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3월 17일(금)
누구와: 드림팀과
금방 취소하긴 했지만 올해 술 목표를 100번 이하로 잡았었다. 물론 그럴 만한 이유는 있었다. 규정을 강화해 웬만큼 마시지 않으면 술 마신 걸로 치지 않기로 한 것. 그 결과 3월 21일까지 내가 마신 술의 횟수는 불과 서른여섯 번, 100번 달성은 어려울 듯했지만 164번을 마셨던 작년보다야 훨씬 덜 술을 마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는 어땠을까 싶어서 기록을 뒤져봤다. 이럴 수가. 작년 3월 21일 난 서른번째의 술을 마신 것으로 되어 있다. 36회인 올해는 그러니까 작년보다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났지 않는가. 물론 작년에는 8월 특수가 있어 매일같이 술을 마셨다지만, 스페인에서 마신 술을 모조리 안마신 걸로 치고도 이렇다면, 100회는커녕 150회 이하도 어려울 듯싶다. 에라 모르겠다. 이왕 망한 거, 설마 200번을 넘기랴 하는 마음으로 마셔 줘야겠다.
술을 마시는 조직 중 여자 둘로 구성된 팀이 있다 (물론 그런 팀이 한둘은 아니지만^^). 두분 다 보통 주량은 넘는 분들이라 그 팀과 만날 때는 긴장도 하고 몸도 만든다. 약간 피곤한 상태에서 술을 더 잘 받는다는 게 경험으로 증명되었기에 일부러 전날 잠을 덜자고 나간다. 17일날도 그랬다. 기찻길 왕갈비집에 가서 고기와 더불어 소주를 마셨다. 보통은 고기만 먹으면 이상하니까 술을 먹지만, 이분들과 있으면 고기는 수단이고 술이 목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누구 하나 원샷을 외치거나 술을 강요하는 분은 없다. 그저 각자 달릴 뿐이다. 하지만 그런 게 오히려 나의 전투 의욕을 더 부추기는데, 양쪽 옆에 앉은 여자분이 부지런히 잔을 비우는데 내가 어찌 멈춰 있을 수 있겠는가. 특히 순진한 얼굴을 한 젊은 분의 활약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시종 ‘전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을 하고서 홀짝홀짝 잔을 들이키는지라 그분의 잔은 볼 때마다 비어 있다. 1차에서 몇병이나 마셨을까. 4병? 5병? 스포츠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우리는 바람을 가르며 술을 마셨다.
그리고 이어진 2차. 또다시 소주병이 쌓여 갔고, 위기감은 점점 고조되었다. 내가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모닝케어를 먹지 않은 탓에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미녀분이 선물해준 책 두권을 무사히 가져갔고, 분실한 것도 없는 걸 보면 크게 문제될 일은 없지 않았을까 하고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물론 그 두분에게 또다시 완패했지만. 그분이 준 <수잔 서랜던>이란 책을 펼쳤다. 책 겉장에 파란색 볼펜으로 쓴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xx님, 술 조금만 드세요!”
그토록 술을 먹여놓고 어찌 이런 글귀를 책에다 쓸 수가 있단 말인가. 방법은 하나 뿐, 몸을 더 열심히 만들어서 다음번엔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밖에. 다음날 출근을 해야 한다던 순진한 모습의 미녀가 결국 회사에 나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그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해들은 게 약간의 위안거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