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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 비사 - 대우그룹 자살인가 타살인가
한국경제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6월
평점 :
스텔라님이 주신 <김우중 비사, 자살인가 타살인가>를 읽었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외환위기 이후에 속절없이 무너져, 기아도 망했고 대우도 망했다. 기아야 그렇다쳐도, 대우가 망한 것은 우리 경제는 물론이고 국민들의 정신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줬다. 그래서 음모론이 나온다. 당시 우리 교수님이 한 말씀, “대우가 얼마나 좋은 기업인데 그걸 망하게 해? 나중에 다 심판 받을거야!” 그 시기 나온 여론조사를 보니까 국민의 80%가 대우의 패망은 정부 책임이라고 답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위암 말기 환자를 수술하지 않고 죽게 했다면, 의사를 욕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요즘에는 수술보다 호스피스 기관에서 남은 생을 정리하도록 하는 게 더 유행이잖는가. 하지만 위암 2기나 3기 환자를 치료 안하고 방치했다면, 그 의사는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대우에게 생겨난 위암은 과연 몇기였을까? 림프종에 퍼지면 3기, 이런 식으로 진단기준이 확립된 위암과 달리 대우의 상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20조원을 넘는 분식회계, 세계경영의 처참한 실패는 자살을 지지하며, 김대중 정부의 경제관료들이 김우중을 아주 싫어했다는 점, 정부가 돈줄을 막는 대신 마음먹고 돈을 쏟아 부었다면-한 50조 쯤?-살릴 수도 있었다는 점 등은 타살설을 지지한다. 이 책의 저자들은 타살설을 부인한다.
“음모론을 거론하기에는 대우의 약점이 너무도 많았고, 또 몇 번의 회생 기회들을 너무도 쉽게 흘려보냈다(57쪽)”
혁명과 반란의 차이가 성공 여부에 좌우되는 것처럼, 성공한 기업인과 경제사범의 차이도 한순간의 판단에 좌우된다. 세계경영을 모토로 한 대우의 전략은 아쉽게도 실패했고, 얼마 전 귀국한 김우중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대우의 사장들 중 감옥 간 사람은 또 몇인가?). 대우가 실패했으니 하는 얘기지만, 대우에는 김우중의 독단을 견제할 장치가 전혀 없었다. 책 뒤에 수록된 대우 사장단 회의 녹취록을 보니 재벌 사장이라 해서 부러워할 게 아니다.
[박사장: 전자 수출은 늘고 있습니다.
김회장: 여기 상반기..줄었잖아?
박회장: 전체적으로는 늘고 있습니다.
김회장: 무슨 소리하고 있어? 늘어야 되는데 줄어드는 이유가 뭐냐 이거야.
김회장: 인사부서 간지가 몇 년이야?
권상무: 20년 됐습니다.
김회장: 그래가지고 어떻게 그 지랄할 수 있어? 상무씩이나 돼가지고...]
게다가 김우중의 부인인 정여사도 가세한다. 대우가 생사의 귀로에 서있던 시점에, 자기 아들 이름을 딴 ‘아트선재센터’ 개관식에 사장들을 다 오라고 한다.
[김우중: 쓸데없는 사람은 갈 필요가 없지. 그거 뭐하러 가!
김비서: 정회장(부인을 이렇게 부른다)께서 모두 참석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참 한가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하여간 이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모범생 체질이 대우를 망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삼성그룹처럼 지방대 출신까지 두루 임용하고 학력보다 실력에 따라 승진을 시키는 전통과는 많이 달랐다. 대우에서는 임원 10명 중 9명이 이른바 경기고.서울대 출신이었다”
이것 역시 결과론에 불과할 것이지만, 학력만 너무 따지는 기업들로서는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얘기가 아닐까 싶다. 경기가 어려울 때는 근로자를 해고하면 안된다고 버티고, 대우가 어려워졌을 때 종업원들에 대해 미안해하기도 했던 인간 김우중의 면모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는데, 대우 몰락이 자살인가 타살인가가 궁금한 분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그 판단은 물론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