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무덤
권지예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황박사는 논문 조작을 했다. 그것만으로 그는 과학계에서 영구히 퇴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원천기술이 있다면서 물타기를 하고, 황당하게도 그게 먹히고 있지만, 내게 있어서 원천기술의 존재 여부는 관심 밖이다. 과학자에게 거짓말처럼 파렴치한 범죄는 없으니까.


2005년은 권지예에게 축복과 아픔이 교차하는 한해였을 것이다. <꽃게무덤>으로 큰 상을 받았지만 거기 실린 단편 하나가 인터넷에서-나중에는 소설로 출간되었지만-소재를 차용하고 문장 일부를 그대로 베낀 게 밝혀지면서 네티즌의 집중포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데서 소재를 얻어왔으면서 “내 속에 어떻게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나 싶다.”는 머리말을 쓴 건 얄미워 보이고, 표절 시비가 불거진 뒤 그녀가 보여준 반응도 성숙하지 못했다. 하지만 난 여전히 그녀가 능력 있는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하며, 작년의 그 일 때문에 절필을 한다든지 하는 건 우리 문학계의 손실이라고 여긴다. 이 관대함이 내가 과학 특권주의에 빠진 탓일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둘은 엄연히 죄의 정도가 다르며, 권지예의 경우엔 진솔한 사과가 필요했지 그게 퇴출 사유가 될 정도는 아니라고 난 생각한다.


권지예의 이전 책들처럼 <꽃게무덤> 역시 난 참 재미있게 읽었다. 피카소의 그림 한 장에서 자신의 출세작 ‘뱀장어 스튜’을 탄생시키고, 간장게장에서 ‘꽃게무덤’이란 작품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작가들이란 참 대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전 작품에서도 그런 징후가 보였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가정에 대한 작가의 회의가 두드러진다. 부부와 자식, 이렇게 단란하게 살아가는 가족을 이 책에 실린 단편들에서는 만날 수가 없다. 전처 소생의 아이를 구박하는 새엄마 얘기도 나오지만, 대부분의 잘못은 남자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꽃게무덤’의 남자는 여자가 전에 사귄 남자에 대해 추궁함으로써 그녀를 떠나게 만들고, ‘산장카페 설국’의 남자는 재산을 말아먹고 이혼당한 이후에도 진드기처럼 여자를 착취한다. 작중인물의 대화 한토막.

“부부란 뭘까요?”
“전생에 웬수나 빚쟁이가 이 생에서 부부의 인연으로 만난다잖아.”

심지어 이런 말도 한다. “세상의 결혼이란...얼마나 끔찍하게 질긴가.”

그녀가 왜 이렇게 가족에게 냉소적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 건 나 역시 가족에 대해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실제로 믿는 사람들 때문에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도 작가로서 겪어야 할 고충을 말해 주는데, 작년에 겪은 상처에서 하루속히 회복되어 좋은 작품으로 독자에게 보답하기를 빌어 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깍두기 2006-01-09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재기하기 전에, 사과부텀 하면 좋겠어요^^

하루(春) 2006-01-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기? 이 사람 계속 글 쓰는 거 아니에요?

마태우스 2006-01-10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깍두기님/막판에 사과는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좀 미흡하긴 해도, 살아가면서 진솔한 사과를 목격하는 건 참 어렵더군요.
하루님/아, 그 이후에는 책을 낸 적이 없는데요, 다음 작품을 좋은 걸로 써서 재기하라는 겁니다.

2006-01-10 0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마천 2006-01-10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절대로 절필할리 없습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갔는데.

미미달 2006-01-10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여자의 몸 Before & After' 를 참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