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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
이명원 지음 / 새움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명원은 내가 좋아하는 비평가다. ‘주례사 비평’이란 말을 듣고있는 작금의 문학판에서 온몸을 던져가며 비평을 하는 이명원,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문학에 대한 자의식과 더불어 치열하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이 책은 평론집이라기보단 독서일기에 가까운데, 이 책 역시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안타까운 생각이 들긴 하다. 표절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하는 부조리한 사회 속에서 그가 얼마나 오래도록 홀로 버틸 수 있을까가 솔직히 걱정된다. 이명원 자신은 ‘꿇고 사느니 서서 죽겠다’고 말한 바가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조건’을 외면하고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 그의 말이다.
[비평가가 최소한의 글쓰기 조건을 확보하면서 자신의 발언을 계속할 수 있다면, 오늘날 비평을 둘러싼 집단적인 무기력과 타매의 분위기도 얼마간 지양될 수 있을 것이다(281쪽)]
“이명원의 글이 실리면 편집위원직을 그만두겠다”고 협박해 결국 그의 글을 못실리게 만든 문인도 있는 판에, 저자가 ‘최소한의 글쓰기 조건’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그의 책을 열심히 사주는 것도 한 방법일 터, 우리 문학이 살기 위해서 이명원같은 멋진 비평가가 필요하다는 데 동의한다면, <파문>을 비롯한 그의 책들을 한번씩 읽어보자.
이명원은 작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문학의 출발점을 이루는 상상력이란 고무풍선과도 같은 것.... 하지만...너무 높이 나는 고무풍선은 결국 터져버린다. 문학이란 끈 달린 고무풍선과도 같다. 비유컨대 작가란 땅 위에 서서 자꾸자꾸 날아가려 하는 고무풍선의 끈을 잡고 있는 자인 셈이다(120쪽)]
기가 막히게 멋진 비유 아닌가. 그는 또 이런 말도 한다.
[씨름은 싸움의 일종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것은 대지에 두 다리를 버티고 중심을 잡는 행위...그의 소설쓰기는 두 다리로 땅에 중심을 잡듯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와 사랑을 표현해 왔다]
갑자기 씨름이 멋진 운동으로 보인다. 문학인의 아우라를 강조하는 김정란은 문학이 중심보다는 주변을 지향해야 한다는 뜻으로 ‘문학은 구심력이 아닌 원심력이어야 한다’고 했고, 서울시립대 학생들은 모 성명에서 ‘문학은 위반정신이어야 한다’고 했다. 다들 문학에 대해 이렇게 멋진 말들을 하니, 요즘 들어 책을 많이 읽는 나도 뭔가 말하고 싶어진다.
‘작가는 때밀이다. 세상의 때를 하나씩 벗겨 내니까’
별로 멋진 말같지 않아서 이명원의 말을 흉내내서 다시 해본다.
‘넥타이는 의복의 일종처럼 보이지만, 그건 사람의 목에서 출발해 몸을 둘로 나누는 도구다. 중심을 잡지 못하거나 길이를 맞추지 못하면 볼품이 없어진다’
도대체 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복거일의 <죽은 자를 위한 변호>에 대해 “독자들께서 이 두껍고 가격도 비싼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다”라며 명쾌하게 말하는 이명원, 갑자기 이게 궁금하다. 늘 타인의 소설에 대해 비평을 하는 사람이 소설가를 만나면 어떤 느낌일까. 그것도 자신이 마구 욕해 놓았던 소설가를. 문학판 사람들은 그래도 이런저런 일로 자주 모이지 않겠는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호쾌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할까, 아니면 요리저리 피해다닐까. 내가 비평가라면 당연히 후자를 택하겠지만, 아주 다행스럽게 난 비평가가 아니다.
* 제게 이 책을 선물해 주신, 지금은 열심히 시험 감독을 하고 계신 연보라빛우주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