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을 하는 부부에게 시아버지가 이런다. "울 아이 선물은 뭘로 하지?" 과연 뭘 했을까. 답은 송월타월이다. 이어지는 광고. 회사에서 그 커플에게 무슨 선물을 했는지 묻는다. "타월이요!" "나둔데?" "저두요!" 그 부부는 결혼 후 때만 밀다가 일 다보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하는 게 몇 개 없는 세상에서, 송월타월의 생명력은 타월의 재질만큼이나 질기다. 내가 초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다.
[니 몸의 때봐라/내가 봐도 우습다/화 나면 밀어라/송월타월로]
아닌게 아니라, 그 당시 나도 송월타월로 때를 밀었다. 스스로 목욕할 능력이 없었을 때는 엄마가, 철이 들면서부터는 나 스스로 송월타월을 이용해서 때를 박박 밀었다. 송월타월 말고 다른 타월이 있었는지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로, 송월타월은 때를 미는 타월의 대명사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때, 생물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때는 피부가 죽은 겁니다. 우리가 때를 밀지 않아도 새 피부가 생기면서 저절로 떨어지게 되어 있어요" 그 말을 들으면서 난 이런 생각을 했다. "말도 안돼! 때 미는 게 얼마나 시원한데!" 아닌 게 아니라 때 미는 건 목욕의 하이라이트였고, 그렇게 해야 목욕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때를 벗기고 났을 때의 개운함을 어디다 비유할 수 있을까. 딱 한번-언제인지는 모르겠다-때미는 사람에게 날 맡긴 적이 있다. 한없이 나오는 때 때문에 미안하기도 했지만, 나갈 때 어찌나 몸이 가뿐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난 때를 꼭 밀어야 한다는 근본주의자들이 이 땅에 많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일요일마다 목욕탕에 가서 때를 밀던 대학 때, 수업을 하시던 교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 "한때 일주에 한번씩 목욕을 하면 문화인 대접을 받던 때가 있었지요" 당황한 나는 옆자리 친구에게 물었다. "지금은 아냐?" 그 친구는 얼굴을 찡그린 채 날 쳐다봤다.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알아봤다. 모두들 집에서 샤워를 한단다. 우리집은 아파트가 아니었기에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엄마한테 부탁해 순간온수기를 설치했고, 매일같이 목욕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적응력이란 놀라운 면이 있어, 일주일에 한번 감아도 아무 일이 없던 내 머리는 어느새 이삼일만 안감아도 떡이 되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이후 난 대중 목욕탕에 간 적도, 때를 민 적도 없는데,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난 일주에 한번씩 목욕할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깨끗하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처럼 하루 한번의 샤워로 만족하는 줄 알았건만, 송월타월이 선전을 할 정도로 팔리는 걸 보면 때를 미는 근본주의자들은 아직도 많은가보다. 피부 전문가 박모씨는 이렇게 말한다. "때라는 게 각질인데, 그게 모공을 막아서 좋을 게 어디있냐. 밀어줘야 한다" 한때 비단결같이 고왔던 내 피부가 지금처럼 된 게 때를 안밀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난 다시 때를 밀지 못한다. 하도 안밀었더니 팔에 힘도 없고,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귀찮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