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11월 30일(화)
마신 양: 소주 두병--> 맥주 세병?
은평구에 있는 국립보건원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일을 같이해보자는 취지에서 마신 거라지만, 일 얘기는 하나도 안하고 술만 마셨다. 우리가 모두 7명이었는데, 처음에 소주 두병을 시키더니 그다음에 다섯병을 더 시켰고, 그다음엔 7병을 더 시켰으니 한사람당 두병씩은 마신 꼴이다. 파도타기도 몇 번 했고, 잔을 무차별적으로 돌렸으니 남보다 덜먹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 난 살아남았고, 늠름하게 집에 갔다. 요즘 컨디션이 거의 절정인 것 같은데, 그간 술을 덜마시고 몸을 만든 보람이 있다.
작년 이맘때도 난 일을 같이 해보자는 취지로 보건원 사람들에게 술을 샀다. 삼겹살을 먹었지만 나온 사람이 스물세명이라 만만치 않은 금액이 나왔는데, 그날도 술을 어찌나 먹었는지 정신을 잃고 중간에 도망가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 일년간 난 보건원을 찾지 않았고, 그래서 거기 사람들은 날 가리키며 “그때 그사람 왜 왔던 거야?”라는 말을 했었단다. 올해의 방문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열심히 보건원에 드나들며 일을 해야 할텐데, 갈수록 학교 일이 많아져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난 군 생활을 보건원에서 보냈다. 96년 보건원에 발령이 날 때 내가 걱정했던 것은, 보건원이 오송(경기도 어딘가에 있단다)으로 옮긴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지금, 보건원은 여전히 은평구에 있다. 과연 옮기긴 옮기는 걸까? 옮기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때보다 훨씬 늘어난 건물들 때문이다. 그땐 주차장도 제법 넓었고, 지평선도 가끔 보였는데, 지금은 우리가 축구를 하던 공간에도, 테니스를 치던 곳에도 다 낯선 건물들이 서 있다. 이렇게 건물을 많이 짓는데 오송으로 옮기는 게 가능할까? 보건원 사람에게 물어보니까 땅은 이미 팔렸고, 2008년까지 그곳을 비워줘야 한단다. 그렇다면 그동안 지어진 건물들은 어떻게 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단다. 그 건물들은 바퀴가 달리고, 통째로 옮기는 게 가능하게 지어져, 건물채로 옮겨다가 심으면 된단다. 그 건물을 실을 트럭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2008년을 즈음하여 트럭이 건물을 싣고 어디론가 가거나, 트럭이 바퀴가 달린 건물을 끌고 간다면 “아, 드디어 보건원이 이사를 가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보건원에서 보낸 3년을 난 이따금씩 떠올린다. 후회란 건 해봤자 말짱 헛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 그시절은 정말 회한이 남는 순간들이었다. 노는 것에 빠져 3년간을 놀아제낄 때는 만사가 즐거웠지만, 3년간의 건달 생활은 날 많이 피폐시켰고, 사회에 돌아간 뒤에도 적응을 힘들게 만든 원인이었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은 그래도 성공적으로 적응해 업적을 많이 쌓는 걸 보면 전적으로 보건원 핑계만 댈 수 없겠지만 말이다.
모르긴 해도, 내년 이맘때에도 난 보건원 사람들과 술을 마실 것이다. 그때의 난 지금과는 좀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