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불이 켜졌다. 우리나라의 파란불은 조심해서 건너란 신호, 난 습관적으로 왼쪽을 봤다. 세상에, 평소 같으면 파란불을 무시하고 질주할 애들이 전부다 정지선 뒤에 서있다. 거리의 무법자 버스, 습관적으로 횡단보도를 점유하던 택시들이 벌금을 안매겼다면 과연 저랬을까를 생각해보면, 5만원의 힘이 크긴 큰가보다. 이경규가 일년이 넘도록 냉장고를 줘가면서 그렇게 캠페인을 벌였어도 안되던 정지선 지키기가 단 하루만에 정착된 순간이었다.

요즘 전철을 타면 경로석이 텅텅 비어있는 걸 자주 보게된다. 시행 초기에 경로석에 앉아 자는척하고 있는 애들이 얼마나 얄미웠는지 60세 이하가 앉으면 전기충격을 주는 의자를 만들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던 나도 그 광경을 보면 흐뭇하기 그지없다. 에스컬레이터에서 급히 가야 할 사람을 위해 한쪽을 비워놓는 것도 어느덧 자리를 잡은 듯하다.

난 원래 안전띠를 매지 않았다. 육중한 몸을 끈으로 묶어 두는 게 영 싫었고, 내몸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는데 왜 나라에서 난리냐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안전띠 미착용으로 걸려 벌금을 낸 뒤부터 차만 타면 안전띠를 맨다. 벌금이 없었다면 과연 내가 안전띠를 맸을까? 절대 아니다. 안전띠에 더해, 요즘 차엔 에어백까지 장착되어 있어 수많은 운전자들의 생명을 구하고 있단다. 횡단보도 정지선 위반에 벌금을 물리는 것 역시 우리나라에서 보행자 사고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걸 감안하면 적극 환영할 조치다. 이렇게 생명과 직결되는 항목이라면 제도적으로 다스리고, 길거리에 침을 뱉거나 노상방뇨를 하는 것처럼 안전과 무관한 일은 시민 자율에 맡기는 게 어떨까?

공공장소의 휴대전화 예절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것처럼, 의식이 저절로 변한다는 건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며, 때에 따라서는 제도의 변화를 통해 의식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게 지나쳐 제도 만능주의로 흐르는 것도 바람직한 건 아니다. 예컨대 세상에서 가장 거리가 깨끗한 싱가포르, 그 나라를 가본 건 아니지만 쓰레기 하나만 버려도 금새 적발이 된다는 걸 알고나자 그 거리가 더 이상 깨끗해 보이지 않는다. 개인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어서만이 아니라 시민을 잠재적 범법자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그 나라는 충분히 전체주의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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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5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파리 2004-06-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주로 지키는 편이구, 안전벨트도 안하믄 이상해서... 운전자석에 앉을 때는 꼭 합니다.
그런데... 조수석에서는 불편하더군요~* 그리고 차밀리는 곳에서는 중간불까지 관행(?)적으로 가는데... 이젠 그렇게 하믄 벌금 물테니, 조신히 신호를 기다려야겠지요. 5분만 일찍 나서면 여유로운데... 그게 잘 안됩니다. ㅜ.ㅠ

이파리 2004-06-0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옷! 일등이었군요~* 밤엔 다들 주무시나부죠?(요새 알라디너들이 새나라의 어린이화 되었나?)

메시지 2004-06-06 0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뚜벅이라 운전하시는 분들이 보행자를 배려해주면 정말 고맙더라구요. 나름대로 정차해서 길을 건너가도록 배려해주는 운전자분들에게는 인사를 하고 지나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야 그분들도 기분이 좋으실테니까요.

LAYLA 2004-06-06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빠짐없이 정지선 지키는 모습에 놀랐습니다....우와!

마냐 2004-06-06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삼천포로 빠집니다만.....그러게, 성폭력범에게는 한 20년형을, 더구나 유아 및 미성년 성폭행범들에게는 거세형을, 유아납치범에게는 종신형을, 뇌물 받다 걸리는 놈에게는 곱하기 3~4배 정도의 벌금형을....뭐. 이 정도로 일벌백계해야 되는게 아닌가 늘 생각합니다. 5만원 때문에 이렇게 사람들이 착해진다면...정말 생각해볼만 하지 않습니까?

로렌초의시종 2004-06-0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제가 관심이 가는 건 역시 싱가포르 식의 형벌만능주의에 대한 유혹의 극복입니다. 형벌에 의한 안정은 우리에게도 도움이 되지만 그보다는 우리를 다스리는(이 표현은 좀 마음에 안들지만요......) 지배층에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큰 부당한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워낙 가진 자들의 음모가 판치는 세상이다보니.)

플라시보 2004-06-06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본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에 누구나 지킨다고 생각을 하지만 또 그만큼 안 지켜지기도 하는 것이기에 저는 어느정도는 제도의 힘이 필요하다고 보여집니다. 횡단보도를 건널때 횡단보도 한 중간에 있는 차나 버스를 피해서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로 건너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정지선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차가 우선이 아닌 보행자가 우선이 되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기 때문입니다.

LAYLA 2004-06-06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정지선이라는 제목을 보고서 무슨 여자이름인줄 알았다는...정 지선....(퍽...; ㅇ ; )

LAYLA 2004-06-06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전에 벤지 얘기 나와서요..;;

저는 이 개랑 벤지가 닮았다고 생각했답니다.

ㅎㅎ 이개는 정말 북극곰 수준인데...ㅎㅎ


groove 2004-06-0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경로석에 예전에비해선(아직도 많은젊은이들이 앉고있기에 ㅎㅎ)많이 텅텅벼있는것을 목격할때면 약간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제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는 정말 잘지켜지더라구요.

마태우스 2004-06-07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님의 사진을 보고 그저 웃음만....와, 정말 크고 귀엽네요.
groove님/그쵸, 정말 뿌듯하더군요. 벌금 안때려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신기...
플라시보님/님의 격려는 언제나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로렌초의 시종님/저도 형벌만능주의에 반대하는데요, 님은 좀더 깊은 생각을 하시는 듯...언제 거기에 대해 글 써주세요!
마냐님/사실 교통안전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것들인데, 그건 일벌백계 해야 합니다! 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
메시지님/저도 뚜벅이라... 근데요, 엊그제 어머니를 성당에서 모시고 오는데, 두번이나 정지선을 넘었어요. 차가 밀릴 때는 지키기가 조금 힘들더군요. 안걸려서 다행이구, 주의해야겠어요
이파리님/아닙니다. 님은 2등입니다. 복돌님이 서재주인보기로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고...