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능 있는 여배우 혼자서만 분투하는 영화들을 계속 보기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이나영을 정말 뭔가 아는 여자로 재현해내는 영화가 보고 싶다]
한겨레에 난 영화평이다. 글쎄다. <영어완전정복>이 이나영 덕분에 살아난 것은 사실이지만, 이 영화까지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장진 감독의 팬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난 이 영화를 너무나도 재미있게 봤다. 장진은 자기 특유의 유머가 있다. 모든 사람을 폭소에 빠지게 하는 건 아니지만, 매니아들은 그의 유머에 낄낄거리며 웃는다. 엉뚱함과 기발함, 그리고 반복. 이 영화에서도 그의 유머는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나영이 정재영을 업고 병원에 갔다.
의사: 그렇게 되신지 얼마나 됐습니까?
이나영: 저희 둘 말인가요?
또다른 유머.
의사: (코피가 자주 나는 건) 두가지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코 속 혈관이 약하거나 신체기관을 이용해서 너무 지나치게 코를 파내서.
이나영: 아마 첫 번째일 거예요!
의사: 누구나 그렇게 믿고 싶어하죠.
그런데 이나영이 약을 달여서 정재영에게 가니까 정재영이 코를 파고 있다. 약사발을 떨어뜨리는 이나영, 이렇게 외친다. "안돼요! 더 이상 코 파지 마세요!"
이게 약하다고 생각하면 또다른 유머. 범인으로 오해받은 정재영이 취조를 받는다.
형사: 정말 안 불 거에요?
정재영: 아는 건 다 얘기했는데요
형사(아마 장진 감독 자신이 아닐까 싶다): 이 방에서는 모르는 것도 좀 얘기해줘야 하는 겁니다....여기선 무식한 애도 유식해지고, 장님도 본대로 얘기하고, 귀머거리도 들은대로 얘기하고 그러는 거예요.
정재영: 그럼...벙어린 어떻게 하나요?
장진: (목을 만지며) 야, 나 풍 걸린 거 같아!
어찌보면 썰렁하기 짝이 없지만, 난 너무너무 웃긴다. 그러니까 장진 매니아 아닌가. <킬러들의 수다>는 실망스러웠지만, <묻지마 패밀리>의 단편인 '사방의 적' 하나만으로도 장진은 내게 영웅으로 자리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했던 유머가 안웃겼다면 한가지만 더. 심장암이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얼마 안남은 삶을 앞당기기로 한다. 마라톤을 하면서 그는 생각한다.
"자살로 마라톤을 택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거다. 하지만 이건 현명한 선택이다. 내 심장은 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파열될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마라톤 5등 상품, 김치냉장고!"
이정도로 스포일러를 뿌렸으니, 이제 그만하자. 이 유머가 재미있는 사람이 본다면 더 큰 유머를 얻을 것이고, 이게 재미없는 사람에게 이 영화는 저주 그 자체일 것이다. 참고로 영화 시작전에 예고편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해리포터>다. 독수리를 타고 날라가는 해리포터, 어릴 적엔 개를 타고 다니는 상상을 했었는데, 개보다는 독수리가 훨씬 더 폼이 나 보인다. 1편을 비디오로 보고 후회를 한 뒤 2편은 영화로 봤는데, 3편도 찜이다. 그 다음 예고편은 날 슬프게 한다. <투가이즈>, 박중훈과 차태현이 주인공이다. 박중훈의 유머엔 이제 식상했고, <해피에로크리스마스> <첫사랑 사수..> 등 굵직한 히트작을 낸 차태현이 어떤 영화를 만들었을지 짐작하는 건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런 영화가 만들어지는 비결이 궁금해 죽겠다. 또다른 영화로 <달마야, 서울가자>란 제목이 눈에 띤다. <달마야 놀자>가 좋았다면 그걸로 끝낼 일이다. 그 영화는 아무래도 전작의 명성마저 훼손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