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9월 18일(일)

누구와: 사촌형과

마신 양: 대단한...


1. 조카

차례를 마치고 큰집에 갈 때, 남동생 아들이 따라왔다. 숫기가 없어서 그집 아이들과 어떻게 놀까 걱정했는데, 초반부의 적응기를 거치고 나자 곧잘 놀았다. 다른 애들과 우르르 놀이터에 나가서 잘 노나보다 했는데, 갑자기 조카 녀석만 뛰어들어온다. 화장실로 간 조카는 간발의 차이로 변기에 앉지 못했고, 그 바람에 바지에다 설사를 해버렸다.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술을 마시던 남동생은 화장실로 가서 설사의 흔적을 다 치웠고, 옷가지는 형수님이 빨아 줬다. 형수님 아들이 입던 헐렁한 옷을 걸친 조카, 갑자기 울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이 못내 부끄러웠던 걸까? 울음을 그친 조카는 이내 소파에서 잠이 들었고, 잠에서 깬 뒤엔 다시금 애들이랑 놀았다. 역시 잠자는 건 모든 걸 잊게 해주는 좋은 방어기제란 생각이 든다.


2. 훌라

“포커는 도박성이 강하고, 훌라는 도박이 아닌 게임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고스톱을 치는 거다”

고스톱을 치는 사람들은 도박과 게임의 속성을 모두 갖춘 고스톱을 제일로 친다. 하지만 난 포커가 좋은 것이, 중간에 죽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스톱을 치다가 스리고를 당할 때, 그러면서도 먹을 게 없을 때 얼마나 난감한가!


난 훌라는 잘 못친다. 친구들과 어쩌다 훌라를 쳤을 때, 딴 기억이 한번도 없다. 그냥 2만원쯤 잃고 말자는 각오로 치곤 했었는데, 사촌형들이 훌라를 치잔다. 이게 웬일인가. 5만원 땄다! 비결은? 우리 사촌형 때문에. 훌라를 그날 처음 배워 게임판에 뛰어든 사촌형은 우리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혼자 10만원을 잃어 우리를 안타깝게 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역시 수준이 고만고만해서 땅짚고 헤엄치기 수준이었다. 그 5만원 중 3만원을 본전치기에 성공한 남동생에게 개평으로 줬고, 어머니에게 딴 기념으로 5만원을 드렸으니 3만원이 적자다.


3. 작업

집안에서 계속 술을 마시다, 맥주를 마시러 밖에 나왔다. 난 뒤돌아 앉아있어서 몰랐는데 사촌형과 남동생이 서빙하는 아가씨가 이쁘다고 난리다. 몸을 돌려 봤다. 히익! 진짜로 예쁜 거다! 시원시원하게 생겼고, 성격도 좋아 보인다. 사촌형들과 동생은 신이 났다. 그녀가 올 때마다 수작을 건다. 그런 것에 익숙한지 아가씨는 막힘없이 대답을 해준다.

“학생이세요?”

“졸업 했구요, 스물아홉이어요”

“여기서 매일 일하세요?”

“네. 저 사장 딸이어요”

남동생은 급기야 이런 말까지 한다.

“시간 되시면 여기서 맥주 한잔 같이 해요”

사촌형이 그 말을 받는다.

“5분 기다릴께요”

그날 맥주집을 연 곳이 별로 없는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무슨 시간이 나겠는가. 시커먼 남자 넷이 앉은 테이블에 그녀가 올 리도 없고, 맥주집 딸에게 맥주를 같이 하자는 것도 우습다. 그런 식의 접근으로 뭔가가 되겠는가, 하고 동생에게 따졌더니 동생이 이런다.

“내가 나 좋으려고 이러는 줄 알아? 형 소개해 주려고 그러지”

사촌형도 거든다.

“그래. 너 좀 잘해봐라. 아주 예쁘고 참해 보인다”

내가 짝이 없는 걸 빌미로 수작을 걸어놓곤 왜 갑자기 내 타령인가. 게다가 집도 바로 옆인데 수작을 부리다니. 하여간 남자들은 언제나 감시를 해야 하는 존재다.


4. 보름달

그날 역시 보름달이 환하게 떴다. 집에 간 나는 어머님과 할머니를 모시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우리 달 보고 소원 빌자!”

설, 정월대보름, 그리고 추석, 내가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날이다. 난 우리 가족의 건강과 내가 학교에서 잘리지 않도록 도와 줄 것, 그리고 경제가 좀 좋아질 것 등을 달님에게 빌었다. 엄마와 할머니도 환한 달빛 아래 무언가를 비셨고.


다음날 아침, 어머님이 내게 “고맙다”고 하신다. 내게 그다지 잘 못하는 형제자매들의 건강까지 빌어준 것이 고맙다는 거다.

“엄마도 참! 난 맨날 그렇게 빌었어요. 그래도 내 형젠데. 그리고 그네들 아프면 엄마가 제일 속상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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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5-09-21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착하신 마태님 소원 성취하세요^^

야클 2005-09-2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착한 남자들은 원래 장가를 늦게 가는가 봅니다. ^^

마태우스 2005-09-22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클님/착한 척만 하는 거랍니다^^
물만두님/제 소원은 서재 평정인데...^^

니르바나 2005-09-22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이 옆에 계시면 뺨에 뽀뽀라도 한 번 해드리고 싶은데
오해하진 마세요. 그렇다는 뜻입니다.

마태우스 2005-09-27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해주세요!!! 빨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