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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힘 -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2년 7월
평점 :
안철수 원장(이하 존칭생략)이 대선에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동료 선생과 고기 내기를 했다. 난 '안 나온다'는 쪽이었는데, 이유인즉슨 정치라는 건 마을에 놓인 다리가 자기가 세운 것인 양 허풍을 떨어야 하고, 불법자금을 받아놓고선 안 받았다고 둘러대는 뻔뻔함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조국교수는 이런 걸 '정치적 근육'이라고 했는데, 매사 수줍은 듯한 안철수가 이런 걸 가지고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강준만 교수가 쓴 <안철수의 힘>을 읽고 나니 갑자기 내기에서 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선 서문만 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나는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를 지지하기로 했다."(6쪽)
강준만이 누군가? <김대중 죽이기>와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통해 킹메이커로 불렸던 분이 아니겠는가? 김대중이야 원래 대통령에 가까웠다 해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데엔 그가 쓴 책의 힘이 컸다는 건 다들 인정할 거다. 그 강준만이 안철수를 지지한다면 이건 뭔가가 있다 싶어 서둘러 책을 읽었다.
책은 재미있었다. 읽으면서 내가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됐고, 그 덕분에 안철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
"난 무에서 유를 만들었고... 정치만 한 분, 변호사 하다가 시정하는 분에 비하면 실력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다."(20쪽)
박원순을 저 아래로 보는 이 말을 과연 안철수가 했을까, 싶을 정도로 오만한 말이다. "세상을 진보. 보수 문제로 보는 것은 머리 나쁜 사람들의 분류 방식이다"(71쪽)라고 한 것 역시 그리 겸손해 보이진 않는다.
이 말들로 보아 안철수가 자기 자랑에 약하다는 건 순전히 내 선입견이었다. 더 놀랐던 건 윤여준에 대한 그의 발언이었다. 언론에 몇 번 보도된 것처럼 윤여준은 안철수의 멘토로 알려졌다. 그래서 그런지 윤여준이 마치 안철수를 대변하는 듯 떠든 적이 있었나보다. 거기에 대해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그분이 발언을 굉장히 많이 하시는데 사실 감사하긴 하다. 그런데 저한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는 분들이 굉장히 많다."
이거 가지고 뭘 놀라냐고 하겠지만, 다음 말을 보시라.
"그래서 어제 직접 말씀드렸다. 앞으로 그렇게 하지 말아달라고."
이것만 가지고도 안철수가 다른 정치인들에게 휘둘리진 않겠구나 싶은데, 그 다음 말은 그 점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한다.
"그분이 제 멘토라고 얘기한 적 없다. 그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된다."(126쪽)
바로 이 뒤에 김제동, 김여진이 멘토라는 얘기가 이어지니, 강준만이 "안철수가 겉보기완 달리 독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라고 한 것도 이해가 간다.
게다가 난 안철수의 지지도를 일정 부분 거품으로 봤다. 막상 대선출마를 하면 10%대로 지지율이 추락할 거라는 생각. 하지만 강준만은 이 책에서 안철수의 장점들을 하나둘씩 짚어 주는데, 진영논리에 기대지 않는다는 것도 그렇지만, 그가 좋은 대학을 나온 성공한 기업인이란 것도 장점이 된단다.
"진보세력은...엄친아 성공 코드가 없어서 그들의 개혁론을 약자의 원한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지만...안철수의 개혁론은 그들에게...안도감을 준다."(198쪽)
이건 또 어떤가? "안랩에 안철수의 일가친척이 사돈의 팔촌까지 포함해 단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안철수가 후보들 중 연줄부패에 가장 잘 대처할 수 있는 후보"라는데, 대통령마다 지겹게 되풀이되던 친인척 비리가 덜하다는 것만으로도 안철수를 지지할 사람이 꽤 있을 것 같다.
흥미롭게 책을 읽긴 했다만, '나꼼수' 얘기가 등장하는 10장부터는 안철수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고 한국 정치에 대한 평소의 지론이 지면을 채우고 있었던 게 아쉬웠다. 또한 지금 시중엔 <안철수 생각>이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데, 그 책이 나온 다음에 이게 나왔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독자 입장에선 안철수의 정책 공약집에 가까운 <안철수 생각>보단 이 책이 좀 더 재미있을 것 같지만 말이다.

5년 전 선거에서 허경영을 찍었던 건 찍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지만, 강준만이 책을 내지 않았던 것도 이유가 됐다. 하지만 이 책이 나왔으니 이번 선거에선 더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난 대표적인 강준만 빠돌이고,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금방 설득이 돼버리니까. 갑자기 남의 일처럼 느껴졌던 대선이 기대되기 시작한다. 지금 난 주문을 외우는 중이다. 내가 고기를 사도록 안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