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가 되는 길은 갈수록 어려워져, 3년쯤 후부터는 필기시험만 보는 게 아니라 모의 환자를 앞에 두고 진단에 이르는 과정을 평가한단다. 연극배우 등이 환자 연기를 하며, 이들은 자기에게 할당된 병에 대해 의사에 필적한 지식을 갖는단다.
이 시험을 임상수행평가라고 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 각 대학에서는 위원회를 만들고, 돈을 들여 컨소시엄을 구성, 모의환자와 의사를 교육시키는 중이다. 우리학교 역시 위원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대한 관심은 최하위권이다. 기초의학을 전공하고 나이도 그다지 많지 않은 내가 간사로 있는 이유는 모두 다 안한다고 하니까 거절을 못하는 내게 그 자리가 돌아온 탓이다.
원주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대학마다 다섯명씩 오라고 했다. 위원장은, 자기는 일이 있어서 못간다면서 나한테 “알아서 하라.”고 했다.
“차량은 교학과에서 준비해 놨고, 내과 선생 누구누구가 가기로 했으니 연락해서 가면 돼요.”
하지만 교학과에 전화한 결과 차량 얘기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고, 거명된 내과 선생들은 모두 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한다. 다시금 위원장에게 전화했다.
“아이 참, 내과 과장이 말해준다고 했는데... 알았어요. 다시 연락할께요.”
위원장은 내게 “누구 누구 누구가 가니까 연락하면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전화를 걸었다. 다들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이 참...가라니까 가긴 하겠지만 외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겠고....”
“요즘 환자가 밀려서 바쁜데...”
아니, 이게 나 자신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하는 일인가? 왜 나한테 화를 내는 거지? 정말이지 노후대책만 있다면 당장 사표를 내고 싶었다. 안그래도 산더미같은 학교일에 치여 점점 짜증이 나는 터였는데. 사표가 어렵다면 휴직이라도 하고 싶었다. 도대체 왜, 나 혼자만 학교일을 다 해야 하는가?
내과에서 가라고 한 사람은 다 펠로우였다. 레지던트를 마치고 일이년간 더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단어. 교수가 아닌, 정해진 기간만 마치면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사람들을 왜 워크숍에 보낸단 말인가. 내과에서 일하는 방식에 회의가 들 수밖에. 이다지도 학생 교육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어찌 교수를 자처하는가. 더 웃기는 건 끝내 차량을 못구해 내가 차를 가져가야 한다는 거였다. 일년에 차를 가져가는 날이 대략 이틀이 안되고, 그나마도 외부강사를 위해 억지로 가져갈만큼 운전하기를 싫어하는데, 내 차를 가지고 천안에 갔다가 원주로 갔다가 다시금 천안에 가야 하다니. 수요일날은 그래서 하루종일 기분이 안좋았다. 조금 일찍 퇴근을 해서 테니스를 쳤지만, 심기가 불편해 제대로 공을 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날, 집에서 가져온 음악 시디를 차 안에서 듣다보니 마음이 풀린다. 평소 CD 플레이어가 없어 CD를 잘 못들었는데, 선물로 받은 시디들은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게 없었다. 차가 밀리거나 신호등에 걸릴 때면 CD랑 같이 가져온 기형도 시집을 읽었다. 그 시들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이런 것들이 내 곁에 있었는데, 난 모른 체 살았었다. 음악들과 더불어 운전을 하려니 가고 오는 길은 짧기만 했다. 이런 게 예술의 힘이다. 사표도, 휴직도 할 생각이 없어졌다^^
* 가장 튕긴 여자선생에게 떠나기 전 전화해서 이랬다. “선생님, 정 그렇게 힘드시면 가지 마세요.” “정말이요? 저야 그러면 좋죠. 그래도 괜찮나요?” “네, 잘 쉬세요 선생님.”
** 난 운전할 때 소리높여 노래를 따라부르곤 한다. 몸을 앞뒤로 흔들어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내 모습을 누가 본다면, 맛이 간 사람으로 알았을 거다. 그때 불렀던 아름다운 노래 한토막.
“하지만 넌 서러워 하지마 우리만의 축복을/어떤 현실도 우리 사랑 앞에선 얼마나 더 초라해질 뿐인지/이젠 눈물을 거둬 하늘도 우릴 축복하잖아 워-워-워 이렇게 입맞추고 나면
우린 하나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