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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벤지가 죽은 뒤 슬픔에 빠져있을 때 난 권xx님이 보내주신 해리엇의 책을 읽고 기운을 차렸다. 그분이 보내주신 두권 중 한권은 나중에 읽으려고 아껴뒀었는데, 부쩍 꿈에 벤지가 나타나고 벤지의 빈자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지는 이 가을에 나머지 한권을 읽게 되었다. 저번 책처럼 이 책 역시 해리엇이 만난 개들 이야기로 가득차 있는데, 그 중 가장 인상깊은 얘기를 소개한다.
저자를 비롯해서 의사 셋이서 가축병원을 하고 있었다(편의상 의사1, 의사2, 의사3이라 하자). 의사1이 왕진을 갔다. 근데 개가 거의 곰만해서 물리면 죽을 것 같다. 진찰을 자세히 해야 함에도 겁이 난 의사1은 “일단 약만 드리고, 자세한 진단은 병원에 와서 받으라.”면서 목요일 오후에 오라고 얘기한다. 목요일 오후는 의사 1의 진료가 없는 날이었기 때문. 금요일에 의사 1이 출근했더니 의사 2 역시 “좋아 보였다.”면서 약만 줘서 보냈단다.
의사3: 아니 네가 그러고도 수의사냐? 진찰도 안하고 좋아 보였다고? 맥박도 재고 체온도 재고 그래야 할 것 아냐.
의사2: ....
의사3: 다음에 언제 또 오라고 했어?
의사2: 월요일에.(월요일은 의사 1, 2가 모두 다른 곳에 가는 날이다)
의사1: 좋아, 알았어. 월요일에 내가 진찰하지.
화요일에 의사 1은 그 개주인을 만났다. “의사 3이 진찰 잘 합디까?”
개주인 왈, “3초만에 진료를 끝냈어요. 체온계를 꺼내다 개가 짖으니까 체온계를 넣고 잽싸게 도망갔어요.”
결국 셋은 다시금 모인다. “우리 셋이 모두 있을 때 오라고 하자. 네가 입을 잡고, 네가 다리를 잡고 진찰은 내가 할게.”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공포에 떨며 그 시각을 기다리다, 그 시각이 되자마자 모두들 일이 있다고 도망가 버리는데, 그러다 그 사람이 개를 데리고 오는 걸 본다.
“이건 모두 그 사람이 늦게 온 탓이야. 우린 바쁜 일이 있어서 가는 거라고.”
수의사 역시 인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면서도 저자의 다음과 같은 말에는 동의할 수가 없었다.
“개의 수명은 짧지만 그들이 남긴 빈자리가 영원한 공백으로 남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좋은 추억은 남지만 그 공백은 얼마든지 메워질 수 있다.”
세상에서 벤지를 대신할 수 있는 개는 없다고 생각한다. 벤지와 같은 흰색의 마르치스를 구하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테고, 그 개 역시 나에게 많은 사랑을 주겠지만, 그 녀석과 내가 소통하는 방식은 벤지와 했던 것과는 다른 것일게다. 벤지와 달리 그 녀석은 내 어깨에 올라타는 걸 좋아하지 않을지 모르고, 벤지처럼 목욕을 한 뒤 몸을 비비다 말고 장난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대변이 털에 걸린 뒤 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은 벤지와 비슷할 수 있지만, 그 개는 영원히 벤지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모든 생명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수단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처럼, 개는 그 자체로서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지 다른 개의 대용품이 되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이 가을, 내가 느끼는 허전함은 나 스스로 이겨나가야 할 문제이며, 다른 개를 통해서 외로움을 보상받는 건 진정한 해결책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개를 다시 안사는 이유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고상한 차원이라기보다, 어차피 찾아올 그 개와의 이별이 두렵기 때문이라는 게 더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내가 다른 개와 히히덕거리는 걸 벤지가 본다면 그 역시 슬퍼하지 않을까. 동물이 영혼을 갖지 못해 저세상에서 만날 수 없다는 어느 부인의 말을 저자는 이렇게 반박한다.
“영혼을 갖는다는 게 사랑과 헌신과 감사를 느낄 수 있다는 뜻이라면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낫습니다.”
저 세상에서 벤지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