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설명: 아니 뭐 그렇다고 그 친구가 악마의 파트너란 얘기는 아니고..
1. 술
테니스를 치기 전날 술을 안마신 날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늘 친구의 도움으로 잠에서 깨고, 술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라켓을 휘둘렀다. 친구가 날 깨우다 지쳐 우리집에 들이닥친 적도 여러번, 그런 일들에 비하면 오늘은 상황이 꽤 양호했다. 전화 8번에 잠에서 깼으니까.
하지만 그 뒤가 문제였다. 술을 마시면 언제나 찾아오는 게 바로 설사, 나가기 전에 분명히 일을 봤건만 차를 몰고 가는데 또 신호가 온다. 그때부터 난 강변도로를 100킬로가 넘게 곡예운전을 했고, 차에 탄 다른 세명은 공포에 떨었다. 나중에는 비상등에 헤트라이트까지 켜고 질주를 계속했다. 올림픽공원 화장실에 몸을 날린 후, 휴-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난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니 조금은 슬펐다.
2. 친구
우리 중에 유난히 승부에 집착하는 친구(친구1)가 있다. 그 친구는 파트너(친구2)가 못하면 삐지곤 하는데, 나의 놀라운 스트로크로 첫세트를 내주자 이기고자 하는 욕망이 충만해 보였다. 하필 파트너가 연거푸 실수를 하자 그는 “그걸 그렇게 하면 어떡해!”라며 야단을 친다. 파트너라고 잘하고픈 마음이 없었을까. 다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주눅이 든 파트너는 그 후로도 실수를 연발, 점수를 많이 빼앗겼다. 결국 친구1은 삐졌다. 그는 얼토당토 않은 공격을 하면서 쉽게 자신의 서브게임을 내준다. 쪼존한 녀석, 가공할 스트로크를 날리던 나는 그때부터 봐주기 시작했다. 친구1이 치기 좋게 연약한 스트로크를 날려줬고, 내가 봐도 무리한 공격을 하다 실수를 저질렀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앞서던 경기가 시소게임이 되었을 때, 친구의 삐짐은 조금 풀린 듯했다. 그쯤해서 다시 뭔가 보여주려고 했지만 한번 리듬을 잃어서인지 뭐가 잘 안됐다. 결국 우리팀은 6-5(타이브레이크)로 패하고 말았고, 친구는 해맑게 웃었다.
우린 두세트를 한 뒤 파트너를 바꾸는 바, 친구1 밑에서 구박을 받던 사람(친구2)이 내 파트너가 되었다. 그가 실수할 때마다 난 “괜찮아” 내지는 “좋은 시도였다”는 격려를 해줬고, 내 기대에 부응하듯 그는 날카로운 공격을 계속함으로써 우리 팀의 승리에 기여했다. 반면 나랑 같은 팀일 때는 참 잘했던 친구(친구3)는 그와 한편이 되자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저조한 플레이를 펼쳐 패배에 기여했다. 친구1은 탄식했다.
“왜 나랑 같은 편 되는 애들마다 이러지?”
돌아가는 차 안에서 친구1은 그 원인을 분석했다.
“친구2는 초반에 몸이 안풀려서 못한 거였고, 친구3은 초반에만 잘하고 후반엔 체력이 저하된다. 따라서 다음 주엔 친구3과 먼저 같은 편을 하고, 친구 2와 나중에 편을 먹어야겠다”(참고로 친구1과 나는 랭킹 1, 2위여서 한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말은 안했지만 내 분석은 좀 달랐다. 승부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대부분의 공을 자신이 다 처리하려고 하는 ‘오버’가 파트너를 주눅이 들도록,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은 부상으로 은퇴한 다른 친구는 친구1과 오랫동안 같은 팀을 이뤘었는데, 하두 구박이 심해서 심적으로 괴로웠단다. 나 역시 친구1과 같은 편이 되본 적이 있어서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한다. 테니스는 첫째 건강을 위해 치는 것이고, 둘째 친목을 도모하고자 치는 것이다. 승패는 그 다음, 잘해야 열 번째 정도의 가치가 있는 법, 친구 1이 부디 승부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면 좋겠다. 더 잘치려고 레슨도 받고 수영으로 몸을 만드는 거야 좋은 일이지만, 다른 친구를 구박하는 건 파트너는 물론이고 스스로의 정신건강도 해치는 거니까. 친구들이 날 ‘최고의 테니스 파트너’로 꼽는 건 내가 발이 빠르고 스트로크가 빨라서만은 아니다. 음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