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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 한 사회생물학자가 바라본 여자와 남자
최재천 지음 / 궁리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성운동가-고은광순님일게다-한분이 "믿어도 좋은 남자들" 리스트를 작성한 적이 있다. 내게 여성차별의 현실에 대해 가르쳐줬던 강준만, <말>지에 "남성깨기"를 연재한 바 있는 권혁범 등과 더불어 서울대 최재천 교수도 들어있다. 난 최재천이 왜 들어갔는지 잘 몰랐는데, 알고보니 EBS에서 <여성의 세기가 밝았다>는 주제로 강연을 한 적이 있단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이 책은 그 강의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인데, 여성의 우월성을 풍부한 생물학적 지식을 가지고 증명하고 있다.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뿐더러, 재미도 쏠쏠한 좋은 책인데, 다음 대목을 읽으면 그가 왜 "믿어도 좋은 남자들"의 하나로 뽑혔는지 알 수 있을거다.
[...내가 만난 최초의 진정한 페미니스트이자 나의 여성학 지도교수인 아내에게 사랑과 함께 이 책을 바친다. 머리로는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하는 이 둔한 학생을 끝내 버리지 않고 붙들어줘서 정말 고맙소. 이제 조금, 아주 조금 느낄 것 같소(11쪽)]
말로만 그러는 거 아니냐고? 그건 아니다.
[아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있던 안사람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들이 세 살반이 될 무렵 안사람이 다시 학교로 돌아간 이후로는 내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한국에 돌아와 안사람이 지방대학의 교수가 된 후로는 eh다시 내가 거의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150쪽)]
연구는 물론이고 각종 강연과 글쓰기로 바쁜, "대한미국에서 제일 바쁜 양반"인 그가 어떻게 엄마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비결은 여기 있다.
[나는 저녁 시간에는 절대 약속을 하지 않는 걸 원칙으로 한다. 일년에 집에서 저녁을 먹지 않는 날은 그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꼭 저녁에 약속을 만들 때에도...아들과 저녁식사를 한 다음...다시 나간다]
바쁘다고 맨날 술만 마시는 남자들, 반성해야 한다. 시간은 자신이 내는 것이지, 저절로 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들이 밖에서 나도는 진짜 이유는, 애 보는 것보다 그게 훨씬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아닌가.
갈매기 중에서도 레즈비언 부부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갈매기 "네쌍 중 한쌍이" 이혼을 한다는 것도 놀랍지만, 다음 사실은 가히 경악할 만하다. 우리가 금술 좋은 부부의 상징으로 알았던 원앙이 "실제로는 일부다처의 이득을 취하는 것으로 밝혀졌다...아내와 함께 유유히 헤엄을 치다가도 혼자 있는 암컷을 보면 아내가 뻔히 보는 앞에서 거리낌없이 겁탈하려 덤벼들기 일쑤다(160쪽)] 남자들이 원앙을 놓고 숭배하는 데는 아주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여성에게 척박하기 그지없는, 하지만 거기에 저항하는 여자는 가차없이 왕따를 시키는 우리 사회에서 최재천의 존재는 더없이 소중하다. 다음과 같은 그의 말을 들으면 페미니즘에 대해 남성들이 지나치게 공포감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을까.
[나는 우리 남녀의 관계가 장승만 같으면 되겠다고 생각한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은 누가 특별히 키가 더 크지도 않으며 누가 앞서고 뒤서지도 않는다. 그저 나란히 곁에 서서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볼 뿐이다(2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