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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 -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
안시내 지음 / 처음북스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어쭙잖은 글쓰기 책을 낸 덕분에 이따금씩 글쓰기에 관한 강연을 한다.
서울시립대에 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주최측에선 혹시나 하고 큰 강의실을 잡았지만,
내 인지도로 그곳을 가득 메우긴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시간을 내서 와주신 분들이 고마웠다.
강연이 끝나고 난 뒤 예쁘장한 여학생이 사인을 요구했다.
사인을 해주자 가슴에 품고 있던 책 한권을 내민다.
“제가 쓴 책이에요.”
그 다음날 부천에 다녀올 일이 있어 지하철을 탔는데,
읽던 책을 다 읽는 바람에 전날 받은 그 책 생각이 났다.
<악당은 아니지만 지구정복>이란 제목을 보니 내가 소싯적에 쓴 <소설 마태우스>가 떠올랐다.
“그 책 가지고 있다고 절 협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강의 때마다 너스레를 떠는 그 책 말이다.
‘이것도 그것과 비슷하겠거니’ 했고,
‘350만원 들고 떠난 141일간의 고군분투 여행기’란 부제목도 그런 생각을 더 강화시켜 줬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4쪽부터 시작해 9쪽에서 끝나는 책의 서문은,
지난 십여년간 내가 읽었던 그 어떤 책의 서문보다 흡입력이 있었다.
거기엔 여행을 떠나기까지 과정이 담겨 있었는데,
배낭여행을 가야 할, 이보다 더 절실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싶었고,
그녀를 앞에 두고 내가 강의를 했다는 게 부끄럽기까지 했다.
혼자하는 여행이 ‘나를 치열하게 사랑해가는 과정이었으며, 모난 네모가 점점
세상에 부딪히며 둥글게 깎여가는 과정이었다’는 저자의 표현력은,
이제 만 스물둘인 소녀가 썼다고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게다가 그 다음부터 이어진 여행기도 그녀만의 매력이 듬뿍 담겨 있었다.
면밀한 사전조사가 있어야 경비도 아낄 수 있고 안전도 챙길 수 있다면서
인도여행 사이트를 4년이나 넘게 들락거렸고,
해외에서 만날 사기꾼들에게 해주려고 나라별로 간단한 욕설도 연마했다는 대
목을 읽으면서
“이 아이는 뭘 해도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74쪽을 보니까 세상에, 그림도 정말 잘 그린다!
존경심이 생긴 나머지 얼마나 팔렸을까 궁금해 맨 앞페이지를 펴니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초판 1쇄 발행 2015년 4월 2일
초판 5쇄 발행 2015년 5월 29일
22세의 여대생이 쓴 책이 두달도 안 돼 5쇄를 찍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안.시.내.
그 이름을 기억해 두자.
아니, 굳이 기억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녀가 뭘 하든, 우리는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될 테니 말이다.
다만 누구에게나 단점이 있듯,
그녀 역시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다음 글귀를 보자.
저 말이 농담이 아니라면
남자보는 눈이 없다는 것, 어쩌면 이게 그녀의 발목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 리뷰 올리고 나서 알았는데, 최근 아프리카 여행에 관한 책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