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어제 회의는 30분보다 더 짧아 10분이었지만, 그래서 더 황당했다.
일시: 9월 17일(금)
장소: 동부이촌동
마신 양: 소주--> 청하
1. 출강
“애를 보는 것보다 어른을 돌보는 게 더 힘든 법이다”
우리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다. 정말 그렇다. 나 어제 너무 힘들었다. 어제는 내 지도교수가 우리 학교에 출강을 오시는 날, 내 일정은 이랬다.
9시 15분: 모교 도착
10시: 서울역, 기차표 끊고 한잔에 4천원짜리 커피를 마시다
11시 40분: 택시타고(7천원) 예약해 놓은 식당으로 이동, 전 학장님과 함께 불고기에 냉면 먹음 (4만2천원)
1시-3시: 수업, 중간에 레이져 포인터 배터리가 다 되어 20분 그거 사러다님. 결국 못사고 빌림...
3시: 고속전철을 타러 감. 택시비 1만원.
4시: 헤어지다!
돈도 많이 썼지만, 같이 있는 동안 선생님의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게 특히나 힘들었다. 좋은 소재다 싶어서 말씀드렸더니 반응을 안보이실 땐 민망했고, ‘이걸로 몇분이나 끌 수 있을까’ 하며 던진 소재를 십여분간 말씀하실 때는 뿌듯했다. 어찌되었건 선생님 덕분에 우리 학생들이 간만에 수준높은 강의를 들었으니 좋은 거 아니겠는가.
2. 회의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긴급회의가 있으니 다섯시까지 한남동 캠퍼스로 오란다. 출강 때문에 안된다고 했더니 “다른 교수라도 대타로 보내라”고 한다. 회의에 참석하러 천안에서 서울까지 올라갈 교수가 과연 몇이나 될까. 난 다시 전화를 했다.
“알았어요. 제가 갈께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산꼭대기에 있는 홍난파 기념관을 찾았다. 참석한 사람은 대충 100여명, 나 하나쯤 빠진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게 없어 보였다. 5시가 되자 총장이 침통한 표정으로 연단에 선다. ...중간생략..............
5시 10분, “...어려운 때니 우리가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합시다”란 말과 함께 총장의 말이 끝났다. 어려운 때니 돈을 모아야지 왜 힘을 모은담? 나가려는데 우리 학장이 막 도착했다.
“벌써 끝났어?” “네” “뭐라고 합디까?” “그게요, 이런저런......” “그거 다 아는거 아냐. 괜히 왔네”
아, 우리 학장님, 혼자서 두시간을 운전하고 거기까지 오셨단다. 이메일도 있고 공문도 있는 판에, 그 회의를 굳이 참석하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것도 족수를 채워가면서.
3. 사건
더 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학장님이 차를 뺀다고 좀 봐달라고 했다. 봤다. 근데 그렇게 빼면 안될 것 같아서 학장님께 말씀드렸다.
“바퀴가 너무 높이 떠가지고 내려올 때 충격이 있을 것 같습니다”
“괜찮아!”
잠시 뒤 차 뽀개지는 소리가 났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 차로 쏠렸다. 검은색 에쿠우스 승용차 앞부분에는 고양이가 할퀸 듯한 기스가 마구 나버렸다. 찌그러지기도 했고.
학장: 뒤에서 좀 보라니까 뭐했어?
나: 제가 그래서... 바퀴가 떴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학장: 그게 그 말이었어? 난 몰랐네.
그래서...차를 타고 가는 내내 난 죄송한 마음에 사로잡혀 몸부림쳐야 했다. 이 말이 가슴에 남는다.
“좋은 차가 기스나면 사람이 좀 없어 보여. 그렇지 않나?”
차를 뺄 때, “그만!” 하고 말렸어야 했는데...으흐흑.
4. 술마시다
회의가 일찍 끝나는 바람에 약속에 조금밖에 안늦게 술자리에 도착했다. 많이 먹고 많이 마신 것까지는 좋았는데, 1차에서 걷은 돈이 모자라서 마지막까지 남은 내가 무려 4만원을 더 냈다(같이 있던 여자애는 술에 취해 쓰러졌고...). 전날 장렬하게 파산했건만, 돈쓸 곳이 왜이리 많은 걸까. 이번주 로또가 안되면 난 끝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