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난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세계명작을 거의 안읽었다. 그래서 대학시절 내내 내 대화는 인간이라는 비루한 존재와 전혀 동떨어진, 프로야구와 연예인 얘기에 집중되어 있었다. 뒤늦게라도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도 정형근이 왜 나쁜 놈인지 몰랐을지도 모른다. 물론 꼭 책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인터넷은 표피적인 정보만을 전달할 뿐이며, 어떻게 사는가에 대한 해답을 얻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명작을 안 읽어서 늘 콤플렉스에 빠져 있던 어느날, 난 책방에서 ‘세계명작 독후감 100선’이란 책을 발견했고, 입시공부를 하듯이 그 책을 읽었다.
“보바리 부인...플로베르가 지었구....흠, 의사 부인이 바람피는 얘기란 말이지?”
책을 덮었을 때, 굉장히 뿌듯한 나머지 아는 사람만 만나면 문학 퀴즈를 냈다.
“‘적과 흑’은 누구 얘기게?”
이런 식으로. 하지만 그때 머릿속에 담았던 세계명작에 대한 지식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 빠져나가 버렸고, 내 머리는 다시금 텅 빈 상태로 되돌아갔다. 책의 가치는 단순히 줄거리 전달이 아닌, 그 이상의 무엇이라는 걸 깨달은 건 그보다 한참 후, 내가 열심히 책을 읽고 난 다음이었다.
뉴스를 보니 ‘도서요약 서비스’라는 게 있다고 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 읽을 시간이 없으니 요약본이라도 읽겠다는 사람들의 요구와 불황에 허덕이는 출판사의 아이디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나. 그렇게 서비스되는 책들이 경영서나 자기 개발서 위주이긴 해도, 그렇게 읽으면 과연 도움이 될까 싶다. 정 바쁘면 일년에 한권을 읽더라도 원래 책을 읽는 게 낫지, 다른 이에 의해 걸러진 책을 읽으면서까지 몸부림칠 필요가 있을까?
십여년 전, 책과는 담을 쌓은 김영삼 씨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런 식의 과외를 받았다고 한다. 워낙 아는 게 없으니 유명한 책들을 A4 3-5장 정도로 요약해 공부를 시켰던 것. 그런 과외에도 불구하고 김영삼은 임기 내내 깜짝쇼만 연발하다 결국 우리나라를 외환위기의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는데-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이 사실은 책을 요약으로 읽는 것이 별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김영삼은 “머리는 빌리면 된다”고 했지만, 어느 머리를 빌릴지 판단하기 위한 머리도 필요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