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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자서전
리콴유 지음 / 문학사상사 / 1999년 10월
평점 :
절판
지금까지 내가 읽은 자서전은 철없을 때 읽었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가 유일했다. 그걸 읽고 정주영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나는 그 뒤 모든 스포츠에서 현대를 응원했고, 심지어 ‘정주영 주치의가 되겠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 자서전의 단점은 이런 데 있는 것 같다. 공과를 모두 기록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는 대신, 잘한 것만 기록해 철없는 사람의 판단을 흐린다. 싱가포르를 40년간 통치한 리콴유는 분명 뛰어난 지도자였을 테지만, 자서전만 100% 믿을 건 아닌 것 같다. 리콴유에 따르면 자신은 언제나 옳고 정의로웠으며, 상대방은 늘 말도 안되는 모략과 음해를 일삼는다. 자신이 외국에 나가 연설을 하면 다들 감동을 먹었다는 대목도 그렇다. 사실이 그럴지라도 어떻게 자기 입으로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자기반성도 좀 곁들인 자서전, 난 그런 게 읽고 싶다.
싱가포르는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다. 그러다 2차대전 때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하게 되는데, 그 대목을 읽으면서 좀 황당했다. 일본이 한국 여자들을 끌고 가서 만들어 놓은 ‘위안소’에 대한 리콴유의 평가, “사병들의 욕구 문제에 대한 일본군의 접근 방식이 매우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고 생각했다...결과적으로 점령 시절 일본군에 의한 강간사건은 별로 없었다”
영어를 잘하고 영국에 유학까지 갔다온 엘리트였던 리콴유, 일본이 점령을 한 뒤에는 이렇게 바뀐다. “먹고 살려면 일본어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점령군 당국이 개설한 일본어 학교에 등록했다...나는 시험을 통과해 졸업증서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 일본 회사에 취직을 한다. “나는 시모다 상사의 직원으로 일하게 되었다...이 직장이 괜찮았던 이유는...담배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번쯤은 일본에게 저항을 하는 장면이 나올텐데, 하는 기대를 가졌지만 그런 장면은 전혀 없었다. 먹을 게 귀해지자 리콴유는 결단을 내린다. “암시장 중개인으로 나서면 수입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일본이 전쟁에서 항복하기 직전, 리콴유는 걱정이 됐다. 왜? 일본군은 최후의 한명까지 싸울 것 같아서. 그래서 어떻게 했을까? “나는 상황이 조용할 때 싱가포르를 빠져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래놓고서는 다른 사람을 욕한다. “영리하고 기회 포착에 능했던 몇몇 사람들은 일본군의 신뢰를 얻기 위해 온갖 충성을 다 바쳤다”
우리 역시 천황한테 충성을 맹세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모셨지만, 그건 총칼로 집권한 거지 우리가 뽑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싱가포르 국민들은 왜 리콴유를 총리로 뽑았을까? 그건 이래서일 것이다. 싱가포르는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기에, 독립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으리라는 것. 리콴유는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같은 경우는 흔치 않았다”
리콴유의 말대로 싱가포르는 독립국가로서 존재했던 적이 없었고,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통일된 저항을 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공산당만은 일본군에 저항해 싸웠는데, 나중에 리콴유는 공산당을 탄압하는 데 평생을 바친다. 이걸 시비하고픈 마음은 없다. 내가 문제삼고 싶은 것은 다음 말이다. “나는 스스로를 좌익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좌익이 뭔지, 민족주의가 뭔지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국민소득이 최상위권인 오늘의 싱가포르를 만든 공로는 인정하고, 싱가포르의 상황을 우리와 비교하는 것도 공평하지 못할 테지만, 리콴유를 가리켜 “금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라고 한 아버지 부시의 말에는 동의하지 못하겠다. 내게 부족한 리더쉽을 길러주기 위해 이 책을 기꺼이 선물해 주신 스텔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