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영화정보 프로그램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벤 스틸러가 나오는 영화 하나를 본 적이 있는데, 세상에나, 그 영화에서 웃을만한 대목은 전부 TV에서 미리 방영한 것이었다. 영화정보 프로그램이 볼만한 영화를 추천하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하이라이트를 다 보여줌으로써 영화볼 때 재미를 반감시키는 거다. 그래서 난 가급적이면 백지 상태에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그렇긴 해도, 알게 모르게 접하는 영화 포스터들과 주제를 함축한 제목을 보면 그게 어떤 내용으로 흘러가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어제 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예외였다. 개봉한 지 벌써 두달이지만 난 이런 영화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제목을 봐도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럼에도 내가 이걸 보기로 결정한 이유는 맥스무비 사이트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9.18의 평점을 얻고 있기 때문이었다. 별점평에 약한 나는 어제 26세 미녀 여친과 그 영화를 봤다.

* 마치 <천국의 계단>에서 권상우가 최지우를 업었던 장면 같죠?


1. 쿨

재미있게 보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높은 평점을 받을 영화는 아니었던 것 같다. 8점대라면 모르되, 9점대는 오버 아닐까. 점수가 영화 자체보다 높은 이유는 영화가 우리 내면의 죄의식을 자극했기 때문이리라. 이 영화가 일본 사회의 단면을 정확히 그려냈는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통해 본 일본 청년들은 매우 쿨하다. 주인공과 섹스를 나누는 동급생 여자가 다른 여자를 추천하고-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정도 생긴 얘가 꼬시면 안넘어갈 사람이 있을까? 너도 그 후보 중 하나야...참, 그리고 걔, 가슴도 커!”-주인공의 동생은 애인 집에서 동거를 하는데, 그 애인은 형이 보는데도 개의치 않고 전라로 창가에 서서 동생에게 “빨리 올라와!”라고 소리를 친다. 하여간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쿨’한데, 그 쿨함이 막판까지 이어져 영화가 신파로 끝나지 않도록 해준다. 그게 이 영화의 매력 중 하나인 듯.


2. 호랑이

붕어빵에 붕어가 없는 것처럼, 설마, 호랑이가 영화에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영화에는 우리 속에서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이 담겨있다. 우리 조상들은 호랑이를 영물시했다. 그리고 호랑이는 실제로 영물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를 촬영한 PD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카메라를 설치하고 호랑이를 기다려도, 호랑이는 카메라를 감지해 피해 버린다나? 집념을 가진 PD 하나가 나무 위에서 한달간 먹고자고를 한 끝에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을 수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그런 놈이 어쩌자고 잡혀가지고 동물원에 있는 걸까. 산속의 호랑이와 달리 동물원의 호랑이는 아무리 포효를 한들 초라해 보인다.


3. 결론

남자주인공이 참 마음에 들었다. 그가 처음 밥을 얻어먹을 때 맛있어서 놀라는 모습은 특히나 더 귀엽다. 어찌되었건 이 영화를 볼 수 있게 되어 좋았다. 맥스무비 별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닐지언정 영화 선택의 참고자료는 분명히 되며, 이렇게 뜻밖의 영화를 고르는 수확을 거둘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행복은, 별점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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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위로 2004-12-17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쿡, 행복은, 별점 순인가요?

아아, 이거 보고 싶었던 영화중의 하나이긴 한데...^^

어떻게든 봐야겠어요. 꼬옥 보고 싶어져버렸다니깐요..

노부후사 2004-12-17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배우 너무 연기 잘 하지 않아요?

마지막에 물고기 반찬은 조금 슬펐지만요.

아영엄마 2004-12-1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영화는 못 볼 가능성이 많은데 책이라도 사 봐야 할까요?

미완성 2004-12-17 16: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자주인공, 파출부 삼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귀여워요 흙흙..

진/우맘 2004-12-17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어디서 여지껏 상영하고 있답니까? 인천에는 발만 살짝 담그고 휘리릭 사라진 것 같더만...ㅠㅠ 보고시퍼보고시퍼보고시퍼!!!!!!!!

유령 2004-12-17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둠의경로로 봤는데 추천하고 싶습니다....일본영화는 이런 멜로물이 괜찮은거 같아여.....

마냐 2004-12-17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 어디서 상영중인가요...쩝. 제 후배는 이 영화를 세번 봤답니다. 넘 좋다하더군요. ^^

마태우스 2004-12-1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냐님/상암 CGV에서 하던데요. 전 또 볼 마음은 없는데, 세번 보신 분은 영화의 진수를 파악하셨나봐요^^

유령님/그러게요. 러브레터도 참 괜찮았는데...그나저나 어둠의 경로라...유령님다워요^^

진우맘님/인천이 서울보다는 문화적으로 열악하죠. 빨리 로또 되셔서 서울로 오세요!!

사과님/어머나 사과님도 이거 보셨군요!! 님은 귀여우면 파출부 삼는군요. 으음.

아영엄마님/안돼요 영화로 보셔야 해요. 안되면 비디오라도! 그 남자애가 귀엽거든요

에피님/마음이 짠해요. 결말이 슬펐지만, 그게 현실과 가깝다는 걸 인정해야겠지요

작은위로님/요즘은 조금만 미적거리면 간판을 내려버려서 빨리 보셔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