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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3 - 야스쿠니의 악몽에서 간첩의 추억까지 ㅣ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3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평점 :
구입할 때 설레이고, 읽는 내내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으며, 다 읽고 나서도 오래도록 흥분이 가시지 않는 책, 한홍구의 <대한민국사>는 바로 그런 책이다. 먼저 나온 1, 2권과 달리 이번 책은 역사 이야기라기보다 정치 비평에 가깝다. 어제의 일이라고 역사가 아닌 건 아니지만, ‘이재오.김문수는 왜 삽질을 하는가’라든지 요즘 뜨고 있는 뉴라이트에 대한 질타, 최근 망언 부문 선두를 달리는 한승조 비판 등은 마치 정치비평서를 보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 책이 정치비평서와 다른 이유는 현재 일어나는 일은 과거에서 기인한다는 전제 아래 사건의 기원이 되는 과거를 파헤치기 때문이다. 예컨대 행정수도에 대해 ‘관습헌법’을 끌어대며 희대의 코미디를 연출했던 헌법재판소의 행태는 박정희 정권에 굴복했던 사법부의 잘못된 과거 탓이며, 2004년의 탄핵사태 역시 “과거 청산 없는 민주화가 초래한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몇 안되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벌이로 삼아 국제망신을 시키고 다닌다”는 지만원의 발언과 “(그 할머니들이) 성을 혁명의 무기로 삼고 있다”는 한승조의 발언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수구의 정신상태가 얼마나 병들어 있는지를 보여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 극우들은 지만원을 교주로 모시며 그들의 발언 하나하나를 마음 속에 새기고 있다. 이승연이 ‘위안부’(성노예가 더 옳은 표현이란다)를 연상시키는 누드를 찍었을 때 휘몰아쳤던 엄청난 분노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광주학살을 금전적 방식으로 해결했기에 광주가 “우리 모두의 광주에서 멀어졌다”고 말하는 저자는 “그럼으로써 광주는 몇몇 신군부가 일으킨 사건이고 우리는 그 사건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면책심리는 날개를 달아버렸다‘고 얘기한다. “진상규명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실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사회 내에서 타인이 겪은 고통에 대한 공감과 그러한 고통을 가져온 배경과 상황을 공유할 수 있게 된”다는 저자의 주장에 깊이 공감하면서, 잠시 옛날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유신헌법이 한국적 풍토에 맞는 좋은 법이라고 배웠고, 광주학살은 빨갱이에 의해 일어난 폭동으로 알던 내가 대학에 가서 현대사에 대해 알던 지식이 실은 다 거짓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난 이 나라가 싫었고, 속아 살아온 사춘기가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한홍구의 책 세권이 나와 있고, 17권으로 된 강준만의 <현대사산책>이 구비되어 있는 지금은 더 이상 그런 혼란을 겪지 않아도 된다. 그런 면에서 요즘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은 우리에 비하면 훨씬 행복하다. 컴퓨터 게임도 좋고 입시공부도 좋지만, 그들이 고교를 졸업하기 전에 이 책 세권은 읽어 봤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현대사를 모른다면 아무리 나이를 먹는다 해도 수구신문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