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학교 사람들 중 최근 발견된, 5세 정도로 추정되는 미이라에 지대한 관심을 표하는 사람이 많다. 이집트 미이라처럼 내장을 다 들어낸 게 아닌, 보존 상태가 지극히 양호한 미이라이니 그걸 가지고 한 연구라면 비상한 관심을 모을 만하다. 사람들 말로는 유수 외국잡지에 실을 논문을 열개 정도는 만들 수 있다는데, 실제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신이 날만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제, KBS 생로병사 팀이 와서 미이라를 찍었다. 내시경을 하고, 각 장기를 들어내는 과정을 찍어서 내년 초에 내보낸단다. TV에 한두번 나간 게 아니라서 별 흥미가 없었는데, 미이라 옆에 서있을 사람이 더 있으면 좋겠다는 말에 생각을 고쳐먹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TV에 나간 것 중 연구 때문에 나간 건 단 한번도 없지 않는가. 그래서 갑자기 수술복을 갈아입고 미이라 근처에서 얼쩡거렸다. 하지만 방송이란 게 참으로 비효율적이기 짝이 없는지라, 수십분 기다리다 일이분 찍고, 또 한시간 기다리고 하는 과정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시간은 흘러 밤 9시를 넘었고, 전날 외박을 한 탓에 연속으로 안들어가는 건 싫었다. 게다가 바쁜 일정을 보낸 탓에 하루 종일 무지하게 힘이 들었던 것도 날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했다. 내가 기다린 것은 미이라의 장에 들어있을 대변이었는데, 내가 집에 간다고 하니까 소아과 후배가 “대변 안준다.”는 귀여운 협박을 하기도 했지만, 9시 40분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보따리를 싸서 집에 가버렸다.


오늘 아침에 난 미이라 팀 중 하나를 만날 수가 있었다.

“어제 몇시에 끝났어요?”

“한 열두시 반쯤이요.”

일찍 가기 잘했다 싶었다.

“저...대변은 어떻게 됐나요?”

안그래도 그것 때문에 찾아왔다면서 플라스틱 통을 꺼낸다. 그걸 받자마자 난 잽싸게 가방을 챙겨서 모교로 왔고, 얼마 안되는 변을 물에다 풀었다. 입체현미경으로 봤더니 뭔가가 있었다. 수없이 많은 편충알들, 그리고 가끔씩 보이는 회충알들. 머리가 좀 커진 걸로 보아 뇌수종이 있었을 수 있고, 폐에 있는 출혈로 미루어 결핵이 의심되는 그 아이는 직접 사인은 아니었겠지만 회충과 편충에 의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던 거였다. 500년 된 미이라에서 나온 편충알 소식에 미이라 팀은 크게 기뻐했지만, 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오늘 발표된 우리 학교 공채에서 우리 과에서 낸 티오가 총장에 의해 잘렸다는 얘기를 서울로 올라가는 길에 들었기 때문. 심복은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그녀 얼굴에 어린 실망감을 보면서 난 그저 미안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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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up 2005-11-02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이라의 대변이라니...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군요.

엔리꼬 2005-11-02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무지하게 빨리 속독하다가 님이 대변을 참을 수 없어서 일찍 자리를 뜨셨다고 잘못 봤어요..

클리오 2005-11-02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티오, 이번 학기에 뽑았는줄 알았더니 아직도 티오조차 미확정이군요... 휴... 500년된 대변을 풀어헤쳐 기생충을 발견하신 놀라우신 학구열에 경의를 표합니다..

어룸 2005-11-02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미이라는 대변...오...게다가 그속의 기생충알이라니...신기할뿐입니다...@ㅁ@

panda78 2005-11-02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복님 참 안타까워요..
근데 정말 신기하네요. 미이라의 대변에 회충 편충 알이라니! 오옷!

모1 2005-11-03 0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도 tv에서 미이라 해부하는 것 나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또 나오나보죠? 그때도 아이였던 것으로 기억....흥미롭게 잘 봤었는데...좀 무섭기도 했어요. 어쨌든 시체니까요.

BRINY 2005-11-03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이라의 대변이라니~ 호오~
근데, 심복님 얘기는 정말 안타깝기도 하고, 저도 딴 생각말고 앞으로 몇년은 그냥 지금 직장에서 죽어지내야겠군이라는 씁쓸한 생각도 들고 그러네요.

하치 2005-11-03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생충알도 같이 미라가 된건가요?헉.

마태우스 2005-11-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치님/그 기생충알이 감염력을 갖고 있다면 제가라도 먹겠지요.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현미경으로 본 결과 알 속의 유충은 이미 없어졌더군요...
브리니님/심복 개인에게도 안됐지만, 제게도 슬픈 일입니다. 심복이 있어야 제가 안잘리고계속 남을 수 있는데, 혼자 논문 어떻게 써요....
모1님/앗 언제 TV에서 나왔나요? 그거 혹시 고대에서 한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도 첨엔 무서웠어요.
판다님/정말 신기하죠?? 그 당시 기생충은 60년대보다 훨씬 많았나봐요.
투풀님/그러니까 조선 500년은 기생충의 시대였나봐요^^
클리오님/6개월 있다가 또 한번 신청해 봐야지요. 심복도 벌써 서른 중반인데...
과일이좋아님/추리도 좋죠^^ 기생충알의 끈질긴 생명력에 저도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새벽별님/그죠? 정말 대단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서, 서림님/그게 더 웃기네요^^
나무님/제 말이 그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