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리부상으로 은퇴한 친구가 테니스 멤버이던 시절, 나는 그 친구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 우리는 한데 모여 차 한데로 테니스장에 갔는데, 늦게 가면 테니스 코트가 없어서 일분이라도 일찍 테니스장에 가야 했건만, 그 친구는 언제나 10분-20분, 혹은 30분을 늦었다. 새벽 나절의 십분은 기다리기에는 고통스러운, 긴 시간이었다.
늦게 와서는 꼭 담배 한 대를 물면서 “한대만 피고 가자”고 하는 것도 얄미웠지만, 매번 다른 핑계를 대는 게 우리를 어이없게 했다.
“차 가지고 나가는데 다른 차가 막고 있더라고. 그래서 밀고 나오느라 늦었어”
“지하철이 십분 이상 안와서 늦었어”
“택시가 안잡히는 거 있지”
“어제 술먹고 집에 못들어갔어. 지금이라도 나온 게 용하다”
그 친구가 은퇴한 지금은 또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아침 일찍 휴대폰으로 깨워 주건만, 항상 늦는다.
“전화했을 때 일어났다가 또 잤어요”
“사고 났나봐요. 차가 굉장히 밀리던데요”
“오다가 지갑을 놓고 와서 집에 갔다 왔어요”
늦는 정도가 그 친구만큼은 아니어서 10분 내외에 불과하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인내심이 약해져 그 정도의 지각도 속이 상한다. 비가 와서 실내코트를 끊어야 했던 어제, 일분이라도 빨리 가서 코트를 끊을 생각에 초조했다. 5시 10분쯤 그에게 전화를 했다.
“저, 저희 집에 6시 10분까지 오시겠어요”
그가 답한다. “뭐 그렇게 빨리 가요? 그냥 20분까지 갈께요”
나와 친구는 10분에 만나 기다렸건만, 그는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20분까지는 와야 할텐데, 그가 도착한 시각은 25분, 부리나케 코트로 갔지만 남은 실내 코트는 없었다. 우리보다 불과 몇걸음 먼저 온 팀이 코트 2개를 예약한 탓. 늦게온 그를 원망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상의 경우에서 난 늦게오는 한명을 제거하면 또 다른 사람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나도 이따금은 그런 사람이 된다. 또 다른 친구와 다른 테니스 모임에 나갔던 사흘간, 난 매번 늦었다. 첫날은 십분만 늦겠다더니 20분을 넘게 늦었고, 그 다음엔 십분씩 늦었다. 첫날은 아예 늦게 일어났고, 그 친구가 전화해서 깨워준 둘째날은 사고가 나서 차선 하나가 막히는 바람에 예상치 않게 겁나게 막혔다. 셋째날은 길을 헷갈려 헤매다 늦었는데, 내가 대는 이유를 유심히 듣던 친구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넌 어떻게 늦는 이유가 매번 바뀌냐?”
그 말을 들으니 은퇴한 그 친구 생각이 났다. 그 친구가 매번 다른 핑계를 댄 것은 내 생각처럼 ‘같은 이유를 대면 우리가 지겨워할까봐’가 아니라 진짜 그랬을 것이다. 난 “늦을 거 생각해서 십분쯤 여유있게 나오면 안되냐”고 그 친구를 타박했었지만, 막상 해보니 아침 나절에 십분을 일찍 나가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테니스 모임 때 내가 안늦었던 이유는 내가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만나는 장소가 우리집이었기 때문에, 겁나게 성실했던 다른 친구가 제 시각에 와서 나를 깨워줬기 때문이었다. 장소가 다른 곳이었다면 필경 나도 “5분이면 가!” 이러면서 꾸물대다 매번 늦지 않았을까.
누구나 늦을 수 있다. 마음을 비우고 타인을 이해하자. 남이 늦는다고 속상해하면 나만 손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