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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 경제 위기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 부키 / 1997년 11월
평점 :
난 폴 크루그만을 좋아한다. 미국 경제학에서 그의 위치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장하준과 더불어 크루그만은 내가 가장 신뢰하는 경제학자다. “경제학은 얼마든지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머리말처럼, 크루그만은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도 냉소적인, 하지만 친절한 문장으로 우리로 하여금 경제학이 재미있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냉소적과 친절함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냐고 하겠지만, 그의 냉소는 경제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는 정책기획가들을 겨냥한 것이고, 그의 친절함은 나같은 문외한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을 잘해준다는 의미다.
이 책에서 크루그만은 미국에서 케인즈로 대표되는 진보주의 경제학이 퇴조하고 프리드만이 주도하는 보수주의 경제학이 득세하게 된 배경과 그 허와 실을 다루고 있다. 특히 공급중시학파가 득세하던 레이건 행정부 시절의 공과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조세삭감과 복지축소를 위주로 한 공급중시학파는 학계에서는 별반 주목받지 못하는 신세였지만, 그 이론의 이용 가능성에 주목한 정치집단에 의해 80년대를 대표하는 경제학이론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정책이 미국의 성장률을 떨어뜨리지도, 자신들의 호언장담처럼 성장률을 크게 높이지도 못했다고 말하는 크루그만은 오늘날의 미국이 1979년보다 더 생산적인 나라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평균 소득의 성장은 주로 극소수의 부유층 가게에 집중되었던 것이다.”
조금 더 읽다 보면 이런 말도 나온다.
“평균 가계 소득 증가분의 70%를 상위 1퍼센트가 차지하였다.”
즉, 크루그만이 말하는 레이거노믹스의 공과는 다음과 같다.
“세금삭감은 최상위 고소득층의 가계에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간 반면, 보건 복지 이외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사회적 지출의 대폭적 삭감은 빈곤층에 큰 타격을 주었다.”
상황이 이럴진대, 최상위층도 아니면서 죽어라고 공화당에 투표하는 사람은 도대체 뭘까? 2000년 집권한 부시 행정부 역시 세금을 깎아주면서 “못사는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고, 물론 그건 말도 안되는 거짓말로 드러났지만, 부시는 재선되었다. 그래서 난 가끔 민주주의의 1인1표제에 회의한다.
경제학의 여러 이론들 뿐 아니라 외환위기 때 우리가 추앙했던 대처리즘의 허상도 친절하게 알려주는 이 책은 다른 경제학 책들보다야 쉽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경제학은 경제학, 이해하려면 조금 머리를 써야 하고, 그래서 페이지 넘어가는 것도 만만치 않다. 경제를 모르면 인생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분들게만 일독을 권한다.
* 이 책을 선물해주신 미모의 여성분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