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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 -상
살만 루시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세계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989년, 살만 루시디가 <악마의 책>을 썼을 때 이란의 호메이니는 이 책이 이슬람을 모독했기 때문에 작가를 처형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시위도 여러번 일어나고 서점이나 신문사가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심지어 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는 이란과 단교까지 했으니, 책 한권이 미친 파장치고는 실로 엄청났다. 마호메트를 모욕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내가 이슬람교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난 이 책이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할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인도 태생 영국인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슬람보다 영국을 훨씬 더 비판한다. 예컨대 다음 구절.
“영국인들의 문제점은 그들이 영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냉정한 놈들! 연중 대부분의 시간을 물 속에서 보내고 낮에도 밤의 빛깔을 띠는 싸늘한 물고기 같은 놈들!(2권 96쪽)”
“영국인들의 흐리멍텅한 윤리의식이 기상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2권 99쪽)”
그럼에도 이란은 저자를 죽이려 하고, 영국은 저자를 보호하느라 애쓴다. 표현의 자유가 나라의 의식수준을 나누는 척도가 될 수 있다면 이란은 명백히 후진국이 되는데, 사실 이건 이란만 그런 건 아니다. 로이드 웨버의 출세작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가 신성모독이라는 기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숱한 신성모독 논란이 있었는데, 이슬람과 그들의 차이는 사실 다음에 있다. 이슬람 국가들은 정교일치가 되어 종교에 대한 모욕은 곧 국가에 대한 모욕, 나라 전체가 흥분할 수밖에 없는 것. 중요한 것은 신성모독 논란이 ‘지저스’의 성공에 일정부분 기여한 것처럼, <악마의 시>에 대한 이란의 오버가 읽는 데 인내심이 필요한 그 책을 초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는 거다.
1998년 이란은 루시디에게 내렸던 사형선고를 철회하고 영국과 국교를 재개하기에 이르는데, 아직까지 89년의 이란 수준에 머물고 있는 국가가 있다. 바로 우리나라다. 과히 야하지도 않았던 영화 <거짓말>이 음대협이라는 음란한 이름을 가진 단체에 의해 상영이 연기되고, 그저 그런 책인 <즐거운 사라>를 쓴 마광수가 구속된 데 이어, 국민 만화가 이현세가 유죄판결을 받는 코미디가 다반사로 벌어지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얼마 전에는 <그때 그사람들>이라는 영화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한 효자의 간청에 못이겨 앞뒤가 잘린 채 상영이 되었는데, 그런 식의 오버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호기심만 증폭시켜 줄 뿐이다. 이란의 과격 단체들이 <악마의 시>를 읽지도 않은 채 시위와 테러를 한 것처럼, 명예를 훼손당했다고 길길이 날뛰는 사람들은 대개 그 작품을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박근혜가 영화도 안본 채 “불쾌하다”고 말한 것도 그렇고, 서갑숙의 책 <나도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 되고싶다>를 반대한다며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사모님께 기자가 “책을 읽어봤냐”고 물었을 때 그 사모님이 “내가 그 따위 책을 왜 읽느냐”고 불쾌해한 것은 모르는 사람일수록 막간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작품은 언제나 대중들 속에서 검증받고 판단되어져야 하며, 대중들이 봐도 좋은지 아닌지를 법원이 미리 재단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89년의 이란이 후진국이었다면, 2005년의 우리 역시 엄청난 후진국에 살고 있는 중이며, 이 책에 대해 잠깐 말하면, 1권을 읽는 데는 8일이 걸렸고, 2권은 거의 하루만에 다 읽었다.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좋은 책일수록 후반부로 갈수록 재미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