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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읽은 책 중 <페미니즘의 도전>만큼 내게 큰 깨달음을 준 책은 없었다. 페미니즘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난 내가 그동안 너무 무지했다는 걸 자각하게 되었고, 내가 스폰지가 된 것처럼 책에 나온 한줄 한줄을 빨아들였다. 앎이 곧 실천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여기서 얻은 깨달음들은 나를 많이 변화시킬 것 같다. 무려 열흘이 넘게 이 책에 매달렸고, 그 바람에 12월의 독서량은 형편이 없지만, 이 책 한권이 다른 달의 스무권보다 훨씬 더 보람있었다.
혼자만 간직하기 아까운 주옥같은 글귀들을 몇 개만 추려본다.
“모성이 본능이라면 미혼모도 어머니이므로 차별받아선 안된다. 미혼모에 대한 우리 사회의 부정적인 인식은 합법적 아버지가 있어야 어머니와 자녀도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유림의 주장대로 동성동본간 금혼이 우생학적 근거에 따라 존속해야 한다면, 아버지의 성 뿐 아니라 어머니들의 성이 같아도 금지해야 할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음식과 성을 노동으로 강요받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은 음식과 성을 즐길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잘하거나 못하는 것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좋거나 싫은 것이다...여성이 섹스를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않을 때, 그녀에게는 ‘걸레’라는 낙인과 추방이 주어진다.”
이런 명문들에 내가 감히 어떤 사족을 붙일 수가 있을까. 읽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리뷰를 쓰게 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여성운동에 관심이 있는 척하는 사람으로서 난 성매매방지법을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난 그게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며, 여성운동가와 성매매 여성들간의 계급 차이가 존재하며 그에 따라 이해관계 또한 다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성매매 산업은 다른 문제들처럼 단칼에 선과 악을 구분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며, 거기 얽힌 수많은 함의들을 고찰해 놓은 대목을 읽을 때는 머리가 아팠다. 다 읽고 난 뒤에도 어느 게 옳은지 명확하지가 않았으며, 그걸 이해하기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이 책이 던져준 숙제일 것이다. 이런 보석같은 책을 발견하면 다른 이에게 선물하고 싶어지는 법, 난 이 책을 세명에게 사서 돌렸다. 그분들도 내가 받았던 만큼의 감동을 받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