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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겉과 속 3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스페인에 갔을 때 갑자기 느낌이 왔다. 평소 일을 자주 보는 탓에 국내에 있을 때는 근처에 화장실이 어디 있을지 파악을 해놓는 게 생활화되어 있는데, 낯선 땅인지라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해져서 여기저기를 헤매다 백화점을 발견, 그리로 들어갔다. 화장실이 있을만한 곳을 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스페인어로 화장실이 어디 있냐고 물으니 아주 복잡하게 얘기를 해주는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결국 나는 백화점을 나와 맥도널드 2층에서 큰일을 성취해야 했다. 귀국한 뒤 거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강준만이 쓴 <대중문화의 겉과 속> 3권을 읽다가 이 구절에서 무릎을 탁 쳤다.
“(백화점에서는) 화장실만 이용하려고 들어오는 얌체 방문객을 최소화하기 위해...1층에 화장실을 두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국내 백화점에서도 화장실을 쉽게 찾은 기억이 별로 없다. 백화점 안에 시계나 창문이 없는 것도 “고객들이 시간 흐름이나 날씨 변화 등에 신경쓰지 않고 느긋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니, 그 치밀함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휴대폰을 2년쯤 쓰면 왜 맛이 가는가, 좀 튼튼하게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변도 이 책에서 찾을 수 있다.
“몇년 전 일본의 한 휴대전화 제조업체가 몇 년 써도 흠집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내구성이 뛰어난 제품을 내놨다가 망했다.”
휴대전화가 인간의 기억기능을 대신함에 따라 인간의 기억능력이 더더욱 악화되고, ‘디지털 치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는데, 나만 해도 옛날엔 전화번호를 100개 이상 외웠지만 요즘은 거의 검색을 해서 전화를 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 후손들의 기억능력은 어떻게 될까 심히 걱정된다.
1, 2권에서도 그랬지만, 이 시리즈는 현재 유행하는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준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만한 내용이지만,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일부 연기자들의 고액 개런티를 다룬 대목이었다. “무명배우가...(좀 떴다고) 수억원의 출연료를 요구”하고...“수익금의 절반을 달라”고 요구하는 기획사도 있단다. 참다못한 강우석은 “한국 배우들 돈 너무 밝혀요.”라고 불만을 터뜨렸고, 영화제작가협회 이사장은 “시장이 큰 일본 스타들의 출연료도 대개 1억원 미만이다. (우리는) 정도가 심하다.”라고 꼬집었지만, 그에 대한 반론이라는 게 겨우 이런 수준이다.
싸이더스 매니저, “스타들에게 개런티는 돈이라기보단 자존심에 대한 확인이에요. 다른 데서 누가 얼마 받았다 하면 마냥 초연할 수가 없거든요.”
송강호, “120억짜리 영화에서 주연배우가 5억원을 받는 것이 그렇게 지탄받아야 하느냐.”
주연배우들의 드라마 출연료가 1998년에 비해 열배나 뛰어 회당 2천만원을 넘는 판국에, “단역 하위 10명의 평균 출연료는 21만원에서 14만3천원으로 32%나 깎였다.”는 현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한다. 스타들이 참여한 스크린쿼터 시위에 일반인들이 냉소를 보내는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옛날만 해도 강준만의 책은 모조리 사서 읽고, 새 책이 또 나오기를 기다렸다. 요즘은 책을 사긴 사는데 읽는 속도가 쓰는 속도를 못 따라잡는 느낌이다. 점점 바빠지고, 책 읽을 시간도 없어지는 게 내가 나이든 탓인 것 같아서 마음 아프다. 벌써 30대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