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력이 좋기로 유명한 박미경의 히트곡 <이브의 경고>는 바람을 핀 남자에게 한번은 봐줄테지만 자꾸 그러면 가만있지 않을거다, 난 뭐 능력이 없어 이러고 있는 줄 아느냐 하고 협박하는 내용이다. 가사 자체가 도발적이기도 하지만, 노래 자체가 워낙 좋고, 박미경이 노래도 잘 불러 히트를 했는데, 가사 내용과 무관하게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난 성남 문무대가 떠오른다.
난 3년 3개월간 군대를 갔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군복을 입고 계급장을 단 건 사실 대구 군의학교와 문무대에서 보낸 석달이 고작이다(나머지 기간에는 공중보건의 신분으로 국립보건원에 다녔다). 남들은 2년이 넘게 하는 군대생활을 고작 3개월간, 그것도 아주 설렁설렁 했으니 편했다고도 말할 수 있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었다. 난 나이 서른에 군대를 갔다. 나이가 많은만큼 인내심은 없었고, 체력 또한 20대의 그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운동장 한바퀴를 도는 것도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많았고, 더 중요한 이유로 그 나이까지 세상의 각종 환락을 다 겪고 난 뒤 자유의 박탈을 경험했다는 게 더더욱 괴로웠다.
어떡하면 좀더 편하게 훈련을 마칠까 고민하는 우리와, 우리를 특전사에 준하는 존재로 키워 진급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고자 했던 교관들과는 결코 넘지 못할 벽이 놓여 있었다. 중대장으로 중간에 끼여있던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그저 고역이었다.
어찌되었건 군대는 군대, 우린 6시에 기상을 해서 운동장을 돌았고, 다 돌고 나면 체조를 했다. 문무대에서 바라보면 아득한 곳에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우리가 체조를 할 때쯤엔 늘 그 학교에서 노래가 들려왔다. 그 노래가 바로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 무엇 때문에 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그 노래는 저 멀리 자유 세계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였다. 군대에 오기 전엔 그 노래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맨날 듣는 게 군대식 용어와 교관의 잔소리 뿐이니, 나도 모르게 그 노래를 흥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난 자유를 꿈꿨고,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하루하루 이겨냈다. 내가 외박을 나갔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물론 술을 마시는 거였지만, 두 번째로 한 것은 박미경의 그 노래가 포함된 불법복제 테이프를 산 거였다.
3년이 흘러 난 완전한 제대를 했고, 지금은 군대에서 사귄 친구들도 만나지 않게 되었지만, 내 여친이 최근에 녹음해 준 <이브의 경고>를 들을 때마다 그때 시절을 떠올린다. 자유의 소중함을 느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