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대를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 중 슈바이처를 머릿속에 한번쯤 그리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게다. 하지만 막상 의대에 들어와 힘든 공부를 하고 수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그때의 순수한 마음은 어느덧 사라지고, ‘나 혼자 살기도 벅찬데’라는 마음을 갖게 된다. 본 1때 만난 친구 하나는 졸업 후 “소록도에 가서 의사 생활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는데, 물론 그 친구는 서울에서 의사 생활을 하고 있다. 난 지금 그 친구를 비난하려는 건 아니다. 본 1때까지 그런 좋은 마음을 갖고 있던 친구니만큼, 그는 다른 친구들보다 더 좋은 의사가 되었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책을 읽다가 슈바이처에 대한 비판적인 내용을 접하고는 좀 당혹스러웠다. 비판의 요지는 이거였다. 원주민에 대한 슈바이처의 시각이 아프리카를 분할 지배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자기우월주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며, 그의 의료 활동이 휴머니즘에 입각한 것이라기보다는 유럽 문명의 우월성을 선전하고 제국주의자들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르는 만행을 은폐하는 방편으로 활용되었다는 것. 이것에 대해 논의하기 전에 내 경험을 잠깐 말하고자 한다.
내가 조교 시절, 우리 과는 일년에 한번씩 국제협력단의 요청에 따라 아프리카에 보낼 의사들을 교육시켰다. 감염내과 선생님도 강의를 했지만 주로 기생충 강의를 했는데, 우리가 교육시켜서 보낸 의사들의 대부분은 일년도 못되어 우리나라로 도망왔다. 그런 일에 자원할 정도면 어느 정도의 의지를 갖춘 분들일텐데, 대개 석달 이내에, 심지어 어떤 분은 하루를 못넘기고 우리나라에 돌아왔단다. 지금은 슈바이처의 활동기보다 아프리카가 더 문명화되었을 테지만, 우리 의사들의 기대수준은 그보다 더 높았나보다. 의사 파견이 번번이 실패하자 국제협력단에서는 방침을 바꿔 공중보건의들을 아프리카로 보내기로 결정했고, 지금 우리 과에서는 그들을 교육시켜 보낸다. 그들 역시 힘들긴 하겠지만, 일단 젊고, 또 어차피 군대생활을 할 거니까 보람있게 하자는 마음으로 가는 것 같다.
내가 하고픈 얘기는 이거다. 슈바이처가 아무리 인종적 우월감을 가지고 의사생활을 했다고 해도 평생을 그렇게 아프리카 오지에서 봉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의사라면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이 보장되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삶을 택한 것은 존중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슈바이처가 죽기 전, 모든 아프리카인들이 그가 다시 살아나기를 기도한 것은 그의 삶이 진실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만하다. 욕하기는 쉽다. 하지만 그나마라도 실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