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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낯선 상식 - '호남 없는 개혁'에 대하여
김욱 지음 / 개마고원 / 2015년 11월
평점 :
목포고에서 강연이 있는 날.
4시 반부터 1시간 반 가량 강연을 한 뒤 택시를 타고 목포역으로 갔다.
그때 시각이 6시 15분, 6시 5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예약해 놓았으니 여유가 좀 있었다.
기사 아저씨에게 물었다.
“이 근처 괜찮은 밥집이 있나요?”
친절한 기사 아저씨는 거기서 5분 가량-체감상은 10분-떨어진 백반집에 날 내려줬다.
그 백반집이 썩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점심을 굶다시피 한 터라 꾸역꾸역 먹었다.
기차 시간에서 17분을 남긴 6시 33분, 목포역으로 출발했다.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다.
내가 심각한 길치라는 것.
분명히 길을 잘 봐뒀다고 생각했지만, 역은 나오지 않았다.
지나가는 이에게 물었더니 역은 내가 걷던 것과 반대방향이었다.
되돌아 걷다가 목포역을 물어보고, 또다시 묻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새 5분 전이다.
안되겠다 생각하고 뛰기 시작했고, 목포역 입구를 통과했을 땐 2분이 남아 있었다.
선로를 가로질러 가려는 걸 역무원이 막았다.
할 수 없이 계단으로 올라갔다 내려왔더니 아뿔사, 이 계단이 아니다!
죽을힘을 다해 뛰어 그 옆 승강장으로 갔더니 열차가 이미 출발하고 있었다.
너무 슬퍼서 한참을 승강장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역무원이 막지만 않았다면...’
다음 기차는 무려 두시간 뒤, 할 수 없이 역 안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시켰다.
그리고는 가방에서 <아주 낯선 상식>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챙겨간 건 경향신문에서 이 책에 대한 고종석 선생의 글을 봤기 때문이었다.
거의 ‘올해의 책’이라며 추천을 하셨던데,
정말 그럴 만했다.
유익한 책에 대한 내 기준 중 하나가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을 바꿔주는 책인데,
이 책은 호남정치에 대한 내 알량한 생각을 바꿔 놓았다!
“(친노로 대변되는) 영남의 개혁세력이
영남패권주의에 대한 적극적 청산의지도 없이 자신들이 앞장서야만 대권을
잡을 수 있”(187쪽)다며 호남에게 계속 표를 달라고 우기는 것이 현 상황이고,
그게 노무현 대통령의 분당 이후 벌써 십수년째 계속되고 있다면,
호남이 더 이상 ‘개혁성’을 기치로 한 투표를 하는 대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소위 ‘세속적 투표’를 하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이 주장이 이해가 안된다면 그건 내가 설명을 잘 못한 탓이다).
호남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난 호남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고 있었고,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그들의 몰표에 대해서도 탐탁지 않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호남을 빼고는 한국정치를 논할 수 없다는 저자 김욱의 논리에
난 완전히 설득당했다.
이 책 덕분에 난 호남에서 문재인의 지지율이 왜 떨어졌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난 재보선 때 새누리 이정현을 뽑은 그들의 선택도 조금은 이해가 갔다.
고종석 선생이 왜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는지도 수긍이 갔고 말이다.
그러고보면 기차를 놓친 건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어제 밤을 샌 여파로 목포에 내려갈 땐 계속 잠만 잤으니,
커피숍에서 이 책에 몰입하지 않았다면 올라갈 때도 딴짓만 했겠지.
그러다 보면 이 책을 읽는 건 기약없이 미뤄졌지 않았을까?
하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뿌듯한 마음으로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만큼은, 길치인 게 도움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