괜한 반발심에 대한 중고서점의 승리'다.
또한 이 책은 베스트셀러에 대한 내 입장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만들었다.
하루키가 책을 내면 늘 베스트셀러에 들어갈 테니
베스트셀러라고 괜히 피할 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또 하나. 앞으로 중고서점을 본다면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들어가리라.
'중고'라는 건 늘 자신감을 주고,
그 자신감은 가끔 월척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