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씨 911'의 원작이라는 마이클 무어의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를 읽다가, 얼굴이 그만 화끈거렸다. 무어는 1차 걸프전과는 달리 이번의 2차 걸프전에는 동맹국들의 지지가 열성적이지 않다고 하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별로 위협적이지 않은 49개국으로 이루어진 동맹을 구성하는 데 그쳤다. 이들 대부분은 UN 배구대회에서 항상 꼴찌를 하고, 프롬(고교, 대학의 댄스파티)에 결코 초대되지 않을 나라들이었다. 그들은 어떤 것이든 요청을 받으면 편집증적으로 감사해한다]
물론 그 49개국 중에는 우리가 있다. 하지만 각주를 가보니 인터넷 사이트 어느 곳을 가면 49개국의 명단이 있다고 씌어 있다. 안심이 되었다. 설마, 누가 거기까지 가서 어느나라가 있는지 알아보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테지만, 그 비율은 장담컨대 5% 미만이다.
마음을 놓고 계속 책을 읽는데, 이런 젠장, 드디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호가 책에 나온다.
[부시의 미친 짓에 동의한 별난 국가들의 잡다한 구성원들은 누구였는가? 그 명부를 한번 들여다보자.
아프카니스탄
그들이 기여할 바는 정확히 무엇일까? 초원에 뛰노는 말? 몽둥이 열 개와 짱돌 한 개?.....
알바니아
주요 산업은 생계형 농업이고 전화기는 30명에 1대밖에 없다는 그 알바니아?
에리트레아(이게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에디오피아(다 굶어죽어가고 있는 애들을 믿으라니?)...일본(안돼! 이럴 수가 없어! 70%가 전쟁에 반대한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이 명부에 오른 것을 알고 있긴 한가?), 대한민국, 라트비아(나치 협력국).....팔라우? 팔라우는 ...인구가 2만명이다...즙이 많은 코코넛은 있지만, 불행히도 군대는 없다....]
어찌된 것이 무어는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원작에는 있는데 번역 과정에서 잘린 건 아닐까? "대한민국(베트남에서도 그러더니, 주권국 맞아?)"라는 말이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이 책을 몇 명이나 읽을지 모르겠지만, 외국인들은 제발 좀 안읽어줬으면 좋겠다. 한국이 팔라우, 라트비아, 에디오피아 같은 나라들과 나란히 미국의 꼬봉국가에 배치되어 있는 걸 보니 정말 쪽팔려 죽겠다.
옛날에 외국의 광고모델이 한국에 대해 망언을 했을 때-아주 이--상한 나라에 갔다 왔는데 어쩌고 저쩌고-사람들이 불매운동을 하니 하면서 들고일어났던 걸 보면, 우리나라 애들도 분명 자존심은 있다. 작년에 노무현이 미국에 가서 부시의 비위만 맞추고 왔을 때 한나라당 모 의원은 "등신외교"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자존심을 따지는 사람들이 위의 두 사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굴욕을 자청하는 이유가 뭘까.
국익이란 것도 분명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일게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희생보다 더 큰 국익의 손실이 어디 있으며, 국가 이미지의 손상만큼 국익을 해치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분명 주권국이고, 미국이 시키는 옳지 않은 일에 끼어들지 않을 자유가 있다. 하지만 한국인 한명이 죽었는데도, 우리가 국제적으로 조롱거리가 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앵무새처럼 파병방침 불변을 외치고, 파병 여론은 아직도 높다. 수십년간 지속되온 미국에의 의존성은 이제 우리 체질이 되어 버렸으며, 진실을 보는 눈을 가리고 있다. 우리가 이 무지몽매함에서 깨어나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 책을 인용해 글을 쓰는 것에 대해 제가 어느 분께 비판한 적이 있습니다. "소재가 없으니까 별 짓을 다하시네요!!" 그분께 사과드립니다. 사실 저도 요즘 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