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선수는 90마일 정도의 직구에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주무기입니다”
“래리 워커 선수, 미국에는 원래 돌림자가 없는 줄 알았는데, 워커 선수의 형제들 이름이 테리, 제리, 캐리더라구요”

* 모 사이트에서 무단으로 퍼온 사진입니다.
MBC ESPN의 해설자 송재우는 늘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야구중계를 한다. 해설을 듣다보면 어떻게 저런 걸 다 알고 있을까 놀랄 때가 많다. 야구 경기를 할 때마다 나오는 야구 퀴즈에서 정답을 제대로 말하는 해설자는 송재우 뿐이다. 그는 하일성처럼 경기의 흐름을 족집게처럼 맞추거나, 차명석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선수생활 경험담을 해설에 담지는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메이져리그를 보면서 알고 싶은 것은 경기의 맥이 아닌 그 선수에 대한 정보, 송재우의 해설이 인기를 얻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송재우를 처음 본 건 98년이었을 게다. 박찬호가 풀타임 메이져리거가 되어 닷새마다 등판을 했던 그 당시, 인생에서 가장 한가한 시기를 보내던 나는 거의 빼놓지 않고 미국야구를 봤다. 그때는 마이너리그 경험이 있는 박철순이 인천방송의 해설자였는데, 그는 몰라도 너무 몰랐다. 나도 아는 마리아노 리베라를 몰랐을 정도. 하지만 보조해설자로 나온 가냘픈 남자가 이렇게 말한다.
“원래 셋업맨이었는데, 워틀랜드 선수가 떠나면서 양키스의 마무리를 맡게 된 선수죠. 95마일 이상가는 빠른 볼과 컷패스트볼이 주무기입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면서 난 메이져리그에 눈을 떴고, 보조 해설자에 머물던 그는 이제 정식 해설자가 되어 시청자들과 만나고 있다.
네이버에 의하면 그는 어릴 적부터 야구에 미쳤었다고 한다. 야구만 보는 아들을 걱정해 부모님이 TV를 못보게 했을 정도. 하지만 그런다고 포기할 송재우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시절 보충수업을 빼먹고 ‘담치기’도 자주했다. 친구의 자취방에서 AFKN채널로 메이저리그 빅게임을 봤다. 어른들의 눈치를 보며 다방에도 갔다]
보통은 국내 야구를 보지만, 그는 메이져리그에 미쳤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메이저리그를 처음 봤다. AFKN으로 ‘전설적인 3루수’ 마이크 슈미트를 본 뒤 메이저리그에 빠지기 시작했다. 86년 월드시리즈에서 드와이트 구든을 앞세운 뉴욕 메츠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기적적으로 꺾자 넋을잃고 말았다]
그랬던 그가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다. 평소 미국 야구에 굶주려 있던 그에게 미국유학은 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 아니었을까.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관심이 없었다. 유학을 결심하고 작은 아버지가 있는 샌프란시스코에 가 골든게이트 대학과 대학원을 마쳤다. 중학교 때부터 관심을 가진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전공했다. 메이저리그를 동경해오던 그에게 그곳은 지상 낙원이었다. 여행을 가면 꼭 야구팀이 있는 도시에 들렀다]
그토록 야구밖에 몰랐던 그가 결혼을 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둘은 지금까지 신혼여행을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부인은 신혼시절 하루에 메이저리그 네 경기를 보는 남편을 보고서는 포기하고 말았다.네 경기면 12시간이 아닌가]
노모와 박찬호가 메이져리그에 가면서 한국에도 메이져리그 붐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국 팬들은 송재우를 필요로 했다. 그는 이제 가장 인기있는 해설자다.
그가 미국야구에 미쳤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 메이져리그가 중계되리라는 상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취미를 밥벌이 수단으로 승화시켰고, 지금은 열심히 그 취미에만 매달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송재우만큼 행복한 사람은 드물 것 같다.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송재우의 아버님이 조금만 더 무서웠다면, 그래서 송재우를 야구장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의지로 보건대, 그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아무리 자식이라도, 진정으로 그 일을 좋아한다면 북돋아 주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을까. 자신있게 ‘그렇다’라고는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내 일을 내가 좋아했다면 아주 열심히 했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