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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네 집
박완서 지음 / 현대문학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흔살의 나이에 홀연히 소설쓰기를 시작한 박완서, 그분의 책을 읽을 때마다 ‘이 작가가 그냥 주부(직장인으로 바꿔도 상관없다)로 눌러앉았다면 우리나라 문학이 얼마나 척박했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전쟁과 사랑, 그리고 기생충의 무서움이 수채화처럼 그려진 <그 남자의 집> 역시 재미있게 읽었다.
저자 자신의 경험처럼 대학 1학년에 다니던 주인공은 난데없이 터진 전쟁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지 못하며, 은행에 다니는 남자와 두근거리는 사랑 한번 못해본 채, 단지 입을 덜 목적으로 결혼을 한다. 생각만큼 부자가 아니었긴 해도 그 집에서는 주인공에게 잘해주려 한다. 엥겔계수가 워낙 높은 집이라 먹는 것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먹였고, 음식 조리의 대부분은 시어머니 몫이었다. ‘50, 60년대는 못먹고 굶주렸다는 편견’과는 달리 “민어회와 소주와 초고추장이 어우러진 맛” “간을 맞춰 건조시킨 굴비” 등의 구절이 등장할 때면 와 하는 감탄과 더불어 입맛을 다셔야 했다. 게다가 남편은 꼬박꼬박 월급을 가져다 줬고, 남모르게 처가를 도와 목 좋은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불만이다. 왜?
“나는...시집의 식도락에 절망감을 느꼈다. 먹는 것 외의 딴 생각을 하고 살 순 없는 것일까(136쪽)”
어려운 시기에 잘 먹는 게 복이지 않느냐, 고 생각하지 말자. 영혼의 살찌움을 꿈꾸는 사람은 원래 이런 법이다. 게다가 성실하고 성격 좋은 남편도 주인공을 힘들게 한다. 이건 또 왜?
“변화를 꿈꿀 수 없는 안정감이야말로 나에게는 족쇄였다”
이게 바로 중산층의 삶을 영위했던 베티 프리단이 부엌에서 우울해하다가 말고 <여성의 신비>를 쓴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결심한다. “육감적인 치마를 입고 바람을 피우러 훨훨 이 답답한 집과 그날이 그날 같은 단조로운 일상을 벗어나리라”
정말로 주인공은 바람을 피운다. 바람의 정의를 ‘하는 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다른 이성과 함께 차 마시고 영화보고 밥먹고 그러는 것도 다 바람으로 친다면 주인공은 분명 바람을 피웠다. 그 시기에 드문 명문대를 다녔던 자신의 능력이 부엌에서 썩고 있는 것이 불만이라면 좀 다른 일, 예컨대 내가 아는 박모 작가처럼 소설을 쓴다던지, 아니면 문화생활을 향유하면서 달랠 수도 있는 법인데, 굳이 ‘바람’이어야 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이게 바로 사랑이 없는, 안정만을 보고 선택한 결혼의 말로가 아닐까. 남편이 사준 민어회보다 사랑하는 남자와 먹는 돼지껍질이 더 맛있고, 남편과 호텔에서 자는 것보다는 천막(텐트가 아니라) 속에서나마 사랑하는 사람과 자는 게 더 행복한 법이다. 사랑 없이 결혼한 남편이 아무리 잘해줘 봤자 사랑하는 사람이 말하다가 튄 침보다 못할 수밖에 없으니 그 사랑을 찾아 헤매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니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 조건이 맞는 사람을 고르기 위해 결혼정보회사를 찾는 대신 자신의 진정한 짝을 찾아 거리로 나가자. 내 나름대로 생각한 이 책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